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명당자리를 통해 본 주체건축 (5)
수도의 중심거리에 일떠선 평양대극장

 2020.4.8.

혁명의 수도 평양시에는 승리거리, 창광거리, 영광거리, 천리마거리, 만수대거리, 광복거리, 통일거리, 려명거리를 비롯한 40여개의 현대적인 거리들이 있다. 그가운데서 승리거리는 청년공원 주입구로부터 평양대극장까지의 구간에 형성되여있는 평양시의 중심거리로서 여기에는 김일성광장, 만수대대기념비, 조선혁명박물관, 인민대학습당, 만수대예술극장, 평양학생소년궁전, 평양제1백화점, 평양대극장 등 중요건축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여있다.

평양대극장은 승리거리와 영광거리를 이어주는 중요한 거리이음부에 위치하고있으면서 옆에는 대동강이 흐르고 멀리 맞은켠에는 모란봉이 바라보이는 명당자리에 일떠섰다.

평양대극장이 이런 명당자리에 자리를 잡게 된데는 인민을 하늘로 여기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가슴뜨겁게 아로새겨져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혁명의 수도 평양에는 수도의 건축형성에서 력점적역할을 하는 자리에 전통적인 조선식건물인 인민문화궁전, 평양대극장, 옥류관이 건설되여 대동강주변과 보통강주변에 민족적향취가 풍기게 되였으며 그 건물을 정점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삼각형의 기하학적중심이면서 도시건축형성상 중심위치인 남산재에 웅대한 조선식건물인 인민대학습당이 일떠섬으로써 도시전반에 민족적인 색채가 더욱 뚜렷하게 되였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4권 411페지)

주체45(1956)년 4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 복구한 어느 한 예술극장을 돌아보시면서 이제 우리 인민들에게 구경도 더 많이 시키고 큰 회의도 하며 우리 나라에 찾아오는 외국사람들도 많이 맞자면 이보다 더 큰 극장을 하나 새로 지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조선에서뿐아니라 동양에서 제일 멋있는 극장을 지을데 대해서 간곡하게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일부 사람들은 큰 극장은 유럽식으로 지어야만 하는것으로 생각하고있는데 그것은 잘못된것이라는것, 앞으로 평양에 지을 큰 극장은 자리도 좋은 곳에 잡고 꼭 조선식으로 지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당시 설계일군들의 머리속에는 조선식건물은 산수가 좋은 곳에 앉혀야만 그 건축효과가 크다는 낡은 관념이 뿌리깊이 남아있었다. 말하자면 대동문, 보통문은 맑고 푸른 강을 끼고있어서 좋고, 부벽루, 을밀대는 울창한 산정에 서있어서 좋다는 관점에 매달려 새로 건설할 조선식건물도 그러한 곳에만 배치하려고 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들의 편협한 견해를 바로잡아주시면서 조선식건축물로 일떠서게 될 평양대극장의 위치를 몸소 정해주시였다.

주체47(1958)년 8월 23일 아직 수도시민들이 단잠에서 깨여나기도 전인 이른새벽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동강기슭에 평양대극장과 옥류관의 위치를 잡아주시기 위해 몸소 평범한 려객선인 《민흥 8》호에 오르시였다.

대동문가까이에서 배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동강의 흐름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배전에 서시여 강변을 눈여겨보시다가 배가 양각도에 이르자 배머리를 돌려 강을 거슬러오르게 하시고는 다시금 강변을 살피시였다.

양각도에서 반월도에 이르는 이 구간은 대동강의 흐름이 평양의 중심거리와 어울리는 구간이였다.

이미 이 구간이 시작되는 곳에 조선식건물(지금의 옥류관)을 앉히도록 가르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이 구간이 거의 끝나가는 곳인 대동교아래쪽의 둔덕진 곳을 가리키시며 거기에 수도의 문화전당인 대극장을 짓도록 자리를 잡아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곳에 현대적인 설비를 갖춘 커다란 극장을 하나 건설하되 모란봉에서 바라보면 큰길과 마주쳐보이고 동평양쪽에서 볼 때도 대동강풍경과 조화를 이루어 도시가 아름답게 보이도록 조선식으로 건설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거기에 조선식극장을 건설하게 되면 평양이 강을 낀 조건에서 매우 아름다와질수 있고 평양시가 더욱 민족적형식을 갖추게 될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지적하신 그 자리에 조선식건물을 크게 앉히면 그것이 평양의 중심거리(승리거리)축상에 정면으로 놓일뿐아니라 평양역으로 나가는 또 하나의 거리형성에도 포괄되면서 두 거리의 양상에 민족적색채를 진하게 안겨주게 되는것이다.

그런가 하면 동평양에서 보는 대동강반의 풍경이 옥류관으로부터 련광정, 대동문, 대극장으로 이어지면서 민족적정서를 풍만하게 돋구어줄수 있었고 모란봉의 부벽루와 을밀대, 최승대를 비롯한 옛 건축물들과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 평양이 고유한 민족적정서가 흘러넘치는 보다 현대적이며 문화적인 도시, 사회주의조선의 도시로서의 아름다운 면모를 원만히 갖출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여러차례에 걸쳐 대극장건설장을 몸소 찾아주시고 건설을 질적으로 하도록 현명하게 령도해주시였다. 그리고 주체49(1960)년 5월 30일에는 대극장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극장지붕형식에서 나타난 결함을 인민들의 의견대로 고치도록 하시고 극장이름도 일부 사람들이 제기한것처럼 《오페라극장》이라고 하는것은 좋지 못하니 인민들이 다 알기 쉽게 《평양대극장》이라고 하는것이 좋겠다고 그 이름도 지어주시였다.

이 극장은 어버이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뜨거운 사랑에 떠받들려 주체49(1960)년 8월에 개관되였다.

승리거리의 한 끝을 강조하면서 크고작은 합각식지붕들이 겹겹이 무리지어 높이 솟은 평양대극장은 웅장화려하고 민족적인 건축양식의 특색이 두드러져 승리거리건축형성과 대동강안 건축형성에서뿐아니라 수도의 도시전반건축형성에서 주요한 인상점으로 되고있다. 평양대극장은 우리의 주체예술이 꽃펴나는 대예술창조기지로, 우리 인민들이 무대예술을 마음껏 즐기는 대기념비적건축물로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