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농촌녀성들의 머리에서 물동이를 영원히 내려놓게 한 수도화

 2024.3.7.

주체의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고매한 공산주의적덕성을 체현하시고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혁명을 이끄신 희세의 성인중의 대성인이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김일성동지는 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혁명의 위대한 수령,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만민이 우러르는 절세의 위인이시다.》

우리 수령님은 혁명의 탁월한 령도자이시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으며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지니시고 찬이슬, 찬바람을 다 맞으시며 인민들이 있는 나라의 방방곡곡을 찾고 또 찾으시였으며 인민들의 생활의 구석구석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인민이 살고있는 도시와 농촌 그 어디에나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사랑의 발자취가 미치지 않은곳이 없으며 인민생활의 갈피마다에 우리 수령님의 세심한 보살피심과 뜨거운 배려가 깃들어있지 않은곳이 없다.

조선의 삼석땅에도 농촌녀성들과 농민들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열화같은 사랑과 뜨거운 배려가 력력히 어리여있다.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되기 전에 사람들은 삼석마을(당시)을 거랑골이라고 불렀다.

허물어져가는 오막살이에서 토스레옷을 입고 타개죽을 먹으며 게다가 물까지 발라서 가물철에는 녀성들이 멀리 이웃동네에 가서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다 먹으면서 살던 어제날의 거랑골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살기 좋은 사회주의문화농촌으로 그 면모를 일신하는 기적같은 전변이 일어났다.

세기적으로 가난하고 몽매하게 살아온 삼석마을 농민들에게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안겨주시기 위하여 심려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배려는 농촌녀성들의 머리우에서 물동이를 영원히 내려놓게 하기 위하여 수령님께서 지도해주신 이 마을 수도화에도 뜨겁게 깃들어있다.

주체58(1969)년 봄 모내기가 마감고비에 들어선 어느날 오후였다.

삼석마을의 어느한 작업반의 논판들을 일일이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해질무렵 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언덕길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저녁해빛을 받아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문화주택마을전경을 만족하게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가지고 가는 한 녀성농장원을 보시고 차츰 어두운 안색을 지으시였다.

그 아주머니가 사라진 골목길을 지켜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면서 조용히 아주머니들이 하루종일 논판에서 힘들게 일하고도 저녁이면 또 저렇게 물동이를 이고 다녀야 하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고 하시며 못내 가슴아파하시였다.

이 고장 농민들이 물고생을 하는것이 몹시도 마음에 걸리시여 마을에 문화주택을 지어주실 때에도 제일먼저 우물자리부터 잡아주시였으며 일군들이 아무리 깊이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것을 보고드리자 다시 새로운 우물자리를 여러곳에 잡아주시고 열길이 넘어도 좋으니 꼭 우물을 파라고 하시면서 친히 이 부문의 기술자들까지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제는 또 물동이를 이고 다니는 아주머니들의 수고를 념려하시여 그토록 걱정하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자들이란 해주는 밥을 먹으니까 잘 모르는데 녀성들은 남자들과 꼭같이 일하고도 물을 길어다 밥을 짓고 빨래도 해야 하니 그들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해의 농사를 다 지은 다음 꼭 수도를 놓아주자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벼가을이 거의 끝나가고있을 때인 10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삼석마을을 찾아주시였다.

작업반의 탈곡정형을 하나하나 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도를 놓을 준비가 어느 정도 되였는가를 알아보시였다.

설계때문에 늦잡는다는것을 아시게 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무 늦잡는다고, 좀 서둘러야 하겠다고 하시며 작업반적으로 하루에 물이 얼마나 있어야 하겠는가를 몸소 타산도 해보시고 이번에는 수원지자리를 어디에 잡았는가를 물으시였다. 일군들이 신통한 자리를 찾지 못했다는것을 아시게 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왔던김에 수원지자리를 잡자고 하시며 비범한 통찰력으로 수원지자리를 잡아주시였다.

마을을 다녀가신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유능한 기술자들과 함께 수령님께서 몸소 잡아주신 자리에서 수원지를 파기 시작한 농장일군들과 농장원들은 수세기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대를 이어가면서도 찾지 못했던 샘주머니를 마침내 찾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며칠이 지나서 또다시 작업반의 수도화를 위하여 현지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원지에 가득 고인 수정같이 맑은 샘물을 보시며 못내 기뻐하시면서 하루에 나오는 물량과 작업반의 인구수, 한사람이 하루에 써야 할 물의 량, 작업반적으로 하루에 필요한 물의 량까지 몸소 계산해주시였다.

그리고 수질검사를 했는가도 알아보시고 수도를 놓을 실무적인 방도까지 친히 땅바닥에 그림까지 그려가시면서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자주 공사현장에 나오시여 걸린 문제들을 현지에서 풀어주시였으며 빨래터는 어떻게 만들며 목욕탕은 어디에 짓겠는가 하는것을 일일이 의논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세심한 지도와 극진한 배려에 의하여 삼석마을에서는 주체59(1970)년 2월 5일 력사적인 첫 수도물을 받게 되였다.

마을을 지나다가 들린 길손들에게 시원한 찬물 한그릇도 떠줄수 없어 마음쓰던 녀인들, 도랑물마저 말라버리고 가물철에는 해종일 고달프게 일한 지친 몸으로 밤마다 물동이를 이고 줄을 지어 물길으려 먼길을 가야 하던 녀인들뿐 아니라 지난날 물때문에 가슴에 옹이 진 삼석마을 사람들모두의 물에 대한 세기적인 숙원이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배려에 의하여 풀리게 되였다.

그해 11월초에 있은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촌주민들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농촌수도화를 실현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아직 수도시설이 갖추어져있지 않는 군소재지들은 물론 모든 농촌부락들에까지 수도를 놓아 농촌녀성들이 물을 이고 다니는 현상을 없애며 모든 농촌주민들이 보다 위생문화적으로 살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삼석마을 녀성들이 힘들게 이고 다니는 물동이를 보시고 온 나라 녀성들의 수고를 헤아리시였으며 바로 삼석마을의 수도화를 지도해주시면서 전국의 농촌수도화를 준비하시였다.

당대회에서 제시된 농촌수도화방침을 높이 받들고 온 나라 농촌이 부글부글 끓고있던 주체60(1971)년 5월 27일 아침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많은 일군들을 데리시고 삼석마을에 나오시여 농촌수도화를 가지고 보여주기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삼석마을의 수도화경험을 알기 쉽게 알려주시면서 일군들에게 자기 지방의 구체적인 조건에 맞게 수원지와 저수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수도화를 하면 무엇이 좋은가 하는것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시였다.

참으로 농촌의 수도화, 그것은 오랜 세월 농촌녀성들의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고있던 물동이를 영원히 내려주고 조선의 농민들이 위생문화적으로 살수 있게 한 하나의 혁명이였다.

인민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을 담은 전설같은 이런 이야기는 그이의 발자취가 어린 조선의 방방곡곡 가는곳 마다에 다 새겨져있다.

세상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많아도 조선인민에게 돌려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사랑과 같이 그처럼 숭고하고 위대한 사랑은 그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