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조선의 청동2인교예장식품

 2018.4.2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조상들은 고대로부터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였으며 동방문화를 꽃피웠습니다.》 (김일성전집》 제1권 554페지)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자기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훌륭한 민족문화를 창조하여왔다.

우리 민족이 고대로부터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였으며 동방문화를 꽃피웠다는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력사유적과 유물들가운데는 청동2인교예장식품도 있다.

청동2인교예장식품은 황해북도 상원군 장리1호고인돌무덤에서 나온 고조선시기의 유물이다.

장리1호고인돌무덤은 상원군 장리소재지에서 약 800m떨어진 장리천왼쪽의 평지에 자리잡고있다.

무덤은 고임돌과 막음돌을 《ㅍ》형으로 네 면에 세워 무덤칸을 만들고 그 우에 뚜껑돌을 올려놓은 오덕형고인돌무덤으로서 B.C. 3000년대전반기에 축조된것으로 인정되고있다. 뚜껑돌은 모가 죽은 장방형으로서 거의 타원형에 가깝고 그 크기는 길이 630㎝, 너비 405㎝, 두께 72㎝인데 밑면은 평평하지만 웃면은 가마뚜껑처럼 불룩하게 가공되였다. 뚜껑돌밑에 각각 두개의 고임돌과 막음돌을 세워 무덤칸을 만들었다. 무덤칸은 심히 파괴되였는데 발굴당시 고임돌과 막음돌이 놓인 위치로 보아 크기는 길이 200㎝, 너비 150㎝, 높이 180㎝정도 되였다. 무덤칸안에는 모래층이 15㎝ 두께로 쌓여있었고 그 밑에 거무스레한 감탕흙층이 30㎝ 두께로 깔려있었다.

무덤칸바닥우에 쌓인 이 감탕흙층속에서 바로 청동2인교예장식품이 청동방울, 청동끌, 돌활촉, 별도끼쪼각, 팽이그릇쪼각, 조롱박형단지쪼각 등 많은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였다.

청동2인교예장식품은 무덤칸의 동북쪽부분에서 1개가 나왔는데 그 크기는 높이 4.8㎝, 너비 5.1㎝, 두께 1.8~2.5㎜정도 된다. 장식품은 청동을 주조하여 만든것으로써 겉면에 녹이 쓸어 검푸른 색을 띠였고 가장자리에 일부 주조흔적이 남아있다.

이 장식품은 한쪽발을 서로 비끄러맨 두사람이 나란히 어깨를 겯고 한손으로는 둥근륜을 쥐고 제각기 손재주를 부리면서 다른쪽의 한발로 륜을 돌리는 교예의 한 장면을 형상하고있다. 또한 장식품은 사람의 어깨로부터 밑으로 내려가면서 물결모양의 굴곡을 조성해줌으로써 률동에 맞추어 관중들의 흥취를 돋구어주는 교예사들의 높은 예술적기교를 보여준다.

청동2인교예장식품에는 눈, 코, 입, 귀를 비롯하여 사람의 얼굴형상이 생동하게 묘사되여있으며 몸체에는 3각형의 기하무늬장식이 앞뒤면에 조화롭게 새겨져있다.

두 인물은 대조되게 묘사함으로써 남녀의 구분을 뚜렷이 나타내고있다. 장식품에서 왼쪽의 인물은 머리와 목, 몸체, 다리가 오른쪽인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형상되였다. 반면에 오른쪽의 인물은 머리가 작고 목과 허리, 다리가 가늘며 살짝 우로 치켜뜬 눈이 새겨진 갸름한 얼굴은 왼쪽인물의 얼굴형상과 대조된다. 그리고 두 인물의 머리뒤부분에는 길이 0.8~1㎝, 너비 1㎜정도 되는 서로 다른 크기의 홈이 세로 나타나있는데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머리꾸밈새를 반영한것으로서 남녀차이를 강조한것이라고 보아진다. 이러한 두 인물의 대조적인 차이점은 왼쪽의 인물이 남자이고 오른쪽인물이 녀자이라는것을 직관적으로 잘 보여준다.

장식품에 형상된 교예사들의 머리는 몸에 비해서 좀 큰 편이다. 그리고 몸에 꼭 붙은 옷의 뒤면에는 허리부분이 구분되여있는데 이것은 교예사들이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것으로 볼수 있게 한다.

우선 청동2인교예장식품은 우리 나라에서 교예와 같은 예술이 이미 고조선시기에 높은 수준에서 발전하고있었다는것을 뚜렷이 실증해준다.

장식품에서 본바와 같이 둥근 륜을 돌리면서 재주를 부리는 교예사들의 동작에는 박력있고 률동적인 독특한 조형미가 잘 나타나고있다.

이 교예장식품은 고조선시기의 교예사들이 이미 무대의상과 소도구도 리용하고있었다는것을 잘 보여준다.

장리1호고인돌무덤에서 청동2인교예장식품이 2개의 청동방울과 함께 알려진것으로 보아 청동방울들은 교예를 위한 소리기재로 리용되였다고 보아지며 고조선시기의 교예가 일정한 선률에 맞추어 진행되였다고 생각할수 있게 한다.

청동2인교예장식품은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시기에 널리 보급되였던 교예가 이미 고조선시기에 발생하였다는것과 고조선시기의 교예예술에 바탕을 두고있었다는것을 여실히 실증하여준다.

또한 이 장식품을 통하여 고조선시기 우리 선조들의 청동주조기술과 문화정서생활의 높은 발전수준도 잘 알수 있다.

청동2인교예장식품은 우리 나라 고대유적들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희귀한 유물로서 고대 우리 민족의 높은 예술적재능과 기교, 뛰여난 공예술, 랑만적이고 정서적인 예술활동과 생활모습 등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로 된다.



청동2인교예장식품
청동방울

장리1호고인돌무덤에서 발견된 청동2인교예장식품과 청동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