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우리 조국의 자랑스러운 력사속에는 당과
《세계적으로 소년근위대와 소년빨찌산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 나왔으며 자기
비록 나이는 어리고 투쟁한 년대는 서로 달라도 당과
우리 나라 북부의 풍서군 읍에서 90리가량 떨어진 신명리의 황초덕마을에 자리잡고있는 산골학교의 평범한 소년단분단위원장이였던 리창도학생은 14살의 나어린 소년이였지만
주체59(1970)년 5월 어느날이였다.
리창도학생과 그의 동무들은 하루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중 마을 앞산에서 한줄기의 연기가 솟구쳐오르면서 세찬 불길이 피여오르는것을 보게 되였다. 그들은 일제히 급한 경사지를 톺아올라 불길속에 뛰여들었으며 웃옷을 벗어들고 퍼그나 번져진 산불을 끄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불길은 어린 그들을 희롱하듯 점점 더 기승을 부리며 넓은 면적으로 퍼져갔다.
이렇게 되자 리창도학생은 불길이 번지는 곳으로부터 10여m우로 뛰여올라가 방화선을 치도록 동무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퍼져가는 불길에 방화선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나 조국의 푸른 숲을 보호하여야 한다고 생각한 리창도학생을 비롯한 소년단원들은 사나운 불길속에 몸을 던지고 굴기 시작하였다.
뜨거운 열기와 사나운 불길에 옷과 신발 지어는 눈섭과 머리칼까지 타들었으나 소년단원들은 그 모든 고통을 이악하게 참아내며 불우에 몸을 굴리고 또 굴렸다. 이들의 희생적인 노력에 의하여 그처럼 사납게 타번지던 불길은 어느덧 수그러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또 불길이 일어났다.
세차게 타번지기 시작한 불길을 보자 소년단원들은 한결같이 불판을 향해 또다시 몸을 던지였다.
자기들의 한몸으로 사납기 그지없는 세찬 불길을 깔아뭉개며 한치 또 한치 기여다니는 그들의 귀전에는 리창도학생이 웨치는 목소리가 쟁쟁히 들려왔다.
《동무들, 조국을 위하여 아동단원들처럼 한목숨 바치자!》
딩굴수 없는 곳에서는 온몸으로 불길을 덮는 남학생들의 뒤를 이어 녀학생들과 어린 학생들도 서로 어깨를 겯고 불더미들을 덮었다.
이렇게 하기를 수십번… 불에 그슬리고 탄 몸들이였지만 그래도 소년단원들은 굴하지 않고 계속 불을 꺼나갔다.
바로 이때 리창도학생은 동생으로부터 2명의 녀학생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심한 화상을 입고 몸도 겨우 가누는 상태였지만 소년단분단위원장으로서의 자기 위치를 자각한 그는 자기 한몸을 바쳐서라도 두 어린 녀학생들을 구원할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흐려지는 의식속에서도 안깐힘을 다 내여 불속을 헤치던중 불무지우에 몸을 덮은채 쓰러져있는 두 어린 녀학생들을 발견하였다.
정신이 가물거리고 세찬 불길에 입은 화상으로 하여 제몸도 지탱하기 힘들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질식되여 쓰러진 녀학생들을 량팔에 낀채 가까스로 불속을 헤치고나왔다.
뒤늦게 달려온 마을사람들에게 그 녀학생들을 맡기고 쓰러진 리창도학생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조국의 푸른 산을 지키고 나어린 녀학생들을 구원한 리창도학생은 이렇게 우리곁을 떠나갔지만 그는
조선소년단창립 25돐이 눈앞에 다가오고있던 주체60(1971)년 5월 중순 학습과 소년단생활에서 특출한 모범을 보인 소년단원들을 소년단창립일을 맞으며 표창할데 대한 문제를 료해하시던
일군으로부터 소년단분단위원장 리창도학생을 비롯한 11명의 소년단원들이 발휘한 집단적인 소행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그들모두에게 소년영예상을 수여하려고 한다는 일군의 보고를 받으신
그리하여 주체60(1971)년 6월 5일 당시 량강도 풍서군 신명중학교의 리창도학생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할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이 많아 세상사람들이 영웅의 나라라고 부르는 우리 나라이지만 그때까지 공민권을 못 가진 14살소년이 영웅칭호를 받은 그런 례는 일찌기 없었으며 이것은 세계 어느 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놀라운 일이였다.
이것은 우리 아이들을 나라의 왕으로 내세워주시고 그들의 자그마한 소행도 귀중히 여기고 빛내여주시는
참으로
오늘 우리 학생소년들에게는
후대들을 끝없이 사랑하시고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멀고 험한 전선길을 끊임없이 걷고걸으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