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전시가요 《자동차운전사의 노래》가 태여나기까지

 2023.6.8.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투쟁이 있는 곳에는 노래가 있고 노래가 있는 곳에는 혁명적랑만이 차넘치고 전투적열정이 끓어번지기마련이다.》 (김정일전집》 제49권 345페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들과 인민군용사들을 영웅적투쟁에로 힘있게 고무한 전시가요들은 오늘도 후세들에게 전승세대의 위대한 넋을 심어주며 더 높이 울려퍼지고있다.

그가운데는 작가 심봉원이 가사를 쓴 전시가요 《자동차운전사의 노래》도 있다.

주체39(1950)년 9월 하순 남진의 길에 오른 인민군대와 락동강계선까지 진출하면서 전투적인 공연활동을 벌리던 인민군협주단성원들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 오르게 되였다.

시련의 언덕을 넘고넘으며 북행길로 향하던 협주단성원들은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주체39(1950)년 11월 어느날 최고사령부가 자리잡고있던 고산진에서 인민군협주단성원들을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공연도 몸소 보아주시고 악기를 무기로 삼고 조국땅을 지키겠다고 하는것이 얼마나 훌륭한가고 하시면서 조선의 예술은 살아있다는 값높은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흥분에 설레이는 그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며 동무들은 운명도 미래도 당에 맡기고 침략자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을 안고 불사조처럼 일어나 싸우고있는 후방인민들과 인민군전사들의 투쟁정신과 사상감정을 담은 작품들을 더 많이 창작해야 한다고, 바로 이런 작품을 써야 그들을 조국땅을 수호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로 더 힘차게 불러일으킬수 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시가요창작방향을 명백히 제시하신데 이어 그 방도까지 밝혀주시면서 지금 우리의 인민군군인들은 미제와 그 추종국가군대와 치렬한 전투를 벌리고있다, 그들은 이렇게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영웅적인 투쟁을 벌리면서도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생활을 락천적으로 하고있다, 창작가들은 이런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잠도 자고 밥도 같이 먹고 전투도 해야 한다, 말하자면 창작가들이 영웅적인 현실속으로 대담하게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싸우는 현실을 생동하게 담은 좋은 작품을 내놓을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이 말씀은 심봉원을 비롯한 인민군협주단의 창작가들에게 새로운 창작의 불을 달아주었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1951년 여름 작가 심봉원은 몇몇 창작가들과 함께 탄약상자를 가득 실은 자동차적재함우에 앉아 전선으로 가게 되였다.

생소한 길이여서 어딘지 궁금한 생각이 든 심봉원이 운전사에게 어디쯤 왔는가고 물으니 그는 명랑한 어조로 《여기는 전선원호사업에서 일등으로 소문난 순천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그때 어둠속에서 여러명의 처녀들이 나타나더니 손을 흔들며 세워달라고 하였다.

자동차는 치치 소리를 내며 멎어섰다. 그러자 전선원호사업에 앞장선 처녀들이 운전사에게 꾸레미를 안겨주며 꼭 승리하고 돌아오라고 절절히 부탁하는것이였다.

자동차적재함우에서 이것을 목격한 작가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대로 이 현실을 작품에 옮겨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즉시 무르팍우에 수첩을 올려놓고 가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1. 달도 없는 야밤에 자동차 달리다

자동차 달리다가 문득 세우고 치치…

여기가 어데인가 물었더니

대사;《여기는 전선원호사업에서 소문난 순천이웨다.》

《예, 고맙습니다.》

량식을 장만하고 모조리 잡아내자 얼빠진 양키

달리자달리자 나의 자동차

구슬땀 흘리면서 정성껏 지은 쌀을 전선으로

이렇게 1절을 완성하고 그것을 작곡가에게 넘겨주니 그도 흥분을 금치 못해하면서 오선지우에서 선률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련이어 2절을 쓰려고 모대기던 작가는 운전사가 차를 세우고 항공감시를 하는 처녀들에게 《여기가 어딥니까?》하고 물으니 《예, 여기는 양키들이 멸망한 양덕고개입니다.》라고 대답하는것을 보고 무릎을 치며 붓을 달리였다.

2. 달도 없는 야밤에 자동차 달리다

자동차 달리다가 문득 세우고 치치…

여기가 어데인가 물었더니

대사;《예, 여기는 승냥이 양키들이 멸망한 양덕고개라오.》

《예, 고맙습니다.》

승냥이 양키들이 땅에다 키스하며 발버둥친다

달리자달리자 나의 자동차

후방의 정성어린 장갑을 솜옷을 전선으로

차가 신고산벌판에 이르렀을 때 적기들이 몰려와 줄폭탄을 떨구고 기총사격을 퍼부어댔다.

자동차가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며 이 구역을 벗어나자 긴장감에 사로잡혀있던 운전사는 제법 휘파람까지 불며 신나게 자동차를 몰아갔고 그의 락천적인 모습을 보는 작가의 머리속에서는 다시 시상이 나래쳤다.

3. 달도 없는 야밤에 자동차 달리다

자동차 달리다가 문득 세우고 치치…

여기가 어데인가 물었더니

대사;《예, 여기는 침략자 미국놈들이 막 녹아난 유명한 신고산벌판이예요.》

《오냐, 고맙다.》

침략자 미국놈의 주머니 밑빠졌다 조선전쟁에

달리자달리자 나의 자동차

길아닌 길을 찾아 포탄을 실은 차를 전선으로

달리는 자동차우에서 이렇게 쓴것이 《자동차운전사의 노래》였는데 이 노래는 현실을 그대로 시화하였을뿐이였다.

대사까지 넣은 이 노래는 나오자마자 불타는 고지우에서, 전선길에서 후방의 인민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졌다.

그때로부터 2년후인 주체42(1953)년 봄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인민군협주단이 외국순회공연을 위해 준비한 예술공연을 보아주시려 모란봉지하극장에 나오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부 작품들을 지적해주시면서 인민군협주단은 군대의 예술단체로서 특색이 있어야 한다, 《자동차운전사의 노래》, 《정찰병의 노래》와 같이 씩씩하고 전투적인 작품들로 공연준비를 다시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외국순회공연의 길에 오른 인민군협주단의 공연은 가는 곳마다에서 관람자들의 대절찬을 받았다.

특히 《자동차운전사의 노래》를 비롯한 전시가요들은 관람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틀어잡았다.

어느한 나라의 신문은 영웅적조선인민은 전쟁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기의 예술을 훌륭히 발전시키고있다고 하면서 《남성중창의 출연은 젊은이들의 락천적인 기백이 넘치는것이 특징적이다. <자동차운전사의 노래>는 명확한 표정과 생동성이 있는 공연종목이였다.》고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실속에 들어가 생활을 참신하게 그릴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는 이처럼 거대한 생활력을 가지고 외국공연에서까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조선의 문학예술은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영웅적문학예술로 훌륭히 발전할수 있었으며 세월과 더불어 인민의 사랑을 받는 명작들을 내놓을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