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평양시 모란봉구역 민흥소학교부근에서 《백선행녀사기념비》가 발견되였다.
이미 알려진바와 같이 백선행(1848-1933)은 해방전 평양에서 자선사업으로 이름이 높아 소문났던 애국적인 녀인이다.
《사람들이 백선행을 존경한것은 그가 사회를 위해 유익한 일을 많이 하였기때문이다.》
백선행은 평양부 박구리(현재 평양시 중구역 중성동)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여나 스무살도 되기 전에 과부가 되였으나 80고령이 될 때까지 수절하면서 수수한 생활로 한생을 살았으며 저축한 돈을 사회를 위해, 민족의 계몽발전을 위해 기증하였다.
창덕학교(당시)를 비롯한 여러 학교들에 많은 토지와 자금을 기증한 백선행의 덕행을 찬양하여 1927년 7월 창덕학교 교직원들과 학부형들이 창덕학교근처에 《백씨선행기념비》를 세웠다. 《백씨선행기념비》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에 발견되였으며 현재 개건보수된 백선행기념관에 보존되여있다.
조사자료에 의하면 백선행이 세상을 떠나자 평양공회당건물이였던 백선행기념관에서 큰 추모회를 가지였는데 이때 기념관의 정면에는 백선행의 반신상이 있었으며 그밖에 숭현녀학교에 세운 백선행녀사기념비의 비문이 있었다고 하였으나 실체는 알려지지 않고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백선행녀사기념비》는 당시 숭현녀학교에 세웠던 비석으로서 이미 알려진 《백씨선행기념비》와 비석의 규모나 내용이 비슷하다.
발견당시 《백선행녀사기념비》의 비몸은 높이 1.9m, 너비는 60cm이며 두께가 32cm정도였다. 네모난 받침돌에 비석을 올려놓았던 흔적이 있으며 비몸우에 머리돌을 씌웠던 홈이 보이는것으로 보아 지붕돌을 얹었던것으로 인정된다.
비문은 한자로 씌여졌다. 앞면에 《백선행녀사기념비》(白善行女史記念碑)라는 8글자의 제목글을 내리새기고 뒤면에는 9행, 매 행에 33자정도씩 비문의 기본내용을 기록하였으며 왼쪽면에 비석을 세우는데 관여한 사람 13명의 이름자들을 써놓았다. 비문의 총글자수는 372자정도이다. 비돌은 대리석을 리용하였는데 비몸돌의 테두리와 비면이 약간 손상을 입고 일부 글자들이 파손되였으나 전반내용을 판독할수 있다.
비문은 1930년 8월 강규찬이 글을 짓고 배준렬이 글씨를 썼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조선의 제일 이름난 고장은 모두들 평양이라 일컬으지만 평양이 유명한것으로 되는 까닭은 비단 산천이 절승일뿐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훌륭하기때문이다. 여러 력사를 참고하여보면 뛰여난 인물과 슬기로운 선비, 남녀호걸들이 력대로 남에게 뒤지지 않았거늘 오늘의 백선행녀사가 곧 그 한사람이다. 대개 재물이라는것은 사람이 가지고 리득을 얻고싶어하는것이지만 모으기 어렵고 지키기 어렵고 리용하기 어려운 페단이 있다. 백선행은 세가지 어려움을 창조적노력으로 이겨내서 재물을 모을수 있었고 지켜낼수 있었으며 또 잘 리용할수 있었으니 가히 녀자중의 으뜸이라 할만하다. 녀사는 본래 평민의 딸자식으로서 나서 자랐고 시집을 간 후에는 또 가족의 단란한 락을 누리려 하였으나 이른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여 일찌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부지런하고 검박하게 생활하여 거액의 재산을 모을수 있었다. 세월이 감에 따라 년세가 많아지자 또 재물을 잘 리용하는것을 세상을 살아가는 락으로 여기여 빈궁한 사람들을 보면 재물로 구제하고 맨발로 강을 건느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다리를 놓아주었으며 학교를 보수하여 수재를 육성하게 하였고 회관을 설치하여 사람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공동의 리익을 위해 재물을 투자하여 구원한것이 무릇 수십만원이다. 일찌기 말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급선무는 녀자교육인데 숭현학교는 녀학교의 선도로 되니 어찌 장려하지 않겠는가.>고 하면서 드디여 몇만원의 많은 자금을 기여하였거늘 우리 학교의 행복으로 될뿐 아니라 역시 전사회적인 모범으로 되니 이에 감격을 금할수 없어 이때문에 비갈을 세워 기념하노라.
그 수양아들 최경렴 역시 선한 사람으로서 매번 의로운 행동을 하였지만 세상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을뿐이다.》
비문마감에 1930년 8월 사립학교인 숭현녀학교에 비를 세운다고 새기였다.
비문의 내용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
비문에서는 먼저 평양을 조선에서 제일 이름난 고장으로, 평양사람들을 가장 훌륭한 미덕을 지닌 사람들로 긍지높이 찬양하였다. 다음으로 저축한 재물을 사회와 공동의 리익을 위한 일에 서슴없이 바치는 훌륭한 미거를 발휘한 백선행의 행적을 찬양하였다. 마감에 백선행이 녀성교육실시의 현실성과 목적을 자각하고 숭현녀학교에 거액의 자금을 희사한데 대하여 찬양하였다.
당시 국권상실의 수치스러운 근원을 교육의 후진성에서 찾은데로부터 수천개의 사립학교들이 태여나 봉건의 구속에서 잠들고있던 나라를 각성시키고있을 때 평양일대에서 교육, 특히 녀성교육의 절박성을 깨닫고 거액의 자금을 후원한것은 백선행의 특이한 공적으로 된다.
《백선행녀사기념비》는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