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우수한 문화적재부는 우리 인민의 뛰여난 슬기와 재능을 말하여주고있습니다.》 (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우수한 문화적재부들가운데는 고구려시기에 축조된 대성산성에 있는 못들도 있다.
평양시 대성구역에 있는 대성산성의 못들은 산성방어에 리용된 매우 중요한 시설이였다.
중세시기 성싸움은 성문을 닫고 하기때문에 싸움을 오래동안 하자면 성안에 군사와 무기, 군량도 많아야 하지만 물이 많이 있어야 하였다.
성방어전이 벌어지는 경우 성안에는 성을 지키는 군사들만이 아니라 전란을 피하여 들어온 인민들 그리고 수많은 군마들과 집짐승들이 있게 되므로 음료수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된다.
645년 고구려-당전쟁시기 료동성전투와 관련한 《삼국사기》의 기사를 보면 료동성에는 수비군사와 주민 도합 6만여명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사람이 하루에 1L정도의 물을 마신다고 가정하면 료동성안에 있던 고구려군민들이 소비하는 음료수만 하여도 하루에 약 6만L(약 60t)의 깨끗한 물이 요구되였음을 알수 있다.
물은 음료수로뿐 아니라 중세시기 성싸움에서 중요한 방어수단으로도 리용되였다. 다시말하여 성벽으로 기여오르는 적들에게 끊는 물을 퍼부어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기도 하였고 장대나 루각, 성안의 건물들에 불이 붙는 경우 소화제로도 절실히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당시 성방어전에서 물은 성의 방어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되였다.
당시 아시아와 유럽지역에 있던 여러 나라들의 성은 대부분 평지에 위치한 도시를 둘러막은 평지성이 기본이였다. 이러한 도시성들에서는 주위에 흐르는 강을 물원천으로 리용하였으므로 물문제가 크게 제기되지 않았지만 고구려의 산성인 경우 이것은 절실한 문제로 나섰다.
고구려사람들은 대성산성을 쌓으면서 물원천이 적은 산지대의 특성에 맞게 물보장체계를 정연하게 세워 많은 량의 깨끗한 물을 원만히 보장하였다.
대성산성의 물보장체계는 물원천과 물잡이구조물, 물공급관로로 이루어져있었다.
고구려사람들은 땅속의 물을 다 찾아냈으며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까지 모두 잡아서 유효하게 리용하였다.
대성산성안에서 알려진 7개의 샘과 《잉어못》, 《사슴못》, 《구룡못》, 《장수못》과 같이 사철마르지 않는 못들은 고구려사람들이 물량이 풍부하고 수질이 좋은 땅속물을 적극 리용하였다는것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대성산성은 여러개의 골짜기를 끼고있으므로 성안에는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시내물이 있었다. 그러므로 산성안에서는 이런 시내물도 물원천으로 리용할수 있었다.
물잡이구조물은 물원천의 물을 필요한 량만큼 확보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구조물들로서 대성산성안에서는 물잡이구조물들인 못이 170개나 알려졌다.
대성산성의 못들은 대부분이 네모난 모양이고 일부 둥근것과 3각형의 못들도 있었다.
못들은 돌을 성돌과 같이 다듬어서 둘레를 규모있고 견고하게 쌓았으며 바닥은 진흙을 다진 우에 자갈을 일매지게 깔아서 언제나 맑은 물이 고여있게 하였다. 또한 돌을 여러겹으로 쌓아 못뚝을 튼튼히 하고 그 밖으로 도랑을 만들어 장마때에 물이 갑자기 불어나도 어지러운 물이 못으로 곧장 흘러들거나 못이 메꾸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못의 모서리나 못밖의 가까이에 박우물을 만들고 그 사이에는 깨끗한 돌들을 쌓아서 못의 물이 려과되여 박우물에 슴새여들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언제나 깨끗한 물을 마실수 있게 하였다.
대성산성안의 물원천과 물잡이구조물들은 모두 물공급관로인 물길들로 이어져있었다.
대성산성안에서 알려진 170개의 못들은 일정한 구역들로 구분되여 떼를 이루면서 물길들로 서로 련결되여있었다. 그리하여 원천지의 물을 차례로 받아서 자기 못에 채우고는 다음 못에 넘기는 못떼를 이루고있었다.
물길들은 모두 땅속에 돌로 축조되였는데 그안에는 큰 돌과 자갈을 가득 채워넣어 물이 흘러내리면서 깨끗이 려과되도록 하였다.
이처럼 대성산성안에는 땅속과 땅겉면에 있는 물원천을 모두 리용하기 위한 170개의 못들이 땅속물길로 련결되여 정연한 물보장체계를 이루고있었다.
대성산성에 서있었던 물보장체계는 당시로써는 매우 우수한 물보장체계였다.
그 우수성은 우선 대성산성의 거의 모든 못들이 물정화기능을 겸하도록 설계된데서 잘 나타난다.
우선 물길은 돌로 축조되고 그 안에는 큰돌과 자갈들이 있어 물을 1차로 려과하도록 되여있었다. 또한 못의 입구에는 잔돌을 쌓아놓아 못으로 흘러드는 물이 다시한번 려과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산성안의 거의 모든 못들이 못뚝을 가지고있어 물이 못의 가장자리에 있는 물도랑을 따라 흐르면서 못뚝을 거쳐 못의 중심부와 주변의 박우물로 스며들면서 최종적으로 려과되도록 하였다. 돌과 모래를 리용한 물려과방법은 현대에도 많은 지역들에서 리용되고있다.
그 우수성은 다음으로 못들의 사명과 용도에 맞게 음료수의 위생안정성과 공급량의 풍부성, 물보장시설물의 리용과 관리운영의 편리성, 안전성과 견고성이 최대로 보장되도록 설계시공된데서도 잘 나타난다.
대성산성안에 있는 170개에 달하는 못들의 구조는 물려과기능을 겸하도록 설계되였고 리용하기 편리하게 병영가까이나 성벽을 따라 배치되여있었다.
또한 관리운영에 편리하도록 못둘레에 2중, 3중으로 물도랑을 파놓아 장마때 흙물이 많이 흘러들어도 못뚝도랑을 돌아서 무넘이도랑으로 빠지도록 하였다. 이렇게 되면 못은 메꾸어지지 않고 물에 씻겨내려온 흙은 못도랑에 쌓이게 되므로 흘러내려온 흙을 파내는것도 쉽게 된다. 이것은 못이 평지가 아니라 우묵한 곳에 있는 지형조건과 해마다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는 우리 나라 기상조건을 잘 고려한데서 나온 형식으로서 고구려인민들이 못을 만드는데서 창안한 독특한 수법이였다.
그리고 성돌과 같은 규격화된 돌로 못의 벽체를 성벽을 축조하듯이 든든하게 쌓아 천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성안의 못들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그 우수성은 또한 산성안의 물보장체계가 자연흐름식으로 설계된데서도 잘 나타난다.
고구려인민들은 물원천이 부족한 산지대의 특성에 맞게 성안의 높은 곳에서 샘줄기를 찾아내여 샘물잡이구조물을 만들고 넘어나는 물을 땅속물길을 통하여 아래에 있는 못들에 차례로 넘기는 방식으로 중력을 리용한 자연흐름식의 물보장체계를 형성하였다.
이것은 고구려인민들이 성안의 물원천을 최대로 확보하여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고심한 결과이고 계통적으로 축적된 환경조절기술의 산물로서 성의 방어력을 최대로 높이면서도 성안의 풍치조성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이처럼 높은 애국심을 간직하고 뛰여난 슬기와 재능을 지닌 고구려인민들은 방어요새인 산성을 튼튼히 쌓고 무기와 군량과 함께 물원천도 넉넉히 확보하였으므로 아무리 포악한 침략자들이 달려들어 장기전을 하게 된다고 하여도 그 어떤 포위공격에도 끄떡하지 않고 성을 지켜냈으며 끝끝내 승리하였던것이다.
대성산성의 못은 그 우수성으로 하여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전하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