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선우협과 룡곡서원

 2023.7.24.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법운암과 룡곡서원은 다 우리 민족의 재능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적재보입니다.》 (김정일전집》 제9권 354페지)

룡곡서원은 유학자 돈암 선우협(1588-1653년)을 제사지내며 봉건교육을 강화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서 평양시 만경대구역 룡봉리에 있다. 이 서원은 1656년 처음 세웠다가 1713년에 고쳐 세운것이 지금 남아있는 건물이다.

선우협은 조선봉건왕조중엽의 학자로서 태천에서 살다가 아버지를 따라 평양에서 살면서 희릉참봉, 성균관 사성 등의 벼슬을 지냈다. 23살때 고향에서 김태좌에게서 글을 배웠고 꾸준히 학문을 탐구하여 학식이 풍부하였으므로 그에게서 배운 제자들이 많았다. 후에 룡악산에 들어가 학교를 세우고 수십년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1636년 청나라침략자들이 침입해왔을 때 양의직, 홍내범 등과 함께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보산성에서 용감히 싸웠다. 그후 조선봉건왕조에서 여러번 벼슬을 내리였으나 사양하였다. 죽은 후 평양과 태천사람들이 각기 사당을 짓고 제사지냈다. 룡악산남쪽에 룡곡서원과 돈암비가 있다. 그의 저서로는 《태극변해》, 《태극문답》, 《성회제서》 등의 도서들과 문집 《돈암전서》가 있다.

룡곡서원
사진. 룡곡서원

맑은 하늘에 푸른 메부리 치솟아있고 산마루에는 바위들이 험하게 드러나있어 마치 룡이 아가리를 벌리고있는듯 하여 불리워진 룡악산, 기세좋게 솟아있는 대봉과 기묘한 바위와 절벽들이 있어 평양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리우는 룡악산의 남쪽어귀에 룡곡서원이 자리잡고있다.

룡곡서원은 사방을 돌로 쌓아 둘러막고 그안에 앞의 강당구역과 뒤의 사당구역을 가르는 담장을 쌓았다. 경사진지형을 그대로 잘 리용하여 앞에서부터 뒤로 가면서 조금씩 높아지게 건물들을 차례로 지었다. 앞의 큰 문(바깥문)으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의 량쪽에 동재와 서재가 마주서 있고 마당북쪽의 계단을 올라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뒤쪽에 사당이 있으며 그 서북쪽 조금 더 높은 곳에 비각이 있다.

바깥문은 정면 3간, 측면 1간의 2층 배집인데 1층은 가운데 1간이 문간이고 좌우의 1간씩은 토벽을 쌓아 막았다. 2층은 통칸으로 하고 바닥에 마루를 깔았으며 앞뒤(남쪽과 북쪽)는 그냥 틔여놓고 량옆(동쪽과 서쪽)은 토벽 한가운데에 창문을 냈다. 이 건물의 1층은 서원으로 나드는 문이였으며 2층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당으로 리용되였다.

동재는 정면 3간(7.95m), 측면 2간(3.6m)의 배집인데 오른쪽 2간은 앞퇴를 내고 그 퇴마루안에 띠살무늬문짝을 둘씩 달았으며 북쪽 1간에는 띠살무늬문짝 하나를 달았다. 서재도 규모와 구조가 동재와 같다.

사당은 정면 3간(8.55m), 측면 3간(5.69m)에 모루단청을 곱게 입힌 배집이다. 앞면에만 2익공두공을 얹고 높은 지붕의 량옆면에는 풍판을 대였으며 앞 1간은 퇴간으로, 뒤 2간은 대청으로 하고 대청칸앞에 띠살무늬사분합문을 달았다. 사당의 처마밑에 서원현판이 걸려있다.

비각에는 이 서원의 현존건물들이 1713년에 세워진것임을 밝혀주는 내용을 새긴 비가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52(1963)년 3월 룡곡서원을 찾으시여 원상대로 보수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52(1963)년 3월과 주체55(1966)년 10월 룡곡서원을 돌아보시면서 이 서원은 우리 민족의 재능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적재보라고, 자기 민족의 슬기로운 력사와 찬란한 문화가 깃든 력사유적들을 원상대로 다 복구해놓아야 한다고 하시였다.

룡곡서원은 평양8경의 하나인 《룡산만취》(룡악산의 푸른 빛)로 유명한 푸른빛 짙은 룡악산기슭에 자리잡고있는것으로 하여 그 모습이 기이하리만큼 아름다우며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후대사랑, 미래사랑에 의하여 현대적으로 꾸려진 소년단야영소와 여러가지 봉사시설을 갖춘 유원지와 더불어 오늘도 우리 인민들과 청소년학생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하나의 문화휴식터로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