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형남
2019.10.7.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고결한 인품과 덕망을 지니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조중인민의 공동의 원쑤인 일제를 반대하는 준엄한 항일전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구국의 기치를 들고 일어선 구국군 관병들을 뜨거운 사랑으로 보살펴주시였으며 그들을 끝까지 항일의 길로 이끌어주시였다.
그 력사의 갈피속에는 구국군의 총사령이였던 왕덕림도 있다.
항일무장투쟁의 첫시기부터 조중인민들과의 반일공동전선을 실현하는 사업을 전략적문제로 내세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인반일부대와의 사업에 큰 의의를 부여하시고 그들과의 공동전선을 적극 벌려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반일부대와의 사업에서 나타나고있던 좌경적편향을 극복하고 그들을 반일련합전선에 더 많이 인입하기 위하여 주체21(1932)년 12월 말 왕청현 라자구에서 반일병사위원회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의 기본안건은 반일부대들의 퇴각을 저지시키고 반일련합전선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에 관한 문제였다.
그때 동녕현성에 집결된 반일부대들은 쏘련을 경유하여 중국관내로 퇴각할 준비를 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반일부대와의 사업에서 발로되고있는 좌경적행위들과 곤난앞에서 굴복하고 투쟁을 포기하는 투항주의적경향들을 신랄히 폭로비판하시고 량강구회의에서 천명된 방침을 확고하게 견지하며 그것을 철저히 관철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라자구회의후 몸소 반일인민유격대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동녕쪽으로 후퇴하는 왕덕림이 인솔하는 반일부대를 항일의 길에 돌려세우기 위하여 로흑산방면으로 진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덕림을 만나시여 도탄에 빠진 민족을 구원하며 빼앗긴 강토를 되찾기 위해서는 반일의 기치를 계속 추켜들어야 하며 난관에 굴하지 말고 구국항전을 힘있게 벌려야 한다고 근기있게 해설하시였다.
그러나 왕덕림은 끝내 이전 쏘련을 거쳐 중국관내로 가버리였다.
왕덕림과 헤여지신 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국군 관병들을 만나시는 여러 기회에 향방없이 떠돌아다니며 고생을 하고있을 왕덕림과 그 일행에 대하여 못내 걱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때 신심을 잃고 실책을 범하긴 했지만 그의 량심과 애국의기는 변할수 없다고, 왕덕림과 어떻게 하나 련계를 맺고 귀국시켜 항일구국의 길에 다시 들어서도록 진심으로 도와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보중을 비롯한 북만의 중국공산주의자들과 자주 련계를 가지시는 기회에 그들에게 왕덕림과 맺었던 지난날의 좋은 관계를 절대로 버리면 안된다고, 항일대오에 한사람이라도 더 뭉치면 좋은 일이지 나쁠것이 없다고 일깨워주시고 빨리 사람을 보내여 그에게 동북의 항전소식도 전하고 손잡고 함께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왕덕림과 어떻게 하나 련계를 맺고 항일구국의 길에 다시 내세우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고 그의 행처를 수소문한 오의성은 맹소명 등 일행을 왕덕림에게 파견하였다.
왕덕림을 만난 자리에서 맹소명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를 만나주시고 왕덕림의 신상을 걱정하시던 따뜻한 인사의 말씀과 동북전장에 다시 출병할것을 바라시는 간곡한 당부를 정중히 전달하였다.
살붙이처럼 여겨오던 측근들까지도 다 등을 돌려대는데 김사령께서만은 믿음도 의리도 줴버린 이 로구를 아직 믿고계신다고 생각한 왕덕림은 이제라도 각성하여 그분의 믿음에 죽기를 각오하고 결초보은하리라고 결심하였다.
특히 왕덕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담배를 무척 즐기는 총사령이 낯선 이역에서 담배나 제대로 얻어피우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일부러 사람을 띄워 구하여 보내주신 담배와 털외투를 받아안고 오열을 터뜨렸다.
그는 항일구국의 대의를 저버리고 일시 항전을 포기한 망명객의 가슴에 아직 잔해로나마 남아있는 애국심을 귀중히 여기시고 따뜻한 정과 사랑을 기울여 구국에로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고마움을 금치 못하면서 장차 동북출병을 결행함으로써 수치스러운 과거를 애국의 오늘로 씻겠다는 결의를 표명하였다.
그는 각지 민중속에 동북전장의 승전소식도 전하고 동북항일련군에 보낼 군자금모연공작도 벌리는 한편 풍옥상을 비롯한 애국지사들과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중조항일련합전선로선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도 협의추진시켜나갔다.
맹소명일행이 가져온 소식을 오의성을 통하여 전달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몹시 기뻐하시면서 년로한 왕덕림이 무사히 귀환하여 공동항일의 길에서 다시 상봉할수 있게 되기를 고대하시였으며 오의성을 통하여 왕덕림이 관내에 귀국한 이후의 소식을 아시고는 못내 기뻐하시였다.
그후 왕덕림은 별동대 2로군을 이끌고 멀지 않아 동북전장에 출병하여 높은 기대에 부응할것이라는 자기의 항일의지를 위대한 수령님께 꼭 전해줄것과 주보중을 비롯한 지휘성원들이 합심하여 고생이 많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부담을 덜어드리며 수령님의 안녕을 각방으로 보장해드릴것을 재삼 당부하였다.
그러면서 그동안 마련한 군자금 3만원을 위대한 수령님께 전달해드릴것을 부탁하였다.
그때 왕덕림이 년령이나 사회경력에서 수십년을 앞선 심한 격차에는 개의치 않고 위대한 수령님을 그처럼 존대하며 자기의 심정을 서슴없이 터놓은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경륜과 인덕에 대한 탄복과 숭배의 감정으로부터 우러나온것이였다.
그후 운명의 시각을 앞둔 왕덕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솔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구국군과 련합하여 일만군경에게 심대한 타격을 준 전투소식에 접하여 감격을 금치 못하면서 측근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만을 제압하고 장백일대를 타고앉아 조선에 출병하시였다, 일본이 망할날도 멀지 않았다고 하였다.
왕덕림은 운명직전에 김일성사령께서 이 로구를 불러주시였는데 나는 가지 못하지만 그대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꼭 가야 한다, 나를 대신하여 부디 그분을 잘 받들어달라고 하면서 그분은 나의 영원한 젊은 지기이시다,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김사령을 보고싶다고 유언을 남기였다.
그러면서 왕덕림은 비범한 지략과 숭고한 인덕을 지니시고 동북혁명에 부단히 약동의 활력을 부여하시며 도처에 인간미덕의 화원을 펼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수령님을 《동북항일의 령수》, 《동북항일군민의 성인군자》로 높이 칭송하였다.
지금도 중국인민의 마음속에는 일찍부터 자기 나라 혁명을 적극 지지성원하여주신 위대한 수령님을 위대한 국제주의자의 귀감으로, 고결한 대성인으로 모셔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