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추악한 세균전범자의 행적

 2020.4.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세계적으로 제일 간악한것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였습니다.》 (김일성전집》 제90권 333페지)

지난 세기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대륙침략전쟁을 미친듯이 벌리면서 세균무기를 연구개발하고 조선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곳에서 수많은 인민들을 대상으로 짐승도 낯을 붉힐 세균무기시험과 생체실험을 감행하는 반인륜적죄행을 저질러 인류력사에 보기드문 추악한 범죄의 한페지를 남기였다.

바로 그 악마의 무기를 연구개발하고 그를 통하여 무고한 인민들을 야수적으로 살륙한 일제살인악마들중에서 첫번째로 꼽아야 할것이 바로 이시이 시로일것이다.

이시이는 악마의 무기인 세균무기의 연구개발자, 첫 세균전부대의 조직자, 부대장이였다.

1920년 3월 교또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이시이는 일제침략군 륙군군의중위로 되여 도꾜제1륙군병원에서 군의로 근무하였으며 1924년부터 1928년까지 교또제국대학에서 세균학, 위생학, 병리학을 연구하면서 세균무기연구개발과 관련한 준비를 하였다. 1928년 4월부터 1930년말까지 도이췰란드에 머무르면서 유럽나라들의 세균무기연구개발실태를 조사하였다.

귀국후 이시이는 1931년 1월 륙군군의학교 교관으로 있을 때 철광석과 같은 지하자원이 부족한 일본에서는 땅크나 포와 같은 무기보다 세균무기가 값이 눅고 효과적이라고 하면서 세균전부대의 창설을 주장하였다.

1932년 1월 이시이식세균배양기를 개발한 이시이는 륙군군의학교 방역부에 세균무기개발을 위한 방역연구실을 설립하였으며 이후 만주로 가서 할빈시 북쪽에 세균무기연구소를 설립하였다. 당시 일제군부는 세균무기의 비밀보장을 위해 이 연구소를 도고부대(당시 이시이는 도고라는 가명을 가지고있었음)라고 불렀다.

1936년에 도고부대를 모체로 관동군사령부에 방역급수부가 설치되였고 1941년 4월에는 세균전부대로서 만주제731부대라는 대호를 가지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세균무기의 개발자인 이시이는 일제의 세균전부대인 731부대의 창설자, 첫 부대장으로 되였다.

이시이는 무고한 조선사람들과 중국사람들을 대상으로 세균생체실험을 직접 조직하고 집행한 수급전범자이다.

이시이는 일본의 세균전부대의 창설자이며 중국동북지방의 각지에 배치되여있는 731부대의 지부들을 관할하는 관동군방역급수본부 부장이였다. 그러므로 중국동북지방에서 일제의 세균무기연구와 생체실험 등 모든 세균전범죄는 이시이의 지휘밑에 조직되고 감행되였다고 할수 있다.

이시이의 지휘밑에 731부대에서는 조선사람과 중국사람들을 마루다(丸太, 껍질벗긴 통나무라는 뜻)라고 부르면서 그들에게 직접 세균무기시험, 생체실험을 감행하였다. 그 희생자수는 1만명이상이나 된다.

731부대에서 일제살인마들이 감행한 생체실험이 얼마나 잔인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다음의 자료들이 폭로해주고있다.

《체포된 한 임신부는 감옥에서 해산하였다. 그 녀인은 자기들이 <통나무>(생체실험대상으로 된 사람)로 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는 매일 눈물을 흘리면서 간수들에게 자기는 어떠한 실험을 당해도 좋으니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부대에서는 <실험용에미>는 <실험용새끼>만을 낳을수 있다고 하면서 그 녀인의 애원을 귀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후 어머니도 아이도 다 <통나무>가 되여 살해되였다.》

《마스크를 끼고 흰 위생복을 입은 <연구사>들은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임의의 시각에 사람들의 육체를 동강냈다.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쓴 이 살인악당들에 의해 방금전까지 성성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몇개의 고기덩어리로 변하여 액체가 담긴 용기속에 잠기군 하였다.》

731부대의 야만적인 생체실험만행들은 전범자들에 대한 심문기록과 그 부대에서 복무한자들의 진술을 통하여 더욱더 낱낱이 폭로되였다.

한 전쟁범죄심문기록장에는 생체실험에 참가한 일본군 군의관의 진술내용도 있는데 거기에는 포로의 팔과 다리를 피가 통하지 않도록 묶어 10분만에 죽게 하거나 세균을 주사하여 패혈증으로 숨지게 하는 등 세균전죄행들이 적혀져있었다. 731부대에 근무하였던 대원들도 페스트균을 주사한 중국인의 팔다리를 실험대에 묶고 자갈을 물린채로 12~13분내에 해부를 진행하여 신체에서 장기를 떼낸 다음 그것을 병리실험에 넘긴 사실과 산 사람을 마취도 하지 않고 해부한 사실들에 대해 토설하였다. 참으로 인간의 탈을 쓴 야만들만이 저지를수 있는 잔악무도한 범죄였다.

이시이는 조선전쟁시기 또다시 세균전만행을 감행한 극악한 전쟁범죄자이다.

이시이를 비롯한 731부대의 살인악마들은 응당 인류의 징벌을 받아야 할 전쟁범죄자들이였다.

그러나 패망당시 일제는 731부대를 비롯한 세균전부대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사실을 은페시키려고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

1945년 8월 9일 조선인민혁명군의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이 개시되자 일제는 대본영참모를 만주에 파견하여 이시이에게 731부대의 세균전관련시설들을 빨리 파괴할데 대하여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이시이는 731부대의 세균전관련시설들을 모조리 파괴하였으며 대부분의 부대관계자들과 함께 렬차를 타고 조선을 거쳐 일본으로 도주하였다.

일본으로 도주한 이시이는 731부대의 세균전실험자료들을 여기저기에 분산시켜 숨겨놓았으며 전범자로 체포되는것이 두려워 고향에서 거짓장례식까지 벌려놓으면서 정체를 숨기였다.

그후 이시이는 전범자혐의를 받고 체포되기는 하였지만 점령군의 비호밑에 아무런 징벌도 받지 않았다. 점령군은 체포된 이시이를 비롯한 731부대출신 세균전전범자들을 자국전문가들이 심문하도록 하며 중요한 정보를 쏘련측에 넘기지 말데 대하여 일본에 있는 점령군사령부에 지시하였다. 생체실험자료를 쏘련측에는 비밀에 붙이고 점령군에만 제공하는 조건밑에 이시이를 비롯한 731부대의 주요관계자들이 전범자명단에서 모두 제외되였다. 뿐만아니라 각종 위장간판을 단 의학연구기관들에 계속 종사하면서 세균전과 관련한 연구활동을 계속할수 있게 되였다.

일본점령국의 비호밑에 징벌을 면한 이시이는 조선전쟁시기 우리 인민을 대량학살하기 위한 세균전만행을 또다시 감행하였다. 이시이는 조선전쟁초기에 이전 731부대의 세균전전범자들과 함께 대한민국에 기여들어 4개월동안 머무르면서 세균무기인 류행성출혈열병균의 효과성을 확인하고 보다 병원력이 강한 병원체를 연구생산하여 유엔군측에 넘겨주었다. 1951년 12월 8일에는 악성전염병균인 페스트와 콜레라균을 싣고 대한민국에 기여들어 그 효과성을 확인하는 등 유엔군의 세균전만행에 적극 협력하였다.

이처럼 이시이를 비롯한 살인악마들이 감행한 세균전만행은 인류의 복리증진에 이바지하여야 할 의학과학을 도용하여 인류를 멸살시킬것을 노린 특대형범죄행위이다.

하지만 파렴치하기 그지없는 일본반동들은 731부대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면서 이시이 시로를 두목으로 하는 살인마들이 저지른 범죄적사실을 력사의 흑막속에 묻어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고있다.

일본반동들이 아무리 저들의 어지러운 과거를 부정하려고 모지름을 써도 력사가 증명하는 반인륜적죄악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일본은 더 늦기 전에 군국주의조상들이 저지른 죄악을 허심하게 인정하고 조선인민을 비롯한 아시아인민들에게 사죄배상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