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기 민족이 낳은 재능있는 작가, 예술인들을 내세우고 자랑할줄 알아야 한다.》 (
반만년의 유구한 민족사를 자랑하는 우리 나라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몸 아낌없이 바친 애국적인 녀성들과 뛰여난 창작적재능으로 우수한 작품들을 남긴 유명한 녀류작가들도 있다.
허란설헌(1563년-1589년)은 남존녀비사상이 지배하던 봉건사회에서 당대의 시문단을 빛내이는데 기여한 재능있는 녀류시인이였다.
그의 이름은 초희(《해동이적》에서는 옥례라고 함)이며 자는 경번, 호는 란설헌이다.
그는 강원도 강릉의 량반집에서 태여났으며 그의 집안은 모두 문장가로 당대에 이름을 날렸다.
이러한 가문의 학문적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난 그는 어려서부터 글을 배워 남달리 뛰여난 재능을 가지고있었다. 하여 7살때에는 시를 잘 지었고 그림도 재치있게 잘 그렸으며 산문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사람들로부터 《녀신동》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후 그는 서자출신으로 당대의 현실에 불만을 품어온 리달의 영향과 인생행로에서 겪은 자기의 곡절많은 인생체험에 기초하여 사상예술적으로 우수한 시가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하였다.
그는 26년간의 짧은 생애에 적지 않은 시들을 써서 당대 사회에서는 물론 봉건사회의 전 과정에 이채를 띤 녀류시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죽을 때 자기 작품들을 스스로 불태웠기때문에 현재 얼마 안되는 작품들만 전해지고있다.
그의 문집으로는 《란설헌집》이 있으며 대표적인 시작품들로는 《성 쌓는 괴로움》, 《가난한 집 처녀의 노래》, 《느낀바 있어》 등이 있다.
시《성 쌓는 괴로움》에서는 성쌓는 공사와 결부시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애국적감정을 노래하고있다.
시인은성 쌓는 부역에 동원되여 힘들고 고된 로동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동정하면서도 나라를 지킬 능력도 못가진 봉건통치배들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있다. 그리고 외적들이 또다시 쳐들어와도 끝까지 나라를 지키자면 높은 성을 쌓아야 한다는 사회적문제를 제기하고있다.
허란설헌의 시에서 중요한 묘사대상으로 된것은 같은 녀성으로서 봉건적구속에서 고통받는 녀성들의 불우한 생활을 그린것이다.
그것은 바로 서정시 《가난한 집 처녀의 노래》에서 잘 보여주고있다.
…
얼굴인들 예쁘지 않으랴
바느질도 길쌈도 잘한다네
너무도 가난한 집에
나서자란 탓인지
중매아비 하나도 찾지 않누나
밤은 깊어가도 베틀은 쉬지를 않네
짤깍짤깍 쓸쓸히 울리는 베틀소리
말코에 감긴 한필의 이 비단
어느 뉘의 옷감이 되려나
가위 든 열손가락
추위에 꽛꽛이 곧아드누나
남의 집 혼수를 지어만 줄뿐
해마다 외로이 빈 방을 지키네
시에서는 인물도 예쁘고 재간도 뛰여났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여난 탓에 밤새도록 얼어드는 손을 녹이며 잠시도 일손을 놓지 못하고 천을 짜야 하는 처녀의 눈물겨운 정상 그리고 그렇게 짠 천을 모두 부자집부녀자들에게 빼앗기고 자신은 헐벗어야 하는 처녀의 가련한 처지와 서러움을 비교적 실감있게 노래하고있다.
시인은 시 《느낀바 있어》에서도 부자집과 가난한 집의 판이한 두 현상을 대비의 수법으로 묘사함으로써 불공평한 사회적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동쪽집엔 세도가 불길같아
높은 루에서 풍악울려 잔치하고
북쪽집은 가난하고 헐벗어
거적문안에서 굶주리며 살아가네
하루아침 동쪽집의 높은 루가 무너져
도리여 북쪽집이 부럽게 되였으니
잘 살고 못 삶이 서로 엇바뀌는것
이 또한 자연의 리치이리라
허란설헌은 이밖에도 녀성으로서의 독특한 정신세계와 애정륜리생활을 노래한 많은 시들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일련의 제한성이 있으나 당대 사회에서는 이채를 띠는것들이였다.
하기에 우리 나라에 왔던 이웃 나라 사람들은 그의 시들을 보고는 주옥같은 시편이라고 절찬하면서 그의 시집도 출판해주었고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보고는 신선이 되여 백옥루에 올라가는것만 같다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허란설헌은 뛰여난 창작적재능으로 조선시문단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이름있는 녀류시인들중의 한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