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김광진
2022.8.8.
인류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과 장군들, 재사들로부터 평범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들 매 개인이 걸어온 각이한 인생길을 헤쳐보느라면 그것은 다 자기 한생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삶과 투쟁의 자욱이였다.
하지만 우리 수령님과 같이 인민의 행복을 평생의 소원으로 간직하고 오로지 그것을 위해 자신의 온 생애를 깡그리 다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를 동서고금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모두가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도록 하시려는것이 수령님의 평생의 소원이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44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께서 하늘처럼 여기시는 우리 인민이 훌륭한 비단을 짜면서도 지난날 《굶주리고 헐벗은》 민족으로 불리우며 이 세상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면서 살아온것이 너무도 가슴에 맺히고맺히시여 인민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비단옷을 해입히시는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간직하시고 한생을 나라의 잠업발전을 위한 길에 다바치시였다.
온도계 하나도 무척 귀하던 전후에 있은 일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4(1955)년 1월 10일 전국다수확모범농민대회를 끝마치신 후 몇몇 모범농민들을 몸가까이에 불러주시였다.
농업생산과 관련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애로되는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다 이야기하라고 말씀하시였을 때였다.
너무도 소탈하신 위대한 수령님앞에 어려움을 다 잊은 개천에서 온 한 녀성관리위원장이 불쑥 일어섰다.
그는 자기들의 조합은 잠업이 위주로 되고있는데 온도계가 없어 짐작으로 온도를 재고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녀성관리위원장은 인차 자신의 실언을 깨닫고 머리를 푹 떨구었다.
나라가 금방 재더미를 털며 일어서기 시작하는데 어데서 어떻게 온도계를 생산하여 보장한단말인가.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자신의 방에 있는 온도계를 주자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녀성관리위원장은 그 말씀에 더욱 당황해하며 어쩔바를 몰랐다.
부관이 벽에 걸린 온도계를 벗기더니 종이에 싸서 가져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도계를 드시고 따뜻한 미소를 보내시면서 녀성관리위원장에게 이 온도계를 가지고가서 누에를 잘 치라고 고무의 말씀까지 해주시였다.
다심하신 어버이의 뜨거운 사랑이 어린 온도계를 받아안고 녀성관리위원장은 뜨거운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의 방에 있던 하나밖에 없는 온도계가 누에치는 농민들의 손에 가닿게 되였다.
온도계가 말할줄 안다면 틀림없이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보좌해드리던 영예로운 자기의 《사명》이 달라졌다고 불평을 부렸을것이다.
참으로 자신께서 리용하시던 온도계마저 나라의 잠업발전을 위하여 돌려주신 위대한 수령님은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