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는 하루에 천리씩 달리는 말이라는 뜻으로서 매우 빠른 속도로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쳐 나아가는 우리 인민의 혁명적기상을 상징적으로 가리키고있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건설에서 전설의 《천리마》가 나래펴게 된것은 사회주의기초건설의 과업인 5개년계획의 첫해 주체46(1957)년인민경제 계획수행을 위한 투쟁을 벌리던 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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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의 로동계급은 당의 호소에 호응하여 혁명적대고조의 앞장에 섰으며 천리마운동의 기발을 맨먼저 들고 나왔습니다. 강선제강소에서 시작된 천리마작업반운동은 온 나라에 퍼져 사회주의건설의 힘 있는 추동력으로 되였으며 <천리마>는 영웅조선의 상징으로 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세상사람들은 조선이라는 이름앞에 <천리마>라는 말을 더 붙여 우리 나라를 〈천리마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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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화의 기초축성을 예견한 5개년계획은 막대한 투자와 기술, 로력을 요구하였지만 우리에게는 자금도 자재도 로력도 부족하였고 살림집도 모자랐으며 그렇다고 도움받을데도 없었고 도와주겠다는 나라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안팎의 정세도 매우 복잡하였다.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우리 당을 반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해나섰고 한국괴뢰도당은 공화국을 먹겠다고 미친듯이 날뛰였으며 대국주의자들은 저들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로골적으로 압력을 가하였다.
바로 이러한 정세속에서 인민대중의 힘을 믿고 그들을 발동하여 부닥친 난관과 시련을 뚫고나가기로 결심하신 위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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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민은 당중앙위원회 1956년 12월전원회의의 전투적호소를 심장으로 받아안고 5개년계획의 첫해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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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강선제강소에서는 당중앙위원회 12월전원회의정신에 따라 계획보다 1만t의 강재를 더 생산하기 위한 내부예비탐구사업을 진행하고있었으나 신통한 방도를 찾지 못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제강소를 찾으신 위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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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의 로동계급은 자기들을 혁명적대고조의 앞장에 내세워주신 위대한
강선의 로동계급은 혁신의 불길을 일으켜 년간 6만t밖에 생산하지 못한다고 하던 분괴압연기에서 결의한 9만t을 뛰여넘어 12만t의 강편을 밀어내는 기적을 창조하였고 전해보다 143.3%로 높이 세워진 주체46(1957)년 계획과제를 141.2%로 넘쳐 수행함으로써 위대한
김책제철소 로동자들은 년산 19만t능력의 제철설비로 27만t의 선철을 뽑아냈으며 황철의 로동계급은 한해도 못되는 사이에 대형용광로를 일떠세우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혁명적대고조속에서 5개년계획의 첫해인 주체46(1957)년도 공업생산계획은 117%로 넘쳐 수행되였으며 공업생산은 전해에 비하여 144%로 높아졌다. 알곡생산계획도 112%로 넘쳐 수행되였다.
이처럼 위대한
달리는 천리마에 계속 박차를 가하여 사회주의기초건설을 빨리 끝내기 위한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속에서 자체의 기계제작공업을 창설하기 위한 투쟁도 힘있게 벌어졌다.
우리의 로동계급은 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실천할데 대한 당의 호소를 받들고 치렬한 총돌격전을 벌려 불과 30여일만에 《천리마》호 뜨락또르를, 40일만에는 우리 나라에서의 첫 화물자동차 《승리58》형 제1호를 만들어냈다.
전후에 많은 외화를 주고 타닝반 한대를 사오는데만도 4년이 걸리였다.만일 이런 식으로 기계를 사다가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면 우리 인민은 천리마를 타고 남보다 앞서나갈수 없었다.
그리하여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흥남지구의 공장들에 부속품이나 깎아주던 룡성기계공장(당시)에서는 위대한
이에 대하여 공장을 참관한 어느 한 나라의 기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며칠후에 궐기대회를 가지였다. 일본에서는 이것이 파업과 련결되지만 조선에서는 천리마속도를 낳는다. 이 대회는 기계, 주물, 공무동력, 설계의 모든 직장들이 〈맡겨달라, 하자, 하자, 대담하게 하자!〉고 하는 웨침으로 꽉 찼다. 모두가 한달이상이나 집에 돌아가지 않고 기계곁에서 자면서 싸웠다. 그해 8.15까지 넉달 열아흐레만에 8m타닝반은 훌륭하게 자기 힘으로 완성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6 000t프레스가 또 태여났다. 믿음은 기적을 낳고 기적은 새로운 기적을 낳았다.
주체47(1958)년에 수도건설에서도 전례없는 대고조가 일어나 살림집을 14분에 한세대씩 조립하는 놀라운 속도, 평양속도가 창조되였다.
우리 나라를 다녀간 외국의 한 평론가는 《평양에 10일간 체류하였는데 매일 다니는 길량옆에는 새로운 건물이 계속 일어서서 방향이 짐작되지 않아 나중에는 혼자 다니는것이 근심이 될 정도였다. 당시 14분에 한세대씩 주택이 건설된다고 말하고있었는데 그것이 과장이 아니라는것을 직접 체험하였다.》라고 썼다.
평양속도를 창조하기 위한 불길속에서 수도건설자들은 주체47(1958)년에 7 000세대분의 자재와 자금을 가지고 2만여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하는 위훈을 세웠다.
이런 기적은 우리 나라 도처에서 련일 일어났다.
우리 인민이 천리마를 탄 기세로 창조해온 전설같은 기적들과 모든 부문, 모든 단위들에서 일어난 끊임없는 변혁들은 그 어느것이나 다 인민에 대한 위대한
주체47(1958)년 11월 윁남의 호지명
《…지금 조선인민은
우리 인민은 위대한
위대한
그리하여 우리 인민은 1960년대에도 천리마의 속도로 질풍같이 내달려 단 14년만에 사회주의공업화를 완성하고 이 땅우에 사회주의공업국가를 거연히 일떠세웠으며 1970년대에는 속도전의 진공나팔소리 드높이 사회주의대건설의 위대한 승리를 안아왔고 1980년대에는 80년대속도의 창조로 사회주의건설에서 다시 한번 일대 앙양을 일으킴으로써 대기념비적창조물들을 수없이 일떠세웠다.
1990년대에는 강계정신과 성강의 봉화로 엄혹한 시련과 난관을 뚫고 경제강국건설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새 세기에 라남의 봉화와 선군혁명총진군으로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려명을 안아오고 선군조선의 존엄과 위력을 높이 떨쳤다.
우리는 우리 나라를 존엄높은 사회주의강성국가로 전변시키기 위하여 한생을 바쳐오신 위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