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발해가 일본의 음악발전에 준 영향

 2021.3.23.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원래 우리 나라는 일본보다 훨씬 먼저 발전하였으며 일본의 문화도 우리 나라에서 넘어 간것입니다.》 (김일성전집》 제40권 289페지)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발전시킨 발해는 자기 존재의 전기간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리는 과정에 일본의 음악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우선 8세기에 발해는 일본의 음악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우리 선조들은 고대로부터 일본렬도에 적극 진출하여 일본의 문명창조와 사회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727년 발해와의 국교수립후 일본에서는 종전부터 전해오던 고구려음악이 중시되기 시작하였다.

원래 고구려음악은 삼국시기 일본땅에 진출한 고구려사람들이 보급하고 그 후손들이 대대로 세습하면서 연주해온 음악으로서 고구려멸망후에도 조선계통음악의 한갈래로 남아있었다. 그후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출현한 발해와 국교가 수립된 다음 일본에서는 발해사신들에 의하여 고구려음악이 다시 소개되면서 그와 같은 계통으로 일본에 남아있던 종전의 고구려음악도 점차 자기의 존재를 또다시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제2차로 일본에 간 발해사신 기진몽일행이 일본수도에 도착한 739년 10월 일본왕궁의 불교행사에서는 고구려후손들에 의하여 고구려음악(자료에는 《고려악》(高麗樂)으로 되여있음)이 온종일 연주되였으며 그 다음해인 740년 1월 기진몽일행이 일본왕궁에서 처음으로 고구려음악을 연주함으로써 고구려음악이자 발해음악이라는것을 소개한 사실은 그것을 말하여준다.

일본사람들도 발해의 음악을 적극 받아들였다. 749년 12월말 일본통치자와 중앙과 지방의 관료들, 5 000명의 중들의 참가하에 동대사에서 성대히 진행된 불교행사에서 당나라, 오나라, 일본음악과 함께 《발해악》(渤海樂-발해의 음악)이 불리워진 사실은 그것을 증명하여준다.

760년대에 들어와 발해는 일본류학생들을 받아들여 자기 나라의 음악을 배워주었다. 고구려유민의 후손인 고내궁(고노 우찌유미)이 발해에 와서 음악을 배워간것은 그 일단을 말하여준다. 그가 배워간 발해음악이라는것은 다름아닌 고구려의 음악이였을것이다.

발해에서 계승발전시킨 고구려음악이 일본에 널리 알려지면서 일본에서는 769년에 고구려음악을 서술한 《해당악고려악》이라는 책까지도 출판할수 있었다.

발해사람들에 의하여 전파된 고구려음악은 일본궁중밖을 벗어나 일본의 여러 지방들에까지 퍼져나갔다.

780년 일본의 서대사에는 769년에 간행된 고구려음악해설도서와 고구려음악을 연주, 공연하는데 필요한 악기와 소도구, 의상들이 있었으며 (《녕락유문》 중권 도꾜당출판, 1965년, 411, 426, 427페지) 801년 11월초 당시 이세노구니(미에현 중부)의 다도사에는 일전에 이 지방장관인 기노 사바마로를 비롯한 관료들이 기증한 가무공연용 백색소도구인 《고(구)려견(고려의 개)》 1개와 《고(구)려모자》 2개가 보존되여있었다는것은 그것을 증명하여준다.

8세기 중엽경 발해가 일본의 음악분야에 영향을 줌으로 하여 중세 일본에서 편찬된 《무고구전》, 《왜명류취초》(935년경 미나모또 시따가우 편찬) 이라는 책에도 발해의 악곡인 《릉절》(《고려녀》, 《애기녀》)이 서술될수 있었다.

이상의 사실들은 일본음악사에서 《대륙음악수입시대》라고 부르는 7~8세기에 일본은 발해음악의 영향도 받으며 자기의 음악을 발전시켰다는것을 증명하여준다.

다음으로 9~10세기초에도 발해는 일본의 음악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 발해가 일본의 음악발전에 준 영향은 809년 3월 일본에서 횡적, 훈, 공후 등을 가르치는 4명의 《고려악사》(고구려악을 가르치는 관리)들을 아악료에 배치하여 고구려음악을 학생들에게 배워주게 한 사실에서 찾아볼수 있다. 일본에서 고구려음악을 자기 나라의 학생들에게 교육하였다는것은 일본사람들자체가 발해사람들에 의하여 계승되여오는 고구려음악이 우수하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는것을 말하여준다.

발해의 음악은 일본의 궁중뿐아니라 중을 비롯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전파되였다.

874년 3월 일본왕의 명령으로 정관사에서 100명의 중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대재회(불교행사)에서 아악료의 음악가들에 의하여 여러 나라의 음악과 함께 발해음악이 연주된것은 중을 포함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발해음악의 영향을 받았다는것을 말하여준다.

10세기초엽에도 일본에서는 발해사신을 위한 연회시에 가수 20~36명, 춤을 추는 녀자 20명, 춤을 추는 아동 10명을 참가시켰으며 고구려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아악료의 정식성원으로까지 고착시켜 발해의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게 하였다.

이것은 당시에도 일본에서 발해의 음악을 계속 장려하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이처럼 8세기~10세기초 발해사람들은 자기들이 계승발전시킨 고구려음악과 새로 창조한 음악들을 일본의 왕궁은 물론 지방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시킴으로써 일본의 음악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