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인류력사의 려명기인 구석기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대동강류역을 비롯한 조선반도의 넓은 지역에서 련면히 살아오면서 자기들의 창조적지혜와 근면한 로동으로 자연과 사회를 끊임없이 개조변혁해왔다.
선조들의 이러한 생활과정을 보여주는 구석기시대의 력사유적들가운데는 1979년에 알려진 만달리유적도 있다.
구석기시대후기에 해당되는 만달리유적은 평양에서 동쪽으로 20여㎞ 떨어진 황해북도 승호군 만달리에 위치하고있다.
만달리는 해발높이가 284m인 만달산의 남쪽기슭에 자리잡고있다. 기슭을 따라 길게 늘어진 논밭을 지나 남쪽에는 대동강의 지류인 남강이 동서방향으로 흐르고있다. 소재지에서부터 남강을 따라 약 1.1㎞정도 거슬러올라가면 왼쪽에 만달산의 작은 산줄기가 남강기슭까지 뻗어내린다. 동굴은 이 산줄기의 동쪽비탈면중턱에 있는데 남강으로부터 약 100m 떨어져있다. 동굴앞에는 넒은 벌이 펼쳐져있으며 동굴가까이에 남강으로 흘러드는 자그마한 개울이 있다. 개울바닥에서 동굴바닥까지의 높이는 약 7m이고 남강으로부터 동굴안퇴적층까지의 높이는 14m정도이다.
이 유적은 주체68(1979)년 10월 이 일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 발견되였으며 다음해 5월부터 8월까지 발굴이 진행되였다. 동굴은 입구에서 너비 4.5m정도, 높이가 2.4m정도이나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점차 넓어지는데 그 너비는 대략 7~8m정도이며 길이는 13~14m정도이다. 동굴입구의 방향은 동남방향이고 퇴적층의 두께는 6.4m이며 9개 층으로 구분된다. 층의 순서는 밑으로부터 우로 올라가면서 정하였다.
유물출토정형을 보면 맨 아래의 1층부터 5층까지는 포유동물화석만이 드러났으며 6층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유물들인 인류화석과 석기, 골기, 포유동물화석들이 발견되였고 7층과 8층에서는 유물이 나오지 않았다.
맨 웃층인 9층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사람뼈와 질그릇, 돌활촉, 골기, 짐승뼈 등이 출토되였다. 인류화석은 얼굴부분이 없는 머리통뼈와 비교적 완전한 아래턱뼈, 부분적으로 깨여진 아래턱뼈, 팔뼈, 넙적다리뼈 각각 1개 그리고 골반뼈 2개가 드러났는데 25~30살정도인 남자의것으로 인정된다.
이 인류화석을 지명에 따라 만달사람이라고 부른다. 만달사람은 형태학적으로 신인단계의 인류화석에서 볼수 있는 원시적인 특징을 일부 가지고있지만 현대사람의 고유한 특징이 이미 형성되여있는 신인단계의 인류화석이다.
인류화석의 특징과 포유동물화석에 의한 상대년대추정에 따라 이 유적은 지질학적으로는 상갱신세 상부의 늦은 시기, 고고학적으로 볼 때에는 구석기시대후기의 비교적 마지막시기에 해당된다.
이 유적에서는 13점의 석기가 나왔는데 대체로 긁개와 밀개, 새기개, 자르개 등의 세석기들과 망치로 구성되여있다. 세부가공한 흔적이 많은것 등으로 보아 구석기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석기갖춤새를 가진다. 이러한 석기갖춤새는 우리 나라의 구석기시대 후기유적들인 굴포리유적 2기층과 청파대동굴유적 2문화층의 석기갖춤새와 매우 류사하다.
만달리유적의 석기갖춤새에서 특징적인것은 13점의 석기들가운데서 9점의 석기가 흑요석으로 만든것들이라는것이다.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는 세계적으로 볼 때 유럽지역에서 구석기시대전기의 늦은 시기부터 주먹도끼나 긁개와 같은 석기들을 만드는 재료로 리용된것으로 알려졌으며 수리아와 요르단과 같은 서아시아지역에서도 일부 알려졌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흑요석은 구석기시대에 석기재료로 많이 리용된 석영이나 규암과 류사하면서도 조개껍질모양의 박편들이 힘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잘 떨어져나가는것으로 하여 좋은 석기재료라고 볼수 있다. 그러나 흑요석이 분출암으로서 석영이나 규암과 같이 어디서나 흔히 얻을수 있는 암석이 아니므로 당시에는 흑요석이 분포되여있지 않는 일부 지역들에서는 리용되지 못하였다. 실례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지역나라들에서 구석기시대유적들이 많이 알려졌지만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분출암지대에서만 볼수 있는 흑요석석기가 만달리유적에서 발견된것은 이 유적을 남긴 사람들의 부단한 이동과 관련된다고 볼수 있다. 만달리유적이 위치한 남강류역에는 분출암으로 이루어진 지대가 없으며 따라서 남강의 강자갈속에는 흑요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질학적자료에 의하면 유적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분출암지대는 동쪽에 있는 신계-곡산대지로서 멸악산줄기와 아호비령산줄기사이에 있는 례성강상류에 위치하고있다. 이 대지는 중생대에 화산분출로 이루어진 고원지역으로서 대부분 현무암으로 이루어졌으며 일부 흑요암도 드문히 드러나있다. 그러므로 만달리유적의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는 바로 이 지역의 흑요암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그런데 만달리유적으로부터 이 신계-곡산대지까지의 거리는 대략 80km정도 떨어져있다.
결국 만달리유적을 남긴 사람들은 례성강상류지역에서 흑요암을 채취하여 석기로 만들어 리용하였으며 먼 거리를 오가며 생활한 사람들이였다는것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