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이란 근로인민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생활과 투쟁속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 그들의 사회적지향과 견해같은것을 간결하고도 형상적인 언어형식으로 표현한 말이다.
속담은 근로인민들의 실생활속에서 발생하여 그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속에서 발전하여 온것으로 하여 거기에는 근로인민의 언어의식과 생활철학, 생활풍습과 생활양식 등이 직접 반영되게 된다.
한편 속담은 생활의 진리에 대한 긍정과 부정, 평가와 태도, 풍자와 야유 등을 여러가지 비유의 수법과 형용어를 리용하여 명료하면서도 통속적으로, 그리고 간결하게 나타내는것으로 하여 천만마디의 긴 설명보다도 훨씬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강력한 표현수단의 하나로 리용되고있다.
언어표현에서 속담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표현적기능으로 하여 속담연구는 조선어연구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같이 활발하게 진행되여 왔으며 특히 속담을 수집하고 해석하는 측면에서 오랜 력사를 기록하고있다.
《자기 민족의 력사와 문화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질수 없으며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는 참된 애국자로 될수 없습니다.》 (
조선에서 속담에 대한 문헌적기록은 이미 《삼국사기》(1145년)에서부터 나타나고있다.
《삼국사기》 권 45 온달항목에는 《곡식이 한말이라도 절구질할수 있고 베가 한자라도 바느질할수 있다》라는 속담이 나오지만 그 유래라든가 뜻풀이 등 해석은 하지 않고있다.
속담의 유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해석을 진행한 사람은 고려후기의 유명한 중이며 언어학자인 일연(1206-1289년)이라고 할수 있다.
1206년(희종 2년)에 경주 장산군(경상북도 경산시)에서 김언필의 아들로 출생한 일연(본명: 김견명, 자: 회연, 호: 목암, 시호: 보각)은 9살때 전라도 광주의 무량사에서 공부를 시작하였고 14살에는 중이 되여 여러 절간들을 돌아다니면서 공부하였다. 1282년에 국왕의 지시로 다시 개경에 올라온 그는 다음해에 국존(
일연의 청장년시기는 고려인민들이 몽골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치렬한 투쟁을 전개하고있던 시기였다. 유목종족의 나라인 몽골은 13세기 초엽에 금나라를 몰아내고 점차 료동지방으로 자기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그 지역의 여러 종족들을 압박하고 고려의 국경에까지 와 위협을 주었다. 몽골침략자들은 고려에 침입하였던 거란족들을 추격한다는 구실로 1231년(고종 18년)부터는 본격적인 침략을 개시하였으며 이 침략행위는 근 30년동안 계속 감행되였다. 이때까지 봉건통치계급을 반대하여 싸우던 각지의 농민봉기군과 애국적인민들은 새로운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싸움에 영웅적으로 나섰는데 그중에서도 구주, 자주, 충주 등지의 인민들의 영웅적항전은 력사에 널리 알려져있다.
침략자들의 략탈과 파괴로부터 자기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전통을 옹호하고 고수하기 위한 인민들의 애국적투쟁에서 커다란 고무를 받은 일연은 우리 나라의 력사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돌리게 되였으며 이로부터 생애의 마지막시기에 5권 9편의 야사체로 된 세나라시기의 력사책 《삼국유사》를 저술하게 되였다.
《삼국유사》는 비록 불교적으로 윤색되고 허황한 신비설로 엮어진 측면도 있지만 언어학자로서의 일연의 업적이 깃들어있는 저작이라고 할수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에 《삼국사기》에서는 전하지 않는 귀중한 력사적사실들뿐 아니라 언어자료들을 적지 않게 실어놓음으로써 고대 및 세나라시기, 발해 및 후기신라시기의 력사와 언어학연구에 필요한 기본사료를 남겨놓았다.
《삼국유사》에서는 력사적사실을 수록함에 있어서 《삼국사기》와 《가락국기》, 《단군기》, 《신지비사》, 《고기》 등 여러 문헌들을 널리 인용하고 출처도 하나하나 밝혀놓음으로써 원전에 충실하도록 하는 한편 일정한 력사적사실과 기록에 대하여서는 저자자신의 견해와 주석을 주어 분석평가도 하고있다.
특히 세나라시기의 언어적자료에 대하여 소개할뿐 아니라 해석을 진행한것은 《삼국유사》가 단순히 《삼국사기》의 수정보충을 위해 집필된것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저자의 해박한 언어학적식견도 잘 보여준다.
속담에 대하여 해석을 진행하고있는것이 바로 그러하다.
앞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삼국사기》에서는 오늘날의 속담을 이야기속에 반영하는것으로 그치고있으나 일연은 속담을 인용할뿐 아니라 속담을 연구대상으로 정하고 유래까지 밝혀놓았다.
《삼국유사》권2, 수로부인에서는 《입이 여럿이면 금도 녹인다》라는 속담을 인용하고있으며 같은 책의 권2, 만파식적에서는 《외손벽이 울랴》라는 속담에 대하여 《룡이 〈이는 비하자면 한손으로는 쳐도 소리가 없으나 두 손벽을 치면 소리가 나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하였다.》와 같이 풀어서 해설한것도 인용하고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책 권5, 욱면비념불서승에서는 《내일 바빠 한댁 방아》라는 속담에 대하여 그 유래를 밝히고있다.
《내일 바빠 한댁 방아》는 큰댁(한댁)의 방아로 내집 쌀을 찧기 위해서는 명목상 부득불 큰댁의 방아일을 먼저 거들어준다는 말로서 낡은 사회에서 남을 위함이 아니라 자기 리익을 위해 남의 일을 해주는 경우에 쓰인 속담이다. 이 속담의 유래에 대하여 일연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있다.
신라 경덕왕시대에 서방 극락세계로 가고싶어하는 강주의 신도 수십명이 고을 지경에 미타사라는 절을 세우고 10 000일동안 빌고있었다. 그때에 아간 귀진이라는 사람의 집에 이름이 욱면이라는 계집종이 한명 있었는데 그는 주인을 모시고 절에 가서는 마당복판에서 중을 따라 념불을 하군 하였다. 주인은 그가 제 직분도 모르고 절에 와서 념불을 외우는것을 미워하여 매일 곡식 두섬씩을 주고 하루저녁에 다 찧으라고 했다. 그러나 욱면은 초저녁에 그것을 다 찧어놓고는 절에 가서 밤낮 쉬지 않고 념불을 외웠다. 이로부터 《내일 바빠 한댁 방아》라는 리언이 나온듯하다.
일연이 어떤 목적에서 이 속담의 유래를 밝히려고 하였든 속담을 수록하고 그 유래까지 해설한 문헌적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보는바와 같이 일연은 속담을 어휘연구의 과학적대상으로 설정하였을뿐 아니라 그 유래에 대하여서까지 해설하고있다.
물론 일연이 그 유래를 해설한 《리언》이 오늘날의 《속담》과 개념에서 꼭 같은것도 아니며 그 이름에서도 같지 않다.
《리언》이라는 용어는 일연에 의해 처음 나온 후 《언》, 《리언》, 《상언》, 《상담》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쓰이여왔으며 현대속담의 한 부류로도 그 이름이 남아있다.
《속담》이라는 용어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전 류몽인의 《어우야담》에서 처음 쓰인것으로 보인다. 《속담》이라는 용어가 나온 후에도 속담은 여전히 《리언》, 《속담》, 《격언》, 《이담》 등 각이한 이름으로 불리워왔으며 현대에 이르러 속담에 대한 리론적연구가 심화됨에 따라 점차 《속담》 하나로 통일되였다.
속담연구에서는 일연의 뒤를 이어 성현, 어숙권, 류몽인, 홍만종, 리익, 리덕무, 정약용 등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많은 속담들이 수집정리되고 해석됨으로써 풍부한 속담연구성과가 마련되였다.
오늘 속담연구는 성구연구와 함께 우리 조선어의 유구성과 우수성, 민족적특성을 밝히는데서 중요한 연구분야의 하나로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