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언제나 인민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시며

 2021.5.3.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우리 수령님에게 있어서 인민대중은 언제나 스승이였고 자신은 인민의 충직한 아들이시였다.》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한평생은 인민대중을 언제나 엄격한 스승으로 여기시고 스스로 인민의 통제를 받으시며 인민의 충직한 아들로서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평생이였다.

위대한 생애의 전기간 자신을 위한 그 어떤 사소한 특전이나 특혜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이 인민을 위해 헌신하려면 스스로 인민의 통제를 받을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시며 그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주체60(1971)년 7월 10일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성군 약수리를 현지지도하시였다. 당시 그곳에서는 전해 가을부터 시작한 회의실건설이 마감고비에 이르고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시고 건설중의 그 건물을 의아하게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에게 무슨 건물인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밖의 물으심에 잠시 주춤거리던 그 일군은 건물의 건설경위에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사실 그 건물로 말하면 위대한 수령님을 모실 회의장소였다. 창성군으로 말하면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으로 하여 세상에 유명해진 고장이다.

전후 산간군인민들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그것을 온 나라에 일반화하실 원대한 구상을 안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멀고 험한 이곳을 자주 찾으시여 평범한 로동자, 농민들과 허물없이 무릎을 마주하고 의논도 하시고 중앙과 도의 일군들을 부르시여 회의도 지도하군 하시였다.

그런데 창성군에는 당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실 변변한 장소가 없었다.

숙소앞마당에 전등불을 켜달고 한여름밤 회의를 지도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문화회관을 리용하기도 하시며 정력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뵈올 때마다 일군들은 물론 그곳 인민들의 마음은 그지없이 괴로왔다.

하여 회의장소를 마련하려고 여러번 말씀드리였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마다 그 돈이면 인민생활에 써야 한다고 하시며 끝내 승인하지 않으시였다.

이러는 사이에 1950년대도 지나가고 1960년대도 흘러갔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군들과 그곳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의를 지도하실 장소를 마련해드리기로 작정하고 마침내 그 전해 가을부터 공사를 시작하였던것이다.

일군의 보고를 들으시며 한동안 담담한 표정을 짓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때문에 이런 산골에 회의실을 저렇게 크고 요란하게 짓는가고 엄하게 질책하시였다.

일군이 용기를 내여 그이께 아무래도 회의실이 꼭 있어야 하겠으니 이번만은 허락해주실것을 정중히 말씀드리였다.

일군이 올리는 말을 들으시고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면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는가고 책망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에게는 그런 특전이 필요없다고 다시금 그루를 박아 말씀하시고 무거우신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시였다.

그날 저녁이였다. 일군을 다시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낮에 있었던 일을 상기하시면서 한결 밝으신 어조로 이왕 짓고있는 집이니 빨리 완성하여야겠다고 다정히 이르시며 그러나 그 건물을 회의실로 하지 말고 료양소에서 사용하도록 넘겨주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연해하는 일군의 모습을 정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시면서 조용하나 절절하신 음성으로 회의실을 크고 요란하게 지어놓으면 인민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 우리는 항상 인민의 통제를 받을줄 알아야 한다고, 인민이 우리의 엄격한 스승이고 참다운 통제자이라고, 이것을 명심하는 사람은 사업에서 실수가 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과오를 범하게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일군은 숭엄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한 세대에 두 제국주의강적을 타승하시고 이 땅우에 인민의 락원을 일떠세우시여 조선인민뿐아니라 세계 진보적인민들로부터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를 받으시는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였건만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평민으로 생각하시며 오히려 인민의 엄격한 통제를 스스로 받고계시는 바로 여기에 위대한 수령님의 위인적풍모가 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81(1992)년 12월 28일 당, 행정경제기관 일군들을 만나주실 때에도 일군들은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여야 한다고, 일군들은 인민들과 간격을 두고 그 어떤 특전이나 특혜를 바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일군들은 언제나 군중과 함께 있어야 하며 밥을 먹어도 인민들과 한가마밥을 먹으며 인민들과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것을 체질화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은 한평생 그 어떤 특전이나 특혜도 바라지 않으시고 인민의 통제를 스스로 받으시며 인민과 고락을 함께 하여오신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신 이민위천의 숭고한 리념은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펼치시는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에 의하여 빛나게 계승되고있다.

당과 국가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의 위대한 전통을 철저히 고수하고 빛나게 계승발전시켜나가고있는 우리 조국은 앞으로도 영원히 인민이 주인된 나라로 온 세계에 빛을 뿌리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