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현일봉
2022.5.24.
이민위천을 필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을 위한 고생을 락으로 여기시며 이 땅우에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의 한평생은 말그대로 우리 인민에 대한 사랑의 한생, 헌신의 한생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며 인민이 바란다면 돌우에도 꽃을 피우고 저 하늘의 별도 따와야 한다시며 생신날, 명절날도 다 잊으시고 로고를 바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한평생을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투쟁에 바치시였으며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쌓으신 특출한 업적으로 하여 오늘도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인민의 어버이, 인민의 수령으로 영생하고계십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2권 39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 나라 대가정의 천만사를 한품에 안으시고 돌보셔야 할 일, 찾아가셔야 할 곳이 너무도 많으시여 자신의 생신날마저 잊으시고 인민을 위해 바치신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 하많은 날들가운데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해인 1994년의 뜻깊은 태양절도 있다.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82돐이 되는 주체83(1994)년 4월 15일 온 나라 인민들이 뜻깊은 명절을 경축하여 즐거운 휴식을 하고있던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만은 몹시 바쁘신 시간을 보내시였다.
그무렵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명절을 맞는 우리 인민들에게 어떻게 하나 한가지라도 더 색다른것을 마련해주시려고 마음쓰시였고 탄생일을 축하하려고 찾아오는 세계 여러 나라 국가 및 정부수반들, 당수들, 대통령특사들을 비롯한 수많은 외국손님들을 만나주시느라고 정말 분과 초를 나누어가며 정력적으로 사업하시였다.
그러다나니 생신날에도 사업부담이 너무 많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몹시 피로해하시였다.
생신날에도 쉬지 못하시고 다음날 또다시 일감을 잡으시는 어버이수령님께 한 일군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휴식을 하셔야 하겠다고 간절히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보시던 문건에서 잠시 눈길을 떼시고 그 일군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면서 고맙다, 동무들은 나를 보고 자꾸 휴식을 하라고 하는데 나도 쉬고픈 때가 많다, 정말 이제는 나이 80살을 넘기고보니 일이 힘들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편히 휴식을 하고싶다, 그럴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것이 인민들의 생활이 높아지지 못하는것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 일군은 어버이수령님께 이제는 인민들의 생활때문에 너무 마음을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수령님의 은덕으로 우리 인민들은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행복하게 살고있다고 말씀올리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어버이수령님의 건강때문에 걱정하고 계신다고, 오늘만은 쉬시여달라고 다시금 간청하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생활때문에 마음을 놓을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김정일동지가 자신의 건강때문에 마음을 쓴다는것은 자신께서도 잘 알고있다고, 김정일동지도 인민들의 생활이 걱정되여 밤낮없이 일하고있는데 자신께서도 일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는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10대, 20대인 한창 나이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면서 고생을 하였다고,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힘이 드는것 같다고 하시며 그러나 인민들을 더 잘 먹이고 더 잘살게 하기 위해 현지지도를 계속하고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민위천은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자신께서는 지난 시기에도 그러하였던것처럼 앞으로도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고 한생을 인민을 위해 바치려고 한다고 절절하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 탄생일마저도 조국과 인민을 위해 다 바치시고 그 다음날에도 애민헌신의 자욱을 새겨가신 어버이수령님의 끝없는 사랑의 세계를 전하여주는 이날의 이야기는 이민위천이야말로 어버이수령님의 필생의 좌우명이였다는것을 우리 모두의 가슴가슴에 뜨겁게 새겨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