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독특한 형성안

 2024.6.1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새것을 창조하는 김정일동지의 창조력은 그가 지도하여 완성하여놓은 창조물들을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 그가 지도하여 일떠세운 건축물이나 창조한 예술작품들은 모두가 개성이 있고 독창적입니다.》

주체형의 혁명적당건설위업에 쌓아올리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며 오늘도 거연히 솟아 빛나는 당창건기념탑!

이 기념탑의 형식에도 조선로동당의 창건과 강화발전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당건설업적을 기념비화하여 길이 빛내이시려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숭고한 뜻과 비범한 예지가 깃들어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로동당창건 50돐을 맞으며 의의있는 기념탑을 세울것을 몸소 발기하시고 탑을 세울 위치와 탑의 형식, 원형띠의 구호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당창건기념탑형성안을 만들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실 때의 일이다.

당시 형성안들은 기념탑의 기본주제를 이루는 우리 당을 상징하는 마치와 낫과 붓을 교차시킨 당마크를 그대로 탑우에 올려세운 형식의 도식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마크를 그대로가 아니라 마치와 낫과 붓을 각각 수직으로 세워 탑신으로 하고 그것을 원통형의 띠로 묶어서 형성한 백두산건축연구원에서 올린 안으로 더 세련시켜보라고, 이 3안이 마음에 든다는 친필을 새겨주시였다.

일군들의 생각은 참으로 깊었다.

사실 3안으로 말하면 대형원형띠안에 마치와 낫, 붓을 곧추 세워 형상한 안이였다.

그때 일군들과 창작가들은 마치와 낫, 붓을 각각 곧추 세워놓으면 탑이 분리된감을 준다고 하면서 당마크의 형태대로 탑신을 형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형식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마치와 낫과 붓을 곧추 세워 형상한 형성안을 최종적으로 선정한 4건의 형성안에서 순위상 3안으로 보고드렸던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장군님께서 바로 그 3안을 선정해주신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새겨안을수록 일군들과 창작가들은 그이의 비범한 예지에 대하여 더더욱 절감하였다.

만일 당마크형식으로 기념탑을 건립하면 정면에서 볼 때는 당마크가 제대로 안겨올수 있었지만 좌우측면에서 볼 때는 그저 큰 기둥을 하나 세워놓은것 같은 단조로운감을 줄수 있었다. 또한 붓을 하나의 탑신으로 하고 거기에 의지하여 육중한 마치와 낫을 서로 경사지게 시공한다는것은 이만저만 난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마치와 낫과 붓을 곧추 세워 형성하면 각기 3개의 탑신이 일정한 시공간을 두고 솟아있게 되므로 어느 측면에서 보아도 조형미와 웅장성이 잘 안겨올수 있었고 일심단결을 상징하는 대형원형띠의 형상으로 하여 탑의 분리된감도 예술적으로 처리할수 있는것은 물론 시공상 안전성도 보장할수 있었다.

더우기 주체사상탑에 당마크를 높이 든 로동자, 농민, 지식인의 3인군상이 형상되여있는 조건에서 류사성도 피할수 있었다. 특히는 《하나의 기념비는 하나의 탑신》이라는 종래의 기념비형성관례를 벗어나 당창건기념탑을 그 어디에도 없는 새롭고 독특한 형식으로 형성할수 있었다.

당창건기념탑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점들을 헤아려보시고 3안을 당창건기념탑의 형성안으로 선정하여주시였던것이다.

일군들과 창작가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무엇을 생각못했는지, 왜 3안이 선택되였는지를 깨닫게 되였다.

그후 완공된 당창건기념탑을 돌아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창건기념탑이 아주 멋있다고, 당창건기념탑을 당마크형식으로 형상하지 않고 마치와 낫과 붓을 곧게 세워 틀어쥔것으로 형상하니 형식도 독특하고 보기도 좋다고 하시면서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훌륭히 일떠선 당창건기념탑은 주체혁명위업과 인류의 자주위업을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로동당의 상징이며 조선식 사회주의의 일심단결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