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강선루에 새겨진 인민사랑의 발자취

 2024.6.4.

반만년의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내 나라는 그 어디를 가나 유서깊은 력사유적들이 많지만 그 모든 유적들에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을 잘 보존관리하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신 절세위인들의 다심한 손길이 속속들이 슴배여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문화유적과 유물에 대한 보존관리사업을 책임적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관서8경의 하나로 손꼽히던 성천의 강선루, 해방의 봄빛으로 산록이 짙어가던 여기에도 따스한 해빛이 비쳤다.

주체37(1948)년 5월 9일은 일요일이였다.

일군들이 모처럼 마련해드린 이 휴식일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성천읍에 있는 동명관을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동명관이란 고구려동명왕의 이름을 따서 부른것인데 이곳의 경치가 하도 아름다와 옛날 선녀들이 하늘에서 무지개를 타고 내려왔다고 하여 강선루라고도 불렀다고 건물이름의 유래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였다.

그리고 첫 대문인 방선문에 들어서시여서는 동명관의 전경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옛날 건물로서는 매우 웅장한 편이라고 하시며 건물의 조화도 잘 잡히고 조각술도 아주 높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성천군의 한 일군이 동명관의 래력을 잘 아는 로인을 데리고왔는데 그는 위대한 수령님앞에 이르자 무작정 큰절을 올리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지 말라고, 자신께서는 봉건시대의 《임금》이 아니라 인민의 아들이라고 하시며 로인의 손을 다정히 잡아일으키시고나서 동명관에 대한 그의 해설을 주의깊게 들어주시였다.

방선문
사진. 동명관의 방선문

…동명관은 고려말기에 건설되여 조선봉건왕조시기까지 량반들과 외국사신들을 영접하던 객사건물인데 중심건물인 동명관에서는 여러가지 의식을 진행하고 좌우의 류선관, 집선관 등은 손님들의 숙소로 리용하였으며 강선루, 12루 등 관상용루정들도 있었는데 총 337간에 달하는 여러 건물들가운데서 동명관과 강선루는 건축술이 당대에 뛰여나 이 두 건물의 이름을 따서 객사전체를 동명관 또는 강선루라고 불렀습니다.…

로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 동명관의 건물들은 한자로 신선 선자를 넣어서 이름을 지었는데 이것은 봉건통치배들이 자기들을 신선처럼 여기라는 허황한 의미에서 이름을 그렇게 붙인것이지 사실상 신선이란 이 세상에 없는것으로서 먼 옛날부터 전해오는 하나의 전설이라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리고 로인이 오랜 력사적기간에 세번이나 불탄 동명관을 성천부사들이 다시 복구하였다고 말씀드렸을 때에는 봉건통치배들이 이런 집을 짓거나 불탄것을 복구한것이 아니라 우리 인민들이 건설도 하고 복구도 하였다고, 봉건통치배들이 한짓이란 이런 집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인민들을 부역에나 내몰고 가혹한 조세부담을 강요한것뿐이라고 깨우쳐주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동명관의 여러곳을 일일이 돌아보시였다.

오래동안 관리사업이 잘되지 않은 건물들은 군데군데 비가 새서 서까래가 뿌옇게 썩고 지붕에는 해묵은 잡초도 자라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동명관이 자기의 빛을 잃고있는것을 몹시 가슴아파하시며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 놈들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하여 많은 유산들이 파괴되였는데 선조들이 남겨놓은 민족문화유산을 잘 보존관리하여야 하겠다고, 동명관을 시급히 복구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군의 힘으로 어려우면 국가에서 도와주어서라도 하루빨리 복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민족문화유산을 끝없이 아끼고 빛내여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손길에 의해 동명관은 어언 600여년의 년륜을 새긴 건물답게 웅장하게 개건되였으며 동명관이 자리잡은 비류강류역은 풍치수려하던 자기의 옛 모습을 되찾게 되였다.

건물일대의 주변경치가 하도 아름다와 관서8경의 하나로 알려진 강선루는 고려말기에 건선되여 조선봉건왕조시기 성천객사에 류숙하는 국가관리들과 외국사신들을 위한 연회장으로 쓰이였다. 건물의 간수는 동쪽면이 4간, 서쪽면이 5간, 남쪽과 북쪽면이 7간으로 되였으며 건물층수는 2층으로 되여있었다. 루정의 아래층에는 돌기둥을 받쳤으며 웃층의 나무기둥에는 3익공두공을 얹고 합각지붕을 씌웠다. 건물은 섬세한 건축조각과 화려한 단청장식 특히는 힘받이부재와 지붕의 능숙한 처리로 하여 더욱 웅장해보였다. 강선루는 그 배치형식에 특색이 있고 바닥의 높고낮음에 따르는 변화, 건축공간적변화가 잘 어울려있었을뿐 아니라 앞이 시원하게 트이고 물맑은 비류강과 잘 조화되였으며 강건너 홀골산의 아름다운 열두봉우리를 한눈에 안아볼수 있게 되여있었다.

기나긴 세월 량반통치배들의 유흥터로 되여온 강선루, 선녀들도 그 경치에 반하여 무지개타고 내렸다는 강선루가 오늘은 후손만대 물려줄 나라의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으로, 인민의 훌륭한 문화휴식터로 이름떨치게 되기까지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과 로고는 실로 끝이 없다.

절세위인들의 인민사랑의 자욱이 곳곳마다 력력히 새겨져있는 인민의 나라, 이 땅에서 조선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은 앞으로도 더더욱 밝은 빛을 뿌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