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9살에 영생을 얻은 소녀

 2022.3.2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금순은 9살을 살고 영생을 얻은 소녀였다. 9살이면 꽁다리연필처럼 짤막한 생애이다. 그러나 번개의 섬광과도 같이 번뜩거리다가 사라진 이 어린 나이에 그는 인생이 도달할수 있는 최고의 정신적높이에 도달하였으며 사람이 사람으로 태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산모범으로 똑똑히 가르쳐주었다.》 (김일성전집》 제97권 313페지)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전체 조선인민이 간악한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섰다.

그 영광스러운 대오속에는 김금순과 같은 열살도 안되는 나어린 소녀들도 있었다.

김금순
사진. 김금순

1930년대초 일제에 의해 강점된 간도지방에서는 조선소년들이 도처에서 아동단, 소년선봉대, 소년탐험대와 같은 혁명조직들을 뭇고 조직된 력량으로 일제와의 싸움의 마당에 뛰여들었다.

부모들로부터 혁명적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김금순도 어린 나이에 왕우구의 북동아동단학교에 다니면서 조직에서 주는 각종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으며 특히 유희대활동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이였다.

그는 8살 때인 주체22(1933)년에 소왕청유격근거지에 가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길을 오느라 수고했겠다고 하시며 큰 령이랑 많았겠는데 넘기가 힘들지 않았는가고, 집에 돌아가 부모님들곁에 있으면 더 좋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때 금순이는 그렇게 하면 좋기는 하겠지만 그러면 언제 어른이 되겠는가고, 자기는 빨리 어른이 되여 조선을 독립하고싶다고 대답을 드리였다.

이처럼 금순이는 나이는 비록 어리였지만 조선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려는 그의 각오는 사상적으로 매우 조숙하였다.

근거지에 들어온 금순이는 마촌아동단학교에 편입하여 아동단조직생활을 하게 되였다.

왕청유격근거지사람들은 눈동자가 새까맣고 또 나이에 비해 몸이 체소한 금순이를 《깜장금순이》 혹은 《마촌콩새》라고 사랑담아 불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도 언제나 조국의 미래인 아동단원들을 한품에 안아 어엿한 혁명가로 키워주시였고 그들에게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으며 아동단원들의 식량과 옷을 해결하기 위해 전투까지도 서슴없이 조직하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은 아동단원들을 불굴의 투사로 성장시킨 젖줄기로 되였으며 그 사랑속에 금순이도 나어린 혁명가로 성장하였다.

금순이는 왕청아동유희대성원으로서 노래도 잘 불렀고 특히 탑프춤을 잘 추어 유격대원들과 근거지인민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으며 순결하고 재롱스러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신심을 주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머나먼 북만땅에 가서 반일부대 장병들앞에서 유희대공연을 하여 그들을 반일공동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소왕청유격근거지방위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들에 참가하여 아동단원들과 함께 혁명적구호와 혁명가요를 힘차게 부르면서 유격대원들을 도와 용감하게 싸웠다.

주체23(1934)년 가을 9살난 금순이는 요영구혁명조직에서 적구에 보내는 극비문건을 전달할 임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한 후 백초구에서 일제헌병들에게 체포되였다.

금순이가 유격구에서 왔다는것을 알게 된 놈들은 조그마한 소녀애한테서 유격구의 비밀을 쉽게 뽑아낼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놈들은 처음에 금순이에게 음식을 가져다놓고 달콤한 말로 달래다가 말을 듣지 않자 위협도 하고 모진 고문도 들이대였다.

악착한 고문을 당하여 살점이 떨어지면서도 금순이는 단 한마디도 조직의 비밀을 불지 않았다.

왜놈들은 비밀을 대지 않으면 금순이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금순이는 《더럽다! 너같은 강도놈들과는 말하지 않겠다.》고 쏘아붙였다.

그 어떤 회유로도 고문으로도 금순이를 굴복시킬수 없었던 일제교형리들은 나어린 금순이를 사형장에 끌어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여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나어린 소녀애를 보고 사람들은 모두다 이를 갈며 치를 떨었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금순이는 오히려 자기를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는 군중들을 향해 이렇게 웨치였다.

아버지, 어머니들, 왜 우십니까. 울지들 마세요. 혁명군아저씨들이 꼭 원쑤를 쳐없앱니다. 조국이 해방되는 날까지 굳세게 싸워주십시오!》

《일제놈들을 타도하라!》, 《조선혁명 만세!》

9살밖에 안되는 나어린 소녀의 최후의 웨침에는 그의 불굴의 신념이 그대로 맥박치고 짧고도 영원한 그의 생애가 담겨져있었다.

금순이의 최후에 대한 비통한 소식은 왕청일대의 혁명군중을 분기시키였다. 요영구골안에서는 금순이의 추도식이 엄숙히 거행되였으며 동만 각 현에서 격노한 수십명의 남녀청년들이 금순이의 복수를 다짐하며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국제당계렬의 잡지와 중국과 일본의 출판물들은 세계 피압박민족들의 해방투쟁력사에서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이 어린 영웅에 대하여 앞을 다투어 보도하였으며 《어린 렬녀의 략전》이라는 제목으로 금순이의 영웅적생애를 격찬하였다.

이처럼 김금순은 겨우 9살을 살고 영생을 얻었다. 그는 아직은 엄마품에 안겨 응석을 부릴 그 어린 나이에 인생이 도달할수 있는 최고의 정신적높이에 도달하였으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산 모범으로 똑똑히 가르쳐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금순의 영웅적인생을 길이 빛내주시기 위해 주체80(1991)년 9월 신의주남송고등중학교를 김금순중학교(당시)로 명명하며 이 학교에 그의 동상을 세우도록 해주시였다.

하기에 김금순은 오늘도 나어린 소녀영웅, 민족의 장한 딸로 우리 인민의 사랑속에 영생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