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리선희
2018.10.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에 비범한 예지와 정력적인 탐구로 우리 나라 경제사상사연구의 강령적지침을 마련하여주시는 력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사상리론적업적을 이룩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에서 살며 조선에서 혁명하는 우리 인민에게는 우리 나라의것이 무엇보다 귀중합니다. 우리 나라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서는 우리 나라 혁명을 바로해나갈수 없습니다.》 (《김정일전집》 제5권 443페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51(1962)년 11월 12일 김일성종합대학 교원들과 하신 담화 《경제학설사연구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와 주체53(1964)년 1월 28일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하신 담화 《김옥균의 경제근대화사상에 대하여》를 비롯한 여러 고전적로작들에서 우리 나라 경제사상사연구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우리 나라 경제사상사연구의 강령적지침을 마련하여주신 불멸의 업적에서 중요한것은 우선 경제학설사교육에서 주체를 세우도록 이끌어주신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경제학설사교과서의 내용이 서유럽나라들의 경제사상들을 위주로 하여 구성되게 된것은 우리 나라 경제사상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데도 그 원인이 있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지난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제기한 경제사상들에는 리론적가치를 가지는 사상이 별로 없다고 보는 그릇된 관점이 남아있기때문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기 민족의 사상문화유산에 대하여 잘 알아야 민족허무주의를 반대하고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높일수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 경제사상들에 대하여 깊은 주의를 돌리며 그에 대한 연구를 잘하기 위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지난날 우리 나라에도 이름난 학자들이 있었으며 그들에 의하여 여러가지 가치있는 경제사상들이 제기되였다. 박지원과 정약용을 비롯한 우리 나라 실학사상가들은 봉건통치배들의 부패성과 공리공담, 무너져가는 봉건국가의 후진성을 개탄하고 시대발전의 요구에 맞게 낡은 제도를 개혁하고 자본주의적길로 나갈데 대한 부르죠아경제사상을 제기하였으며 그것은 후에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사상가들에 의하여 더욱 계승발전되였다. 그리고 박은식을 비롯한 애국문화운동가들도 공업, 농업, 상업을 《문명대세》에 따라 근대적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사상을 제기하였다.
이들의 경제사상은 비록 당시의 사회력사적조건과 그들의 계급적제한성으로 하여 사회발전의 근본요구와 봉건적학정에서 벗어나려는 근로인민대중의 지향을 대변할수는 없었지만 우리 나라 력사발전의 합법칙적과정을 반영하여나온 선진적인 사상으로서 당시로서는 진보적의의를 가지였다.
이와 같이 우리 나라에서도 선진적인 사상가들에 의하여 가치있는 경제사상들이 제기되였으며 그것은 당시 사회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제학계에서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제기한 경제사상들에 대하여 주의가 적게 돌려지고있었으며 그에 대한 연구도 잘하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유럽나라들의 경제사상들을 위주로 취급하고 거기에 우리 나라의 경제사상들을 덧붙여 조금씩 취급하여서는 학생들에게 우리 나라 경제사상의 발전과정에 대하여 똑똑히 인식시킬수 없다고 하시면서 경제학설사교과서에서는 우리 나라의 경제사상들을 중요하게 취급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나라의 경제사상사연구의 중요성을 밝혀주시고 그를 위한 강력적인 가르치심을 주심으로써 경제학설사교육에서 주체를 세워나갈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우리 나라 경제사상사연구의 강령적지침을 마련하여주신 불멸의 업적에서 중요한것은 다음으로 우리 나라 경제사상들에 대한 평가에서 력사주의적원칙을 지키고 주체적립장을 견지하도록 이끌어주신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행학설에 대하여서는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말고 당성, 로동계급성의 원칙과 력사주의적원칙에서 정확하게 평가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실학사상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으로서 실학사상가들은 《실사구시》, 《실용지학》을 주장하면서 뒤떨어진 우리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한 학문연구에 전심하였으며 이 과정에 여러가지 경제개혁사상을 제기하였다고 밝혀주시면서 그렇다고 하여 실학파의 경제사상을 과대평가하여서는 안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실학사상가들이 토지를 공동으로 경작할데 대한 새로운 토지제도에 관한 사상을 제기한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봉건적토지제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면서 토지제도를 개혁해보려는 그들의 념원을 담은것이지 결코 로동계급의 요구를 반영한 사회주의적인것은 아니였다고 하시면서 실학파의 경제사상을 지나치게 내세워 그것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로동계급의 사상과 같이 보는것은 잘못이며 이것은 철저히 경계하여야 할 경향이라고 밝혀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지난날 우리 나라의 진보적인 사상가들이 내놓은 사상들을 깊이 연구하여야 하지만 그들의 사상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력사주의적원칙에서 사실그대로 정확하게 분석평가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 부르죠아경제사상의 발생문제를 주체적립장에서 해명할데 대하여도 가르쳐주시였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서 부르죠아경제사상의 발생을 외적요인에서 찾고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제국주의어용사가들에 의하여 외곡된 사료를 아무런 고려없이 받아들였기때문이였다. 제국주의어용사가들은 조선은 오래동안 락후한 상태에 있었기때문에 자체로 자본주의적발전의 길에 들어서지 못하고 근대적사상도 나올수 없었다고 하면서 마치도 외래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우리 나라의 근대적발전이 이루어진것처럼 설교하였다. 그리고 사대주의에 물젖은 반동적인 어용사가들도 우리 나라에서 근대적사상의 발생을 《서학》의 전파에서 찾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것은 다 우리 민족을 멸시하고 우리 나라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을 부인하는 황당한 주장이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제국주의어용사가들과 사대주의사가들의 반동적인 외인론을 철저히 배격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부르죠아경제사상은 이미 17세기 후반기 실학사상가들속에서 싹트기 시작하였다고 볼수 있다.
17세기이후 우리 나라에서는 생산이 일정하게 발전하고 상품류통이 전례없이 확대되였다. 이에 따라 개인상인들의 수중에 많은 화페가 축적되였으며 다른 한편 토지를 비롯한 생산수단을 잃고 떠돌이생활을 하는 류랑민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18세기에 들어와 우리 나라에서는 광업과 농업을 비롯한 여러 생산분야에서 자본주의적경영이 발생하여 발전하고있었다.
실학사상가들은 바로 이러한 사회경제발전의 합법칙적요구에 따라 낡은 제도를 개혁하고 자본주의적길로 나갈데 대한 부르죠아경제사상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실학사상은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의의를 가진것으로 하여 19세기 후반기 개화파들의 부르죠아경제사상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개화사상가들은 당시 사회경제발전의 합법칙성과 우리 나라의 구체적인 실정으로부터 출발하여 나라의 경제를 근대적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부르죠아개혁사상을 주장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회사설립을 통하여 근대적인 기업을 건설하여 나라의 근대적발전을 이룩할데 대한 김옥균의 사상은 당시 우리 나라의 실정으로부터 출발한 합리적인것이였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근대적기업을 발전시키자면 방대한 자본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자본주의발전의 미숙성으로 하여 개별적자본가들의 자본축적규모가 크지 못하였으므로 근대적기업발전에 필요한 자금해결방도를 바로 자본을 집중하는 공간인 회사설립에서 찾았던것이라고 하시면서 때문에 이것은 자본축적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당시 우리 나라의 실정에서 대규모의 자본주의적기업을 발전시킬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길이였다고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와 같이 우리 나라에서 부르죠아경제사상의 발생을 외적요인에서 찾는 그릇된 견해를 바로잡아주시고 근대적인 부르죠아사상의 발생문제를 해명하는데서 주체적립장을 철저히 견지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 우리 나라 경제사상연구에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들을 밝혀주심으로써 자라나는 새 세대들이 우리 나라 사상문화유산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가지고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깊이 간직할수 있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