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당과 공화국정부는
조국의 미래는 아이들의 모습에 있다.
하기에 소년단사업을 나라와 민족의 운명, 혁명의 전도와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로 내세우시고 조국의 미래인 소년단원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 강성조선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키우시려는것은
아이들의 큰 행사를 치르는 과정에 무슨 일인들 없었으랴만 그중에는 자유주의적행동으로 행사장에 나타난 어린이가 소년단대표로 한명 더 추가되여 2만 1명으로 된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다.
행사장밖에서 한 소년이 행사에 참가시켜달라고, 구경이라도 하고 가겠다고 눈물을 머금고 떼를 쓰며 아무리 설복해도 돌아가지 않고 버티고서있는 《사건》이 발생하였던것이다.
당돌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철없는것의 엉뚱한 행동이라고 해야 할지…
사실 대회대표선발은 학습과 조직생활, 좋은일하기운동에서 모범을 보인 소년단원들을 기본으로 하되 가장 평범한 로동자, 농민, 군인, 과학자, 기술자의 자녀들로 할데 대한
그런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생떼를 쓰는 철부지의 자유주의적인 행동에 부닥치고보니 일군들은 놀라움과 당황함을 금할수 없었다.
평양산원에서 태여났다고 하여 할
하지만 소학교 3학년생인 그는 군관의 아들답게 배짱이 센것이 여간내기가 아니였다.
일군들이 아무리 얼리고 엄포를 놓아도 수백리길을 홀몸으로 달려왔다는 소년은 먼데서라도
평안북도 염주군의 어느 한 소학교에 다니는 그는 소년단에 입단한지 몇달밖에 안되고 나이가 어리다는 리유로 대표자격을 받지 못한것이 너무도 안타까와 생각하던 끝에 기차를 타고 혼자서 수백리나 되는 평양으로 달려왔던것이다.
6월 2일 학교에서 평양으로 떠나는 소년단대표들을 바래우고 집으로 돌아온 평산이는 온밤 대회에 참가하고싶은 욕망과 서러움으로 모대기다 다음날 아침일찍부터
6.6절은 소년단원들의 명절인데 그날 하루만이라도 평양시 모란봉구역에 있는 할머니네집에 가서 먼발치에서 조선소년단 전국련합단체대회를 구경하고 오겠다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부모들로부터 평양에 있는 할머니네집에 가보는것만 그것도 딱 하루동안만 갔다가 즉시에 돌아오는것을 허용한다는 답변을 받아내고야말았다.
이렇게 되여 기차를 타고 평양에 온 평산이는 행사장앞에까지 와서 무작정 참가시켜달라고 조르게 된것이였다.
어른이라면 대표자격이 없이는 못참가한다고 되게 추궁을 하여 돌려보내면 되겠지만 아직 규률이란 개념조차 모르는 철부지아이와는 도무지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일군들은 이 사실을 그대로
뜻밖의 보고를 받으신
그러시고는 대표자격이 없으면서도 대회에 참가시켜줄것을 절절히 바라며 수백리길을 혼자서 달려온 당돌한 그 소년의 애타는 마음을 너그럽게 헤아리시여 그 간절한 소원을 풀어주자고 하시면서 즉석에서 대회에 참가시키도록 특별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것이 바로 대회가 시작되기 10분전에 있은 일이였다.
하여 김평산소년에게 즉시 대표증이 수여되였으며 대회의 소년단대표는 한명이 더 늘어 2만 1명으로 되게 되였다.
그날 평산이는
다음날 평산이는
《자유주의분자》는 행복의 단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이렇듯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고 2만명의 소년단대표가 한명 더 추가된 전설같은 이 이야기는 평산이 할머니가 사는 모란봉구역으로부터 평안북도와 군부대를 거쳐 온 나라에 희한한 화제거리가 되여 행복의 웃음속에 들썩하게 전해지면서 그 무슨 무훈담처럼 가공윤색되여 퍼져갔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만 찾아보고 허용될수 있는 철부지 자유주의분자에 대한 다심한 사랑의 이야기.
볼기를 맞아도 할말이 없는 철부지의 엉뚱한 행동까지 그처럼 너그럽게 헤아려주시여 가슴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