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하나 하여도 자기 대에는 비록 덕을 보지 못하더라도 먼 후날에 가서 후대들이 그 덕을 볼수 있게 가장 훌륭하게, 완전무결하게 하여야 한다는것이
자매섬의 세 학생을 위하여 학교를 세워주시고 그들을 따뜻히 보살펴주신 이야기는 오늘도
남포에서 아득히 떨어진 곳에 자매섬이라는 외진 등대섬이 있다. 보통 지도에는 점으로도 표시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
조선봉건왕조말기에 자매섬에 등대가 생기고 등대지기들이 어설핀 살림을 폈지만 천한 신분인 탓으로 하여 천대와 멸시속에서 비애와 탄식과 눈물로 나날을 보내였다.
비애의 섬, 눈물의 섬이였던 이 외진섬에 삶의 기쁨이 넘친것은 조국이 해방된 다음부터였다.
하지만
그러던 주체64(1975)년 가을이였다.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창밖을 내다보시다가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남포에 나와서 공부하는 자매섬의 어린이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그들이 지방당조직들과 인민들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고있기때문에 모두 집생각을 잊고 명랑하게 생활하고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리하여 자매섬에 세 아이를 위한 학교가 세워지게 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때로부터 며칠후 자매섬에는 크나큰 경사가 났다.
세멘트를 비롯한 건설자재들과 교구비품을 실은 운반선이 달려오고 대학을 졸업한 녀교원이 밝게 웃으며 배에서 내렸다.
불과 며칠사이에 사방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경치좋은 등대탑곁에 세 아이가 공부할 학교가 번듯이 꾸려지고 밝은 교실안에는 까만 윤기가 흐르는 흑판이 걸렸으며 책상, 걸상을 비롯한 교구비품들이 그쯘히 자리잡았다.
뒤이어 뜻깊은 개학식이 있었고 새 학년도의 첫 수업이 있었다.
어느해 2월 바다에 떠도는 얼음장때문에 배길이 막혔을 때에는 해군함정을 동원하여 한보따리도 되나마나한 교재를 실어다주도록 하시였으며 어느 해에는 겨울방학동안 뭍에 나왔던 녀교원이 얼음이 풀리지 않아 개학날이 되여도 돌아가지 못한다는것을 아시고 직승기를 보내시여 그를 새학기의 첫수업에 늦지 않게 태워주도록 하시였다.
어느덧 자매섬의 한 학생이 소학교과정을 마치게 되였을 때에는 그가 섭섭해하지 않도록 수백명의 학생들이 졸업하는 큰 졸업식처럼 성대하게 해주라고 하시면서 지방당일군들과 교육부문 일군들을 자매섬에 보내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섬에서는 등대원들과 그 가족들, 지방당일군들과 교육부문 일군들이 모인 가운데 평범한 등대원의 아들인 한명의 소학교졸업생을 축하하는 뜻깊은 졸업식이 진행되게 되였다.
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