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우리 수령님의 생활의 철칙
《작은 가마에 끓여먹는것을 반대한다.》

 2022.8.31.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작은 가마에 끓여먹는것을 반대한다.》는것을 생활의 철칙으로 삼으시고 한평생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특혜와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였으며 인민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이 언제나 겸허하고 소박하게 생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작은 가마에 끓여먹는것을 반대한다.〉는것을 생활의 철칙으로 삼아왔습니다. 작은 가마에 끓여먹는것을 반대한다는 말은 군중속에 들어가지 않고 군중과 차이나게 생활하는것을 반대한다는 말입니다.》 (김일성전집》 제92권 147페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실록의 갈피마다에는 그 어떤 자그마한 특전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시고 겸허하고 소박하게 생활하신 그이의 위인적풍모를 전하는 감동깊은 일화들이 수많이 기록되여있다.

해방후 조국에 개선하시여 주요간부들과 함께 합숙생활을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끼 반찬을 3가지이상 해놓지 못하게 엄격히 통제하시였다.

그래서 늘 밥상에는 국그릇외에 김치, 감자지지개 혹은 두부장이 고정적으로 오르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타자수들은 건당, 건국, 건국사업을 위하여 불철주야로 헌신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이 걱정되여 자기네끼리 토론하고 닭고기와 콩나물을 구해다가 반찬 두가지를 더 만들어 밥상에 올려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느때없이 다섯가지 반찬이 놓인것을 보시고 영문을 알아보시였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타자수들을 부르시여 우리가 왜 동무들의 심정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누구도 식사규률을 어겨서는 안된다, 우리가 간부라고 하지만 우리만 잘 먹고 잘 입으면 안된다, 그러면 인민들이 우리를 받들고 따르지 않을것이다, 우리는 인민들과 같이 먹고 입으면서 그들이 잘 먹고 잘살 때에 가서 그들과 같이 잘 먹고 잘 입어야 한다, 누구를 물론하고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초과하여서는 안된다고 절절하게 타이르시였다.

주체36(1947)년 9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함경북도안의 여러 단위들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잠시의 휴식도 없이 여러 단위들을 돌아보시며 크나큰 로고를 바쳐가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한번만이라도 색다른 음식을 마련해드리기 위해 마음을 쓰던 일군들은 어느날 바다가에서 낚시질로 물고기를 몇마리 잡아다 가공하였다.

이날도 여러 단위를 현지지도하시고 숙소에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은 걸음을 많이 걸어서인지 배가 좀 출출하다고 하시며 소박한 식탁에 마주앉으시였다.

상우에는 백미와 기장쌀을 섞어 지은 밥과 물고기지지개, 남새볶음, 김치가 올랐다.

음식들을 살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물고기료리까지 올랐는데 웬일인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이 기장쌀은 이곳 취사원이 구해오고 물고기는 자기들이 낮에 심심풀이를 하면서 낚시로 잡은것이라고 대답올리였다.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시며 자신때문에 모두 수고가 많았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에서 싸울 때 어쩌다 이런 물고기가 생기면 정말 별맛으로 먹었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나라가 해방되였으니 이제 인민들에게도 이런 물고기를 많이 공급해야 하겠다고 하시며 자신의 밥그릇을 옆으로 밀어놓으시고 그들이 먹는 밥을 한그릇 가져오라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운해하는 일군에게 자신께서는 산에서 일본놈들과 싸울 때 늘 대원들과 음식을 똑같이 먹었다고, 그들이 통강냉이를 삶아먹으면 자신도 통강냉이를 먹었고 강낭죽을 쑤어먹으면 자신도 강낭죽에 소금을 먹었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해 5.1절에 식량이 떨어져 대원들과 개구리료리를 먹었다고 하시면서 대원들이 산나물로 끼니를 에우면 자신도 그렇게 하였다, 대원들이 어쩌다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가져오군 하였는데 자신께서는 그것을 한번도 들지 않고 어린 대원들과 앓는 사람들에게 돌려주군 하였다, 한번은 군수관이 찾아와 사령관동지의 식사를 남비같은데 따로 해드려야 한다는 일치한 의견이 제기되였는데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자신께서는 그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남비에 자신의 식사를 따로 하면 단식을 하겠다고 말해주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끝내 기장쌀밥과 물고기반찬을 드시지 않고 우리 인민들의 식생활이 지금보다 유족해진 다음 그 성의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소박하고 한없이 겸허한 식사규칙을 혁명생애의 전기간 변함없이 이어가시였다.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기나긴 세월 이 세상 모든 고생과 슬픔, 괴로움을 다 체험하시면서도 오직 인민만을 생각하시고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묵묵히 새기시며 헌신적복무의 력사를 수놓아오신 우리 수령님.

우리 수령님께서 큰 가마와 작은 가마를 견결히 반대하신것은 이런 현상이 만연되게 되면 사람들사이에 격차를 만들게 되고 이 격차가 커지면 인민의 존엄과 인격까지도 침해하게 되며 나중에는 혁명 그 자체가 파멸되게 된다는 심오하고도 위대한 사상, 뜨거운 인간존중의 사상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작은 가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우리는 〈작은 가마〉를 찬성하지 않는다. 〈작은 가마〉를 둬두면 온갖 〈잡귀신〉들이 다 생길수 있기때문이다. 〈작은 가마〉에서는 자본주의사상밖에 나올것이 없다. 이런 〈작은 가마〉를 그대로 둬두면 당과 대중사이에 금이 가게 되고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허물어질수 있다. 우리 식 사회주의가 튼튼히 건재하고있는것은 당이 관료화되지 않았고 우리가 〈작은 가마〉를 허용하지 않는것과도 주요하게 관련되여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생애의 전기간 인간존중의 그 숭고한 세계에서 한치의 탈선도 모르시였고 일군들에게도 이런 품성을 소유할데 대하여 거듭 강조하여오시였다.

실로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은 그대로 인민의 충복의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신 고귀한 한생이였으며 일군들을 인민의 성실한 심부름군으로 교양하고 이끌어주신 인간사랑, 인간존중의 성스러운 력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