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우리 수령님 한평생 입으신 인민복

 2020.7.29.

동서고금에는 수많은 정치가, 위인, 명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우리 수령님처럼 이민위천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생활의 본령으로 삼고 한평생을 인민을 위하여 다 바치신 위대한분,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는 없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한평생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2권 255페지)

우리 인민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전에 언제나 닫긴깃양복을 즐겨입으시였다는것을 뜨거움속에 추억하고있다. 사람들은 그 옷을 인민복이라고 불렀다.

주체92(2003)년 4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어버이수령님의 한평생에 대하여 감회깊이 회고하시며 자신께서는 그전에 수령님께서 늘 닫긴깃 인민복을 입고 인민들속에 들어가 사업하시기때문에 이제부터는 자신께서 닫긴깃 인민복을 입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일하겠으니 수령님께서는 제낀깃옷을 입고 휴식도 하시면서 쉬염쉬염 일하시라고 여러번 말씀드리였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생토록 인민들이 누구나 입는 수수한 천으로 만든 보통모양의 옷을 입으시고 한평생 인민을 위한 헌신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인민들속에 들어가는데 사치한 옷을 입어서는 안되며 색다른 옷차림을 하고 다니면 로동자, 농민들이 도리여 자신을 어렵게 대한다는것이 옷과 관련된 위대한 수령님의 지론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과 차이없는 검박한 옷차림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였고 일군들이 색이 바랜 옷대신에 좋은 천으로 새 옷을 지어드리려 할 때에는 옷이 수수해서 좋은데 왜 그러는가고 하시며 낡은 옷을 다시 뒤집어 손질하게 하시였다.

그렇게 늘 닫긴깃양복을 입으시고 애민헌신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인자하신 모습을 그려보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추억에 젖은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수령님께서 입으시던 닫긴깃옷을 인민복이라고 하는것은 닫긴깃 앞부분이 사람인자모양으로 되여있기때문이다, 해방직후 수령님께서와 어머님께서는 만경대혁명학원 원아들의 군복팔소매에도 인민의 참된 아들딸이 되라는 의미에서 사람인자모양의 빨간줄을 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평생 닫긴깃양복을 벗지 않으신 리유는 목깃의 앞부분이 한자에서 인민을 뜻하는 《人》자처럼 생기였기때문이며 닫긴깃양복이 우리 인민이 평상시에 누구나 입는 인민복이기때문이였다.

국제외교무대나 정치연단에 나서는 사람들이 제낀깃옷에 넥타이를 받쳐입는것이 하나의 흐름처럼 관례화되여있었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토록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시는 인민들과 허물없이 어울리시기 위해 옷마저도 언제나 인민들이 늘 입는것과 꼭같은것을 한평생 입고 사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낀깃옷에 넥타이를 매신 옷차림을 하게 되신것은 주체73(1984)년 7월초 수령님께서 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 대한 방문을 마치시고 돌아오신 이후부터였다.

우리 인민은 제낀깃양복에 넥타이를 매신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뵈옵고 젊어지신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에서 기쁨을 금치 못하였고 서방의 자본주의세계는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낀깃옷에 넥타이를 매고 나서신것이 얼마나 놀라왔으면 며칠후 자본주의나라의 한 통신이 국가령도자로서 수십년동안 하지 않으시던 옷차림을 하신 구체적동기와 계기에 대해 의혹을 표시하면서 혹시 이것이 《조선정치의 변화》를 의미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제나름의 해석을 한적도 있었다.

그 옷의 사연으로 말한다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을 방문하실 때 다른 대표단성원들은 다 제낀깃옷에 넥타이를 매였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은 닫긴깃옷을 입고계시는것이 마음에 걸리시여 외국방문에서 돌아오신 어버이수령님위대한 장군님께서 지어드리신 옷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성의가 담긴 옷을 드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평생 군복과 닫긴깃옷을 입고계시기에 우리 인민은 제낀깃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행복하게 살고있다고, 이제는 자신께서 닫긴깃 인민복을 입고 인민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겠으니 제낀깃양복에 넥타이를 매시고 쉬염쉬염 일하시기를 바란다고 간절히 말씀드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원이 정 그렇다면 제낀깃양복을 입겠다고, 그러나 마음의 군복만은 벗을수 없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때까지 세상사람들이 뵈온 위대한 수령님의 옷차림은 늘 닫긴깃옷 한가지 차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미전에 제낀깃옷을 한번 입으신적이 있는데 그것은 나라가 갓 해방된 그해에 항일투사들이 지어올린것이였다.

항일의 전장에서 포연에 그슬린 군복을 입으시고 조국에 개선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업을 가까이에서 보좌해드리던 항일투사들은 수령님께 양복을 지어올리기로 의논하고 줄무늬가 있는 밤색양복천 한벌감과 샤쯔천을 구해서 옷을 지어올렸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개선연설도 하셔야 했고 해방된 조국땅우에서 각계각층의 인사들도 수많이 만나셔야 했지만 외출복이 단 한벌도 없었다.

한 항일투사동지가 여벌외출복이 없기때문에 좋은 천을 구해다가 한벌 더 짓겠다는 말씀을 올리자 그이께서는 자신께서는 동무들이 지어준 옷이면 된다고 굳이 사양하시면서 해방은 되였지만 우리 인민은 아직 헐벗고 토스레옷을 벗지 못하고있는데 내가 어떻게 좋은 옷을 해입을수 있겠는가, 새 조국건설을 빨리 다그쳐 우리 인민모두가 좋은 옷을 해입게 될 때 자신께서도 옷을 해입겠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그 제낀깃양복을 입으시고 개선연설도 하시였고 고향 만경대를 찾으시여 조부모님들과의 감격적인 상봉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사적을 수록한 기록영화나 사진들에 제낀깃옷에 넥타이를 매신 어버이수령님의 환하신 모습은 이렇게 처음으로 모셔지게 되였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고령이 되실 때까지 다시는 제낀깃옷을 해입지 않으시였다.

나라에 비단폭포가 쏟아져흐르고 집집마다에 여러가지 아름다운 천들이 필필이 쌓일 때에도 인민들에게 더 좋은 옷을 해입히지 못해 마음쓰신분이여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늘 자신께서 고급양복천으로 만든 제낀깃옷을 해입기에는 아직 이르다고만 생각하시였던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평생 입으신 인민복에는 인민을 위하시는 우리 수령님의 숭고한 뜻과 고결한 풍모가 뜨겁게 어려있다.

한평생 인민을 하늘처럼, 스승으로 여기시며 애민헌신의 길을 쉬임없이 이어가신 위대한 수령님은 천년이 가고 만년이 가도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함께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