과학연구

절세의 위인에 대한 《완고한 정치가》의 경모와 칭송

 2024.4.12.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20세기의 가장 걸출한 수령이시며 절세의 위인이시다.》

인류력사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처럼 투철한 자주적립장과 탁월한 정치적식견, 위대한 품격으로 하여 만민의 열렬한 흠모와 존경을 받으신 절세의 위인은 일찌기 없었다.

그것은 유럽에서 쁠럭불가담운동의 발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완고한 정치가》, 《거물》로 널리 알려진 이전 유고슬라비아련방공화국대통령 이오씨프 브로즈 찌또가 자기 나라를 방문하신 위대한 수령님을 진정으로 경모하고 높이 칭송한데서도 잘 알수 있다.

주체64(1975)년 5월 오래전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우려고 념원하던 찌또의 소원이 풀릴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였다. 당시 위대한 수령님께서 로므니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 대한 공식방문중에 계시였기때문이다.

찌또는 주체64(1975)년 5월 로므니아를 방문하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 나라를 방문해주실것을 요청하였다. 찌또는 그때 위대한 수령님의 유럽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 대한 방문일정에 자기 나라가 포함되여있지 않았으므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락하시지 않으실것 같아 자기의 제2인자까지 직접 보내여 정식 초청하였다.

주체64(1975)년6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찌또의 소망을 헤아리시여 로므니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 대한 방문으로 쌓이신 피로도 푸실 사이도 없이 련이어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방문의 길을 이으시였다.

찌또는 원래 다른 나라 국가수반이 자기 나라에 와도 한번이나 만나고 다시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유고슬라비아에 가시였을 때 찌또대통령은 매우 기뻐하면서 수령님을 최대의 국빈으로 맞이하였다.

당시까지 유고슬라비아에 여러 국가수반들이 다녀갔지만 그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행사에 동행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찌또는 83살의 고령이였고 당시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될수록이면 더 자주, 더 오래동안 위대한 수령님과의 친분관계를 두터이 할것을 원하였으며 허물없이 자기의 경력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씀올리였다.

제기되는 모든 국제문제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명철한 해답은 찌또대통령을 더욱더 매혹시켰으며 자기가 고심하는 여러가지 국내문제들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터놓게 하였다.

당시 그가 관심하는 국내문제들중의 하나는 해외교포조직건설에 대한 문제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서부도이췰란드에 몇십만명의 유고슬라비아사람들이 살고있는데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와 같은 조직을 하나 만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질문을 받으시고 그것을 어떻게 한두마디로 대답하겠는가, 기본은 동포들속에 애국주의자, 공산주의혁명가들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혁명적핵심을 많이 양성해가지고 조직을 내와야지 구락부식으로 해외교포조직을 내와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시였다.

해외에서 사는 교포들이 자기 조직을 내오는가 못내오는가 하는것은 교포들속에 준비된 핵심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데 달려있다고 명철하게 밝히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찌또의 고심을 순간에 풀리게 하였다.

대할수록 인간으로서의 품격이 뚜렷이 안겨오고 들을수록 세계정치의 거장다운 식견이 심장에 새겨져 찌또대통령은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는 큰 나라에 굽석거리는 사람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기가 세계에서 지도자로 인정하는 사람은 김일성동지밖에 없다고 말씀올리였다.

이것은 이전 유고슬라비아의 민족적영웅이고 쁠럭불가담운동의 창시자의 한사람이며 《완고한 정치가》로 알려진 찌또대통령의 마음속깊이에서 흘러나온 솔직한 고백이였고 진정한 경모심의 표현이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세계혁명과 인류자주화위업실현에 불멸의 공헌을 하신것으로 하여 오늘도 세계 진보적인민들과 수많은 국가수반들로부터 끝없는 경모와 칭송을 받고계시는 절세의 위인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