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넓은 령토와 발전된 문화를 가진 강대한 나라였으며 고구려인민들은 매우 용감하고 애국심이 강하였습니다. 고구려의 강대성과 높은 문화수준은 우리 민족의 커다란 자랑입니다.》 (
동방의 천년강국 고구려는 문화발전수준에 있어서도 그 이름이 높았다.
고구려의 발전된 문화를 보여주는 많은 사실자료들가운데는 철령유적에서 발견된 말모형도 있다.
고구려의 말모형은 1990년대초 강원도 고산군과 회양군의 경계를 이루는 철령의 서쪽 봉우리 동남쪽기슭에 있는 건물터에서 나왔다.
발견된 58점의 청동 및 쇠말모형들은 하나의 군상을 이루고있었는데 당시 고구려의 군사력과 상무적기풍, 높은 금속공예발전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발견당시 말모형들은 맨앞에 19개, 가운데에 20개, 맨뒤에 19개로 일정한 대형을 짓고 3개의 무리를 지어 남쪽으로 향해있는 상태였다.
말모형들은 무리마다 가장 큰 말모형을 선두로 하고 그 좌우와 뒤쪽에 크고작은 여러 말모형들을 배치하여 매 무리의 말모형들 호상간의 주종관계를 나타내고있다. 말모형들의 거의 모두는 자갈과 고삐, 안장을 갖추고있으며 그중에는 말갑옷을 씌운 개마도 적지 않다.
말모형들의 이러한 전체 구성과 형상은 이 말모형들이 보통 말무리가 아니라 당시 고구려군사들이 타던 군마들로서 중무장과 경무장을 한 각이한 등급의 기마군사들로 편성된 대기마부대의 행렬을 형상한것이라는것을 짐작케 한다. 특히 개마모형의 형상은 고구려무덤벽화들에 그려진 개마무사들의 말과 그 형상이 꼭 같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동천왕 20년(246년)조에도 고구려-위나라와의 전쟁시 왕이 《철기 5천》을 거느리고 적들을 추격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철령유적의 개마모형은 바로 고구려에 일찌기 개마무사가 기본병종의 하나로 있었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는것이다.
발견된 58점의 말모형가운데서 4개는 청동으로 만든것이고 나머지 54개는 철로 만든것이다. 말모형의 크기는 대, 중, 소의 세부류로 되여있으며 같은 크기에서도 형태가 같은것은 한점도 없고 주조상태는 매우 좋다.
대형의 말모형중에서 제일 큰것은 길이 28㎝, 높이 19㎝, 무게가 10㎏이고 중형의 말모형가운데서 가장 큰것은 길이 20㎝, 높이 13.5㎝, 무게 2.5㎏이며 소형의 말모형가운데서 가장 큰것은 길이 12㎝, 높이 12.5㎝, 무게 0.9㎏이다.
금속의 속성으로부터 그 용융물의 주조가 쉽지 않다는것을 고려할 때 하나의 유적에서 한두점도 아닌 수십점의 금속공예품이 한꺼번에 나왔고 그것도 서로 다른 거푸집에 의한 주조품이였다는 사실은 당시 고구려의 발전된 주조술과 금속가공술을 알수 있게 한다.
말모형들가운데서 예술적으로 제일 잘된것은 가운데무리의 앞줄중심에 있는 청동말모형이다.
이 청동말모형은 다른 말모형들에 비하여 자갈과 고삐, 굴레, 안장 등 마구일식이 매우 세련되고 섬세한 솜씨로 형상되여있다. 그 가운데서 말안장은 매우 섬세하게 조각되였는데 마치 두터운 깔개를 먼저 한벌 깔고 그우에 수놓인 담요를 덧놓은 다음 화려한 안장을 올린 당시의 마구상태를 그대로 꾸밈없이 반영하고있다. 형상의 구체성과 섬세성은 안장뿐아니라 말의 눈과 코구멍, 갈기, 발통들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이것은 이 말모형을 만든 공예사가 주조용의 원형제작단계에서부터 주조품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말을 생동하게 형상하기 위하여 세심한 관찰과 깊은 주의를 돌렸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말모형들은 구성에서도 세련된 수법을 보여주고있다. 모든 말모형들이 정지된 자세를 유지하고있으며 말무리구성상 앞쪽의 말들은 크게 형상하고 뒤로 갈수록 작게 만드는 수법을 반복적용함으로써 전체적대형이 파도형을 이루고있었다. 그리하여 작품전반은 마치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앞으로 전진하는듯 한 기마행렬의 률동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여준다.
모든 사실은 철령유적의 말모형들이 일반 말무리가 아니라 전군, 중군, 후군으로 편성된 고구려군의 기마행렬을 형상한 모형들이라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말모형들과 함께 철령의 건물터에서는 철로 만든 《사신》의 모형도 함께 드러났다. 말모형군상 행렬의 앞쪽(남쪽)에는 새 모형이, 좌우량옆에는 룡과 호랑이로 보이는 모형이, 뒤에는 거부기를 형상한 모형이 있었다. 이 사신모형들은 모두 형상에서 사신특유의 외적특징들을 명확히 보여주면서 각기 자기 방위에 해당한 위치에 있었다. 고구려무덤벽화에서는 사신도가 자주 보이지만 그것이 공예품으로 나타난것은 이 철령의 사신모형이 처음이다.
이처럼 철령유적에서 발견된 청동 및 쇠말모형과 사신모형들은 고구려인민의 높은 금속공예기술의 창조물로써 고구려의 군사력과 발전된 문화수준을 생동한 사실자료로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