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위인적풍모에 매혹되여

 2020.5.26.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상과 정견이 다른 사람들도 누구든지 우리 수령님을 한번 만나뵈오면 그 고결한 인품에 매혹되여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한번 만나뵈오면 그 고결한 인품에 매혹되여 끝없이 흠모하고 존경하는 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였다.

그가운데는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겨 인생의 새 삶을 찾은 가네마루 싱도 있다.

1990년 9월 28일 밤 도꾜의 나리다비행장에 착륙한 한대의 려객기에서 70객의 늙은이가 틀진 걸음으로 승강대를 내렸다.

그러자 역사앞에 모여있던 기자들이 그를 에워싸고 평양방문에 대한 소감과 기분상태 그리고 김일성주석님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것이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들이대기 시작하였다.

제가끔으로 떠들어대는 기자들을 천천히 일별하면서 그는 정말 훌륭한 방문이였다고 하면서 김일성주석각하를 만나뵙고 그분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것을 나는 숨기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진심으로 존경하는 위인에게 매혹된것은 결코 수치가 아니기때문이라고, 나는 비록 생의 말년을 살고있는 정치가이지만 김일성주석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것이며 이것은 정치가로서 나의 마지막사명이라고 발언하였다.

그가 다름아닌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3국을 경유함이 없이 우리 나라에 직접 온 첫사람으로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인생전환을 선포한 일본정계의 실력자 가네마루 싱이였다.

가네마루 싱은 1990년 당시 자민당 다께시다파의 회장이며 고문으로서 정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있었다.

1990년 9월 조일 두 나라사이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전 부수상 가네마루 싱을 단장으로 하는 일본의 자유민주당대표단이 평양에 오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네마루일행이 평양에 도착한 후 9월 26일 친히 그의 숙소에 가시여 담화하신데 이어 다음날인 9월 27일에 가네마루를 또다시 접견하시고 그와 조일관계개선과 관련한 문제들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시였으며 그를 위하여 오찬을 차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를 방문한 가네마루와 공개회담은 한번, 단독회담은 두번 하시였다.

이어 조선로동당과 일본의 자유민주당, 사회당의 공동회담이 진행되였다.

주체79(1990)년 9월 28일 평양에서는 조선로동당과 일본자유민주당, 일본사회당대표단이 3당공동선언 조인식을 진행하고 3당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가네마루는 3당공동선언이 합의되여 발표된것을 두고 매우 만족해하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는 순간부터 수령님의 위인적풍모에 매혹되여 남은 여생을 조일관계개선에 다 바칠것을 마음다졌다.

가네마루의 평양방문은 일본은 물론 서방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특히 일본의 우익세력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아우성을 쳤다.

이로부터 일본의 우익반동들은 평양으로 기울어진 가네마루를 돌려세우기 위해 별의별 비렬한짓을 다하였다.

그들은 우익잡지 《슈깡분순》, 《슈깡지지》에 《굴욕의 외교》, 《나라를 팔아먹는 가네마루》라는 험담기사를 내는가 하면 방송차를 동원하여 가네마루의 사무소와 집주변을 돌아치며 그의 정치적인기를 떨구기 위해 온갖 비방중상을 일삼았다. 지어 폭력배들을 내세워 그에게 협박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위압전화를 걸기도 했다.

어느날 낮 가네마루의 사무소에 뛰여든 정체불명의 사나이들은 그의 가슴에 권총을 들이대고 조선로동당과 일본의 자유민주당, 일본사회당사이의 3당공동선언을 무효화하고 평양을 찬미하는 일체 활동을 중지할것을 강압해나섰다.

삶이냐 죽음이냐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된 가네마루는 주저없이 자기를 겨눈 총구앞에 나서 추상같이 웨쳤다.

《나는 이미 어느때 어떤 놈의 총이나 칼에 맞아 죽는다 해도 김일성주석님을 따르는 마음만은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이다.

너희들도 내 고집을 알테지, 난 한번 마음먹으면 그만이다, 총이 아니라 대포를 가지고 온대도 내 고집은 돌려세울수 없어, 난 신의를 목숨보다 더 귀중히 여긴다, 그러니 마음대로 해라.》

너무도 도고한 가네마루의 기세에 위압된 정체불명의 사나이들은 비실비실 도망쳐버리고말았다.

가네마루는 우익반동들의 발악이 우심해질수록 3당공동선언실현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었다.

그는 수상과 외상에게 일조국교정상화를 위한 정부간교섭을 빨리 추진시키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아직 한번도 관여해본적이 없던 일조우호촉진의원련맹을 정계의 고위인물들로 대폭 갱신하도록 하고 자기가 직접 그 조직의 최고고문직을 맡아나섰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과 한 약속을 지켜 조선로동당창건 45돐경축행사에 일본자민당 간사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보내였다.

일본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그이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여생을 그야말로 초불처럼 태워가는 가네마루를 가리켜 《김 가네마루》라고 불렀다.

《김 가네마루》 …몇천, 몇만마디의 말과 글로도 담겨진 뜻을 다 표현할수 없는 그 이름에는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겨 비로소 구새먹은 고목과도 같은 인생에 새 삶의 꽃을 피운 가네마루의 운명지사가 함축되여있었다.

주체80(1991)년 2월 조선로동당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하였다.

그때 가네마루는 우리 대표단성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진심으로 김일성주석각하를 위대한 정치가로 높이 존경하고있으며 조선의 편에 언제나 서있을것이라는것을 믿어주기 바란다고, 내가 김일성주석각하께 생명을 바치겠다고 하는것은 바로 그 길이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인정하기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며 만약 내가 김일성주석각하께 다진 맹세를 어긴다면 그것은 벌써 죽은 가네마루일것이라고, 그러므로 나는 김일성주석각하를 위하여 생을 바치는것외에는 더 할 일이 없다고 하면서 나는 김일성주석각하께서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하고 목숨을 바칠 일이 있으면 그렇게 하는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있으며 내가 김일성주석각하를 위하여 생명도 바치겠다는것을 그이께 정식 보고드려주기 바란다고 이야기하였다.

가네마루 싱, 그는 바로 이런 사람이였다.

가네마루는 1996년 3월 28일 81살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자기의 마지막사명을 끝까지 다하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만사람을 따뜻하고 너그럽게 대해주시며 넓은 도량으로 안아주시였기에 가네마루 싱도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겨 인생의 새 삶을 찾을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