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숭고한 혁명적동지애로 조선혁명을 백승의 한길로 이끄신 절세의 위인이시다

 2017.9.1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의 성스러운 혁명력사는 동지애로 시작되고 동지애로 승리하여 온 동지애의 력사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에 혁명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시였다.

세계혁명운동사에는 혁명을 시작할 때 총을 먼저 얻거나 돈을 먼저 얻는것으로 첫발을 뗀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 수령님처럼 혁명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신 분은 력사에 없다.

일찌기 아버님으로부터 동지를 위해 죽을수 있는 사람만이 참다운 동지를 얻을수 있다는 동지획득에 관한 고귀한 사상을 유산으로 넘겨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동지를 얻으시고 그 다음에 무기를 얻으시였다.

혁명의 초행길에 그 동지 한사람, 한사람을 얻기 위해 쏟아붓고 기울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열과 정은 실로 끝이 없다.

동지 한사람을 얻기 위하여 수천리길도 마다하지 않으시였고 때로는 사람들이 꺼려하는 병을 앓고있는 환자의 곁에서 한밤을 지새우시기도 하시였다. 그 뜨거운 인간애에 김혁, 차광수, 최창걸, 강병선, 리제우, 김원우, 최일천 등 열혈의 청년투사들이 수령님의 혁명동지, 혁명전사가 되였다.

우리 혁명의 시작과 더불어 잊을수 없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귀중한 글발이 있다.

《잊지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맹세 이역만리 오두막에서 1930.6.20 너는 김혁, 나는 성주》

김혁이라는 그 이름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충정을 기초로 하는 그의 혁명가로서, 동지로서의 인격전체에 대한 상징이였다.

너는 김혁, 나는 성주. 위대한 수령님의 그 불멸의 글발은 김혁은 영원히 변함없이 자신께서 알고 확신하시는대로의 동지 김혁이며 자신 역시 영원히 변함없이 김혁이 알고 확신하는 동지 성주라는 불변의 언약, 바로 이것이 우리 수령님의 혁명적동지애였고 혁명활동의 첫시작이였다.

바로 이러한 우리 수령님의 혁명적동지애는 조선혁명의 시작도, 앞날도 사랑과 결합된 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가장 아름다운것으로 될수 있게 하였으며 바로 이러한 조선혁명의 출발점이면서도 원동력인 혁명적동지애의 바탕에는 수령님의 위대한 인간애가 있었다.

일찌기 어린시절부터 불쌍한 사람들과 동무들을 끝없이 동정하고 뜨겁게 사랑하는것은 어버이수령님의 특이한 성품이였다.

동무들에게 늘 무엇인가 주시려는 열망과 그것을 실현한 기쁨이 그 시절 수령님께서 간직하신 가장 큰 즐거움이였고 동무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동무들의 울음을 웃음으로 바꾸시려는 간절한 욕망은 어린시절 우리 수령님의 생활의 목적이였으며 전부이시였다.

하기에 수령님의 동무들은 늘 그이의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으며 수령님을 중심으로 그이의 지향과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그이의 동지가 되려는 간절한 소원을 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초기혁명활동시기 무송의 대부호의 아들이였던 장울화도 결국은 수령님의 그 인간애에 반하여 공산주의투사가 되였다.

무송제1소학교를 졸업하고 심양사범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던 장울화는 아버님의 뒤를 이어 독립운동에 나서겠다고 말씀하시는 수령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네가 동행하지 않는 심양행이란건 있을수 없어. 난 말이지 일평생 네곁에 있고싶어. 네가 상급학교에 가면 나도 상급학교에 가고 네가 공산당이 되면 나도 공산당이 되구…》라고 위대한 수령님의 결심에 자기의 결심을 맞추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공산당이 되면 잡혀갈수도 있고 죽을수도 있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야기에 장울화는 《그런건 겁나지도 않아. 너하구만 같이 있는다면 감옥에 가도 좋고 죽어도 좋아》라고 단호히 선언하였다.

후날 장울화는 위대한 수령님의 안전을 위해 자결의 길을 택한 열혈의 투사로 자라났다.

우리 혁명의 첫 대오는 사실상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먼저 알고 위대한 수령님의 동지적사랑의 품에 안겨 그이의 사상을 자기의 사상으로, 그이의 뜻을 자기들의 뜻으로 간주한 명실공히 혁명적동지애의 결정체였다.

그 대오속에는 맑스주의를 신봉하는 사람, 민족주의를 따르는 사람, 그 어떤 자기 식의 정견도 없는 사람, 국내와 일본, 연해주, 만주각지에서 방황하던 사람들, 독립군에 관계했던 청년들, 외국에서 고학을 하던 청년들, 레닌의 숭배자, 손문의 숭배자, 루쏘의 숭배자 등 실로 세계관에서나 혁명에 대한 태도에서나 사회정치생활경위에서나 천태만상인 청년들이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고결한 인간상에 매혹이 되여 그이의 혁명동지가 되였다.

이것이 우리 수령님의 혁명활동의 시작이였고 조선혁명의 출발점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시였을뿐아니라 그가 누구든 일단 동지적관계를 맺으시면 그의 운명과 미래를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해주시였으며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혁명적동지애는 동지들사이의 믿음이고 사랑이며 나이나 사회적지위, 혈육에 관계없이 생사운명을 같이한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기신 《잊지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맹세 이역만리 오두막에서 1930.6.20 너는 김혁, 나는 성주》라는 이 불멸의 글발은 서로의 믿음을 변치말자는 언약이였고 네가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너도 없다는 생사운명 공동결정체라는 확언이기도 하였다.

우리 수령님에게 있어서 혁명동지들에 대한 믿음은 필요한 때에만 주는 그런 믿음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에게 있어서 혁명동지들에 대한 믿음은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관통하는 절대적인것이였다.

동지는 곧 제2의 나이며 나는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수령님의 동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시였다. 이러한 동지에 대한 믿음을 지니시고 반《민생단》투쟁이 극좌적으로 벌어지던 시기 한몸이 그대로 방패가 되시고 불이 되시여 동지들에게 날아오는 총알도 막아주시고 오해와 불신의 얼음덩어리도 녹여주시였다.

해방후 종파분자들이 오랜 인테리들의 출신문제를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위조편지까지 만들어 그들을 모해하고 따돌리려고 할 때에도 견결한 믿음으로 그들을 보호해주신분이 다름아닌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비록 죽을 과오를 범하였다고 하여도 진심으로 자기 과오를 뉘우치고 새로운 결심을 다지는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로 버릴수 없고 버리지 않겠다는것이 혁명동지들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확고한 믿음이였다.

1970년대초 총련의 제1부의장이였던 김병식동지가 사업도중 엄중한 과오를 범하여 총련사업에 막대한 후과를 끼친적이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련건설의 첫 시기와 주체사상의 대외선전을 위하여 밤잠을 자지 않고 뛰여다니던 그의 애국충정을 잊을수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인생의 새 출발을 하도록 조국으로 불러주시고 위축될세라 그의 3명의 자식들을 직접 맡아 키우시였으며 그의 집도 저택맞은켠에 잡아주시고 그를 위하여 새롭게 내온 김일성고급당학교 특설반에서 배우도록 하는 최상최대의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속에서 그는 자기 과오를 깨끗이 씻고 조선사회민주당 당수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주석으로 생의 마지막까지 사업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단 동지관계를 맺으시면 나이와 사회적지위, 혈육에 관계없이 생사운명을 함께 하시였다.

그 간고성에서 력사에 류례없는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승리는 생사운명을 함께 한 혁명적동지애의 위대한 승리였다.

항일무장투쟁의 축도라고 말할수 있는 력사적인 고난의 행군이 한창 진행되던 1939년 1월 어느날이였다.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검질기게 추격하는 적과의 여러차례의 전투과정에 쓰러진 김정덕동무의 심장은 점점 박동을 거두고있었다. 이때 서둘러 벗으신 자신의 외투우에 그를 눕히시고 손과 발을 주물러주시던 수령님께서는 주머니에서 닦은 콩을 찾아 그것을 보드랍게 가루를 내여 그 대원의 입에 넣어주시였다. 일어나지 못하고있는 대원의 머리를 뜨겁게 감싸쥐시고 한입 넣어주시고는 팔과 다리를 주무르시고, 또 봏으시여 다시 넣어주시고 또다시 그의 가슴과 배를 주물러주시기를 그 몇번, 뵈옵기에는 너무도 격하고 가슴뜨거운 수령님의 그 사랑, 그 지성은 말그대로 불사약이 되고 기적의 힘이 되여 마침내 그 대원은 숨을 크게 내쉬며 조용히 눈을 떴다. 위대한 수령님의 외투를 깔고 그이의 품에 안겨있다는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대원은 당황하여 몸을 일으켜세우려고 하였고 그러는 그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 품에 꼭 껴안으시였다. 눈물을 흘리는 나어린 대원을 품에 안으신 수령님의 안광에는 뜨거운것이 흘렀고 위대한 수령님과 정덕동무를 부둥켜안은 대원들의 눈에서도 기쁨의 눈물, 행복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실로 그것은 네가 없으면 나도 없으며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운명공동체, 혼연일체의 위대한 화폭이였다.

맑스와 엥겔스, 레닌과 쓰딸린에게도 혁명동지가 있었고 동지애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우리 수령님처럼 혼연일체라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남기지는 못하였다.

우리 수령님에게 있어서 이러한 혁명적동지애는 항일혁명투쟁의 전과정은 말할것도 없고 국가수반이라는 최고지위에 계시던 해방직후부터 생의 마지막날까지 변함없는것이였다.

생의 마지막시기에 하신 말씀도 혁명적동지애의 말씀이였고 귀중히 보관하신것도 혁명적동지애가 함축된 한장의 사진이였다.

이것은 동지애로 시작된 혁명을 동지애로 이어가라고 남기신 우리 수령님의 귀중한 유언이였고 유산이였다.

력사에 전무후무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적동지애는 년대와 년대를 이어가며 우리 혁명의 영원한 원동력으로 되고있다.

혁명의 개척기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김혁동지에게 남기신 《잊지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맹세 이역만리 오두막에서 1930.6.20 너는 김혁, 나는 성주》라는 불멸의 글발은 주체혁명위업이 대를 이어 계속되던 새로운 력사적시기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허담동지에게 사랑을 담아 써주신 《너는 허담, 충실한 당의 전사 나는 정일 1989.2.7 김정일이라는 위대한 글발로 이어졌으며 오늘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조국을 위한 길에서 총대와 함께 영원히 변함없을 너는 성익, 나는 정은 2005.6.27》이라는 글발로 이어지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한생의 전부였던 혁명적동지애는 조선혁명에서 사랑과 의리로 결합된 천만의 결사옹위대오를 낳았으며 오늘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와 팔을 끼고 어깨를 겯고 나아가는 이 세상 그 누구도 깨뜨릴수 없는 일심단결의 대오를 낳았다.

우리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두리에 사랑과 의리로 굳게 뭉쳐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한 혁명의 한길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바쳐나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