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경신년간도대《토벌》은 일본의 야수성을 고발한다

 2017.11.28.

피로 얼룩진 일제의 조선침략사의 갈피에는 1920년에 일제가 간도일대에서 조선사람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한 만행도 깃들어있다. 력사에서는 이것을 경신년간도대《토벌》이라고 부른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간도대<토벌>의 해로 알려진 경신년에도 일본군대는 만주지방에서 조선사람들을 대량적으로 학살하였다. 그것은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당한 대참변의 수치를 재만조선족 비군사인원들에 대한 살륙으로 씻어보려는 전례없는 살인광증의 폭발이였다.》 (김일성전집》 제98권 107페지)

1919년 8월에 《문화정치》를 떠들며 조선에 기여든 3대총독 사이또 마꼬도는 《조선통치방침》의 한 조항에서 해외조선인들에 대한 통치문제에 언급하여 《…그들에 대한 단속을 하고 그 소굴을 소탕할 필요》가 있다고 떠들었다.

이것은 사실상에 있어서 간도를 비롯한 해외에 사는 반일적인 조선인들에 대한 전멸론이였다.

당시 간도지방의 조선사람들속에서 반일감정이 높아지고 그 일대에 근거지를 둔 독립군들의 무장활동이 강화되자 일제는 이것을 탄압말살하기 위하여 피눈이 되여 날뛰였으나 청산리전투와 봉오골전투에서 참패를 당하였다.

악에 받친 일제는 간도일대의 조선사람들을 대량적으로 학살하여 참패의 수치를 씻고 독립군운동을 비롯한 조선사람들의 반일운동전반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간도대《토벌》작전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당시 중국의 령토인 간도에 마음대로 침략무력을 끌어들일수 없었다. 이로부터 일제는 간도일대의 조선사람들에 대한 《토벌》구실을 만들기 위하여 《훈춘사건》을 조작해냈다.

《훈춘사건》이란 일제가 훈춘지방의 마적단두목 장강호를 매수하여 그 놈으로 하여금 1920년 10월 2일에 일본령사관 훈춘분관과 이 분관소속 경찰서, 훈춘주둔 조선총독부 파견 경찰관서 및 함경북도 경찰부 파견경찰관서 등을 습격하게 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을 구실로 일제는 간도일대의 일본거류민《보호》를 떠들며 대규모적인 《토벌》력량을 편성하였다. 그에 의하면 간도대《토벌》의 주력으로 간도지방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라남 19사단의 병력을 기본으로 하는 3 000여명과 쏘련의 원동지방에 침입하였던 일본군 11, 13, 14사단의 일부 무력, 이미 만주에 끌어들였던 만철수비대와 함경남북도의 악질경관들이 동원되였다.

《토벌》구역과 그 범위는 북간도, 서간도지대로 정하였으며 《토벌》대상은 독립군, 《부정선인》으로 규정한 조선인 남녀로소 모두를 포함시켰다.

일제는 부대들의 성격, 활동지대의 특성을 고려하여 핵심《토벌》무력으로 《이소바야시지대》를 편성하고 여기에 수많은 병력과 중무기들을 소속시켰다. 《이소바야시지대》는 라남19사단 38려단장 이소바야시소장을 지대장으로 하고 마끼대좌의 제1토벌대, 아베소좌의 제2토벌대, 쥬지중좌의 제3토벌대로 편성되였다.

일제의 경신년간도대《토벌》작전은 두 단계로 나누어 감행되였다.

첫 단계는 《이소바야시지대》에 속한 토벌대놈들이 각기 분담된 지역에서 한주일간씩 머물러있으면서 살인, 방화, 략탈을 감행하며 여기에 씨비리출정부대들과 만철수비대무력이 동서로부터 공격하는것이였다.

첫 단계는 1920년 10월 8일부터 19일까지 감행되였다.

이 기간에 감행된 일제의 조선인민들에 대한 학살만행은 짐승도 낯을 붉힐 가장 악착하고 야수적인것이였다.

야수적토벌이 시작된 한주일동안에 연길현 약수동에서 271명, 훈춘현의 2도구에서 175명, 화룡현의 청산리에서 409명, 대마록구에서 117명, 소영자에서 111명, 왕청문에서 300여명, 관전현 철영에서 480여명의 조선사람들이 무참히 학살되였다.

마끼 제1토벌대는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의 사이에 사도구 남리벌에 있는 연통라자와 3도구일대를 차지하고 남녀로소 백수십여명을 무참히 죽이고 집들을 파괴소각하였으며 살아남은 가족들을 몽땅 끌어가고 다 익은 곡식낟가리들에 불을 질렀다.

아베 제2토벌대는 대황구를 점거하고 근 5일간에 걸쳐 수백채의 살림집들에 불을 지르고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쏘아죽이고 때려죽이였다.

쥬지 제3토벌대도 훈춘현 대황구일대와 훈춘시가에 달려들어 수많은 가옥들을 파괴소각하였으며 부녀자들을 릉욕하고 재물을 략탈하였다.

일제살인마들은 조선사람들이 사는 부락이라면 그 어느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달려들어 집과 야학방까지 불태워버렸으며 조선사람이라면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끌어다가 쏘아죽이고 때려죽이고 찔러죽이고 불태워죽이였다. 지어 산 사람의 눈알을 파내고 사지를 찢어죽였으며 수십명씩 땅속에 생매장하여 죽이였다. 악귀같은 살인귀들은 집에 불을 지른 다음 울바자문밖에 총창을 겨누고 서있다가 비명을 지르며 살겠다고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마구 찔러죽이거나 도로 불더미우에 넣어 태워죽이였다. 악착한 놈들은 《반일분자들은 종자까지 없애야 한다.》고 뇌까리면서 불붙는 집에서 뛰쳐나오는 어머니의 품에서 갓난 어린이를 빼앗아내여 불붙는 지붕우에 던지고 어머니까지 죽였다.

만철수비대의 만행도 극도에 달하였다. 10월 8일 화룡현 홍기하에 기여든 놈들은 2 000여세대의 살림집들을 불태워버렸으며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독립군과 내통한다고 하면서 무참히 학살하였다. 10월 13일에는 사람들이 잠자는 이른 새벽에 6문의 포로 2도구에 포사격을 한 다음 100여명의 기병을 내몰아 피신하는 사람들을 따라가며 쏴죽이고 총창으로 찔러죽이였다.

인간백정 이소바야시는 졸개들을 모아놓고 제1차 《토벌》작전에서 그 무슨 성과라도 거둔것처럼 떠벌이면서 이제부터 신속한 기동전을 벌려 더 많은 조선사람들을 살륙하라고 미친듯이 고아댔다.

10월 20일부터 시작된 둘째 단계에서는 《토벌》대놈들이 여러 지방으로 싸다니면서 조선사람들에 대한 학살만행을 감행하였다.

10월 20일 피바다에 잠겨있는 훈춘현 4도구를 또다시 기습한 살인마들은 부락을 초토화하고 21일에는 6도구에 달려들어 20여명의 애국적인민들을 체포학살하였으며 지어 산중에 피신하여있는 무고한 인민들까지 모조리 학살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24일에는 씨비리쪽에서 넘어온 일제침략군 11사단의 한부대와 합동하여 로흑산쪽으로 나오면서 수많은 조선인부락들을 불사르고 인민들을 학살하였으며 라자구부근 여러 부락을 초토화하였다.

회령에서 넘어온 300명의 새로운 일제토벌대는 두만강연안의 한 부락을 겹겹이 포위하고 수색소동을 벌려 수십명의 조선청년들을 체포하고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죽이였으며 많은 조선사람들의 목을 잘라 함석판에 놓고 석유를 뿌려 무참히 불태워버리는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10월 30일 연길지구에 기여든 일제는 조선사람들이 사는 한 부락에 기여들어 70여호의 집들에 불을 지르고 주민 300여명가운데서 255명을 살해하고 의란구에서는 한 가정의 4형제를 불속에 밀어넣어 태워죽이고도 성차지 않아 다시 조선청년 23명을 생매장하여 죽이였다.

당시 일제의 살인만행을 직접 목격한 한 미국인까지도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집에서 끌어내여 모조리 쏴죽이고 채 죽지 않은 사람들을 불속에 집어넣어 타죽게 하였다. …불탄 재무지에는 시체가 많이 섞여있었다. 재무지에서 시체 하나를 꺼내보니 잘리운 손과 발이 널려있었으므로 나는 그것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어찌나 흥분했던지 손이 떨려서 사진을 네번이나 고쳐찍었다.》라고 썼다.(《군국일본 조선강점 36년사》중. 1966년, 261~262페지)

일제가 간도대《토벌》때 학살한 조선사람의 수는 3만여명에 달하며 불태워버린 주민가옥은 6 000여호나 되였다.

일제야수들의 대규모적학살만행으로 말미암아 간도일대는 조선사람의 붉은 피로 물들었으며 10여만명의 조선사람들이 부모, 형제, 자식들과 집, 재산을 잃고 알몸이 되여 길가에 쫓겨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온 간도땅이 피바다, 불바다로 되여 비분에 찬 우리 인민의 눈물이 강을 이루고 원한의 통곡이 하늘땅에 넘칠 때 일제야수들은 《토벌작전》의 《승리》를 떠벌이면서 축배를 들었다. 라남주둔 일제침략군 19사단장은 《토벌군》의 《수고》에 대하여 치하하였으며 조선군사령관은 19사단본부에 《토벌작전》의 종결을 경축한다는 찬사》를 내리였다.

실로 일제가 1920년에 감행한 간도대《토벌》은 산천초목도 분노에 떨게 하는 잔인무도한 학살만행이였다.

경신년간도대《토벌》은 일제야말로 중세기적인 야만성과 사무라이적인 호전성을 자기의 고유한 체질적본성으로 하고있는 야만의 무리, 인간백정이라는것을 다시금 똑똑히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