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담판을 성공케 한 비결

 2019.9.1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우리 혁명앞에 난관과 시련이 겹쌓일 때마다 능란한 외교활동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시며 항일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신 항일외교의 거장이시였다.

항일혁명투쟁의 첫 시기 좌경기회주의자들의 망동과 일제의 교활한 민족리간책동으로 하여 항일유격대와 중국인반일부대들과의 련합전선이 파국상태에 직면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국군 전방사령인 오의성을 찾아가기로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신상의 위험도 무릅쓰시고 오의성과 만나 그와의 담판을 통하여 합작을 성공에로 이끌어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오사령과의 합작이 그처럼 순조롭게 이루어질수 있은것은 우리의 힘이 강했고 정치도덕적풍모가 구국군보다 우월했기때문이며 우리의 열렬한 애국심과 국제주의적우애심, 자기 위업의 정당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그를 공감시켰기때문이였다.나는 구국군과의 합작을 실현한 그때부터 통일전선을 위한 최상의 수단은 주체적힘이라는것과 이 힘을 키우지 않고서는 어떤 우군이나 우방과도 련합하여 투쟁할수 없다는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혁명의 주체를 튼튼히 하기 위한 투쟁을 일생동안 벌려왔다.》 (김일성전집》 제97권 181페지)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않고 호랑이가죽우에 비스듬히 누워서 담화도 하고 차도 마시는 거만한 사령으로 소문난 오의성이 격식을 차려 깍듯이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하고 또 공산당과는 합작안한다고 고집을 쓰던 완고한 중국인반일부대 두령인 그가 조선공산주의자들과 합작할 결심을 내리게 된것은 항일유격대의 실력을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오의성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항일유격대가 창건된 첫 시기인 주체21(1932)년에 남북만원정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주체22(1933)년에 들어와 왕청을 중심으로 하여 현대적무장을 갖춘 일제침략군과 벌린 대소전투들에서 높은 정신도덕적풍모와 군사적실력을 발휘한데 대하여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과 첫 인사를 나눈 오의성은 자기가 김대장이 일본놈들과 잘 싸운다는 소문을 들어서 다 알고있다고 하면서 항일유격대는 수가 적으면서도 일본놈들과 잘 싸우는데 자기네는 수더구가 많지만 항일유격대처럼 잘 싸우지 못한다고 자기의 심정을 표현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의성과의 담판을 림기응변의 능란한 외교술로 성공에로 이끌어나가시였다.

담판과정에 오의성은 우리 수령님께 쟈잘리에 들지 않겠는가고 질문하였다.

쟈잘리에는 아버지가 될 사람이 아들을 얻기 위해 들어가는것이 아니라 아들될 사람이 아버지를 얻기 위해 들었다.

이런 조직에 들라고 하니 싫다고 거절하면 모처럼 잘되여가던 담판이 파탄될것 같고 들겠다고 동의해나서면 당장 부처님앞에 끌고가서 절을 시킬 판인데 그것은 오의성한테 코를 꿰여다닐 길을 스스로 닦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사령하고 같이 쟈잘리에 드는것은 뜻이 깊은 일이긴 하지만 우리가 다른 조직에 드는것은 당조직의 허락을 받아야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조직에서 승인할 때까지는 그만두자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칙적문제에서는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시면서 오사령의 걱정거리를 해소시켜주시였으며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중국인반일부대와의 련합작전을 이룩하시였던것이다.

오의성과의 담판은 조선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적대시하려는 반일부대사령을 설복시켜 항일유격대와 중국인반일부대와의 련합전선을 이룩하기 위한 하나의 외교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