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구석기시대중기의 몰이사냥터유적-로동리유적

 2024.7.2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민족의 슬기와 력사는 문화유산을 통하여 후세에 전하여집니다. 력사유적과 유물은 선조들이 어떤 문화를 창조하고 어떻게 생활하였으며 어떠한 길을 걸어 발전하여왔는가 하는것을 보여주는 실물자료입니다.》

구석기시대에 우리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유적들가운데는 황해북도 상원군에서 알려진 로동리유적도 있다.

이 유적은 평양에서 동쪽으로 약 24㎞ 떨어진 상원군 로동리에 있다.

리소재지에서 남강의 흐름방향을 따라 서쪽으로 3㎞정도 가면 고령산의 북쪽줄기와 서쪽줄기사이에 생긴 계곡의 어구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는 표고 6m(해발 62m)의 석회암언덕이 있다. 이 석회암언덕 북쪽부분의 200m구간에는 북동-서남방향으로 뻗은 석회암균렬을 따라 형성된 15개의 수직굴이 한줄로 줄지어있다.

그 중심에 있는 수직굴에서 동물뼈화석들이 많이 드러났다.

이 동굴의 입구는 길이 9m, 너비 3.5m이다. 퇴적층은 4개층으로 구분되는데 밑에서부터 우로 올라가면서 90㎝두께의 붉은 점토층(1층), 65㎝두께의 붉은 조립사질점토층(2층), 1.5m두께의 석회암력들이 섞인 붉은 점토층(3층), 6m정도의 두께를 가진 붉은 점토층(4층)의 순서로 쌓여있다. 3층에만 동물뼈화석들이 있었다.

여기에서는 2 000여개의 동물뼈화석이 발굴되였는데 감정결과에 의하면 토끼, 족제비, 오소리, 늑대, 표범, 동굴히에나, 말, 큰쌍코뿔이, 복작노루, 노루, 큰꽃사슴, 누렁이, 물소로서 총 13종이다.

로동리유적의 동물상에서 사멸종이 차지하는 비률은 37.6%로서 구석기시대전기의 검은모루유적(사멸종비률 62%)보다는 낮고 구석기시대후기의 만달리유적(사멸종비률 15.4%)보다는 높다. 그리고 화석화정도도 검은모루유적의 화석보다는 낮고 만달리유적의 화석보다는 높다.

그러므로 이 유적은 구석기시대중기에 해당된다.

학계에서는 로동리유적을 고인들이 남긴 몰이사냥터유적으로 보고있다.

그것은 우선 수직동굴들의 위치와 구조가 몰이사냥에 매우 유리하기때문이다.

동굴들은 위치상 고령산과 남강사이에 있는데 이곳은 많은 짐승들이 물먹으러 다니는 길목에 해당된다.

그리고 수직동굴들의 분포상태를 보면 한줄로 길게 배렬되여 마치도 함정체계를 련상케 한다. 구조상에서도 이 수직동굴들은 짐승들이 한번 빠지면 헤여나올수 없게 생겼다. 짐승들이 일단 이 수직굴구역에 들어가기만 하면 빠져나오기 어렵기때문에 몰이사냥에 적합하였다.

또한 수직굴에서 나온 동물뼈화석들에 사람들의 목적의식적인 사냥활동이 반영되여있기때문이다.

동물뼈화석들은 완전한 개체가 남아있는것이 거의 없고 주로 다리뼈는 없이 몸통뼈만 남아있었다.

실례로 큰쌍코뿔이의 몸뼈 3개체분이 알려졌는데 그에 해당하여 넙적다리뼈가 6개 있어야 하겠으나 1개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슴의 몸뼈 32개체분에 해당하여 넙적다리뼈가 64개 있어야 하지만 9개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우연적인것으로 보기 어렵다. 넙적다리뼈는 다른 뼈들보다 든든하기때문에 다른 뼈들이 남아있는 조건에서는 부패변질되거나 풍화되여 없어질수 없다. 그런데 한두개도 아니고 거의 대부분이 다 없어졌다는것은 사람들의 의도적인 행위와 관련된것이라고밖에 달리 생각할수 없다.

이 동굴은 당시 깊었으므로 빠진 짐승들을 통채로 끌어내기 어려웠을것이다. 큰쌍코뿔이는 몸무게가 평균 3.6t이나 되는 큰짐승이고 큰뿔사슴도 한마리당 무게가 지어 300kg까지 나간다. 이렇게 큰짐승을 통채로 수직굴에서 끌어낸다는것은 당시로서는 엄두도 낼수 없는 일이였으며 평지에서 잡았다고 하더라도 그대로는 운반해갈수 없었을것이다. 따라서 유적을 남긴 사람들은 먹을것으로 쓰기 좋은 다리부분을 잘라 그것만을 꺼내 날라갔다고 본다.

이것은 수직굴들이 고인들의 사냥활동과 관련이 있다는것을 시사해준다.

유적에서 알려진 동물상의 종적구성을 분석해보면 당시 사람들의 주되는 사냥대상을 알수 있다.

수직굴에서 발굴된 동물뼈들중에서 큰꽃사슴, 노루, 누렁이와 같은 사슴과짐승들이 75%의 비률을 차지한다. 그가운데서도 큰꽃사슴이 차지하는 비률은 47.06%인데 화석수로 보나 마리수로 보나 첫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사냥하기 좋고 많은 수확물을 주는 사슴과짐승들을 골라서 잡았다는것을 알수 있게 한다.

이처럼 로동리유적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구석기시대중기의 몰이사냥터유적으로서 구석기시대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연구하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