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박사 부교수 정광수
2020.7.21.
우리 인민의 창조적지혜와 재능이 깃든 민족문화유산을 민족의 귀중한 재보로 소중히 여기시고 후대들에게 길이 전해가시려는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념원은 지난날 우리 선조들이 불교경전들과 불교관계서적들을 집대성하여놓은 불교총서인 《팔만대장경》에도 뜨겁게 새겨져있다.
주체37(1948)년 10월 25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당시 내각부수상이였던 홍명희선생에게 조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를 내올데 대한 지시를 주시는 자리에서 우리 나라에는 세상에 자랑할만 한 문화유적과 유물이 많다고, 《팔만대장경》과 조선봉건왕조실록과 같은것은 유명한 국보이라고, 력사문화유적과 유물이 많은것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커다란 자랑으로 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주체38(1949)년 10월 15일 묘향산력사박물관을 현지지도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팔만대장경》과 관련한 뜻깊은 교시를 주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팔만대장경》과 목판활자는 우리 나라 인쇄기술의 발전면모를 보여주는 귀중한 국보이라고, 물론 《팔만대장경》은 불교를 설교하기 위한 책이라고, 그러나 선조들이 벌써 수백년전에 목판활자를 8만여매나 만들어 수천권에 달하는 방대한 대장경을 훌륭히 출판하였다는 그자체가 우리 나라와 민족의 큰 자랑이라고 교시하시였다.
불교총서인 《팔만대장경》은 석가모니가 부처로 된 이후 40년간의 교화생활을 통하여 만들어낸 불교수양의 근본원리와 원칙, 방도를 설교한 부분의 경장, 불도를 닦는 비구(집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들이나 신자들이 지켜야 할 생활규범과 불교교단의 생활준칙을 규제한 부분인 률장 그리고 후세의 불교학자들이 부처의 설교와 교리를 연구해석한 부분인 론장 등 3장을 기본으로 하여 력사, 전기, 어문, 서지 등 불교관계서적들로 구성되여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봉건국가가 몽골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우던 시기인 1236-1251년의 16년간에 강화도에서 판각되였다. 그 내용을 보면 종수가 1 539종, 권수가 6 793권, 목판수가 8만 1 137매, 조판(새김판)수가 16만여판이며 그것을 보관하고있는 함수가 639함이나 되였다.
고려판 《팔만대장경》은 지금까지 전하여오고있는 대장경들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출판문화사적가치를 가지고있다. 《팔만대장경》은 세계출판문화사에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판본의 완벽성과 유구성, 경판의 정교성 등으로 하여 내외가 한결같이 공인하는 표준대장경, 인류문화의 재보로 자랑떨치고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국보적가치를 가지고있는 《팔만대장경》을 우리 나라의 력사를 전하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잘 보존할수 있도록 묘향산에 《팔만대장경》보존고를 건설하여 그안에 영구보존할수 있게 하여주시였다.
민족애의 최고화신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1970년대에 방대한 량의 조선봉건왕조실록의 번역사업을 적극 추진하도록 하시는 한편 불교총서인 《팔만대장경》을 번역하여 출판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이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팔만대장경》을 전부 다 번역할것이 아니라 우선 해제하도록 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에서 나서는 방향과 방도들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주체67(1978)년 8월 26일 묘향산 보현사를 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대웅전에 보관되여있는 《팔만대장경》과 그 목판은 우리 나라의 귀중한 재보라고 하시면서 《팔만대장경》번역과 관련한 귀중한 교시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팔만대장경>을 번역하여야 하겠습니다. <팔만대장경>이 옛날의 불교경전이라 하여 번역해놓지 않으면 우리 사람들이 자기 나라 력사와 민족유산을 모르고 지낼수 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67권 513페지)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팔만대장경》을 번역한다고 하여 그것을 연구할 필요는 없다고, 그저 《팔만대장경》이 어떤것인가 하는것을 일반적으로 알수 있을 정도로 번역해놓으면 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날에 하신 교시에는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민족고전들을 모두 번역하여 민족의 귀중한 재보로 빛내이며 후대들에게 민족의 우수한 문화전통을 길이 전해가시려는 절세위인의 숭고한 뜻과 민족고전연구집단에 대한 크나큰 기대와 믿음이 어려있었다.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을 빛나게 이어나가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69(1980)년 1월 14일 《팔만대장경》해제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해제사업을 어버이수령님 탄생 75돐전으로 끝낼데 대한 영예로운 과업을 제시하시면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풀어주시는 은정깊은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부문에 조예가 있는 일군들을 전국각지에서 소환하여 향산군에 집결하게 하는 한편 민족고전연구소의 일부 성원들을 조절하여 연구실을 새로 꾸리고 《팔만대장경》해제사업을 전문적으로 맡아 수행하도록 해당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고 《팔만대장경》해제사업에 동원된 연구성원들의 연구조건과 생활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돌려주신 뜨거운 은정과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해제집단은 불타는 충정과 애국심을 안고 《팔만대장경》해제사업에 분발하여 떨쳐나섰다. 그들은 2~3년은 실히 걸려야 하는 문헌작업과 요강작성 등 준비사업을 1년남짓한 기간에 성과적으로 끝내고 주체70(1981)년부터 본격적인 해제사업에 착수하여 주체72(1983)년까지 3년동안에 총25책으로 예견하였던 해제도서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기본경전부분에 대한 해제 15책분을 집필하였다.
그후 그들은 어버이수령님 탄생 75돐이 되는 주체76(1987)년 4월까지 《팔만대장경》해제를 끝낼 높은 목표를 세우고 줄기찬 투쟁을 벌려 그처럼 방대하고 어려웠던 《팔만대장경》해제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6~7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끝내였다. 그리하여 해제본 25책을 타자복사하여 주체76(1987)년 2월에 위대한 수령님들께 자랑찬 승리의 보고를 드릴수 있었다. 《팔만대장경》해제사업이 성과적으로 끝났다는 보고를 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단히 만족해하시면서 해제집단의 성과를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팔만대장경》해제사업이 끝난 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에 《팔만대장경》을 번역할데 대한 과업을 또다시 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76(1987)년 4월 27일 자신께서 《팔만대장경》을 번역하자고 하는것은 후대들에게 불교의 허황성을 알려주는데 목적이 있다고 하시면서 후대들이 《팔만대장경》에 무슨 내용이 있는가 하는것을 알게 하자면 원문그대로 번역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력사연구와 민족문화유산계승발전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77(1988)년 3월 3일 《팔만대장경》번역과 관련하여 과학적인 해명을 주시였다.
민족고전 《팔만대장경》을 원문그대로 선택번역하여 출판할데 대한 백두산절세위인들의 교시와 은정깊은 조치를 전달받은 민족고전연구소의 일군들과 연구성원들은 《팔만대장경》 선역본을 내놓기 위한 사업에 자신들의 창조적지혜와 애국의 열정을 남김없이 발휘해나갔다. 마침내 연구집단은 주체83(1994)년 6월말까지 전17책으로 된 《팔만대장경》 선역본을 완성하여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충성의 보고를 삼가 올리였다.
참으로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자애로운 손길아래서 로동당시대에 민족고전 《팔만대장경》의 해제, 선역사업이 성과적으로 결속된것은 국보적가치를 가지는 민족고전유산을 인민의 진정한 문화재보로 되게 하며 후세에 길이 전할수 있게 한 획기적인 사변이였으며 우리의 민족문화유산을 나라와 민족의 귀중한 문화적재보로 온 세상에 빛을 뿌리게 하여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업적으로 세세년년 길이길이 새겨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