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포연속에서 한 지식인에게 차려주신 생일상

 2020.7.8.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뜨거운 인정미와 한없이 검박하고 소탈한 품성을 지니시고 인민들을 따뜻이 대해주고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은 적들앞에서는 백두산호랑이와 같았지만 전사들과 인민들앞에서는 더없이 친근하고 다정한 어버이이시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들과 똑같이 조밥도 달게 드시며 한없이 검소하게 생활하시였지만 적들과의 판가리결전을 벌려야 했던 그 시기 생신날도 따로없이 지내시면서도 혁명동지들을 위하여서는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부어주시였다.

주체40(1951)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당시 내각 문화선전상으로 사업하고있던 허정숙동지를 부르시여 그의 부친인 허헌선생의 생신날이 며칠 안남았다고 하시면서 마음쓰시였다.

허헌선생은 해방전 일제의 악독한 식민지통치를 반대하여 법정에서 애국자들을 옹호하여나섰으며 교육사업에도 기여하였던 량심적인 지식인이였다.

허정숙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 전쟁이 한창인 때 맞이하게 되는 아버지의 생일이여서 간단히 차리려고 했던 속생각을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왜 그것을 진작 말하지 않았는가고 가볍게 질책하시고 나서 선생님은 60돐생일도 못 쇠지 않았는가고, 금년에 선생님의 나이가 예순여섯이니 생일을 꼭 차리도록 하자고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는 허정숙동지의 눈굽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그러나 어버이수령님께 실려있던 중하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 허정숙동지는 그이께 전쟁시기인데 조용히 차리겠다고 다시금 말씀드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전쟁이 한창이라고 해서 못할것이 무엇인가고, 더우기 선생님이 년로하기때문에 꼭 차려드려야 한다고 하시며 선생님이 한평생 투쟁과 고생속에서 살아오셨는데 환갑도 못 차려드려서야 되겠는가고, 자신께서는 꼭 환갑을 차려드려야 후에 유감이 없을것 같다고, 꼭 차리도록 하자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장소를 지적해주시면서 저녁시간에 손님들을 청하자고, 준비는 내각사무국장에게 과업을 주어 선생님이 만족해하도록 잘 차려주자고, 생일날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그날 만일 전선에서 전투정황이 긴장하지 않으면 자신께서도 꼭 가시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허정숙동지는 끝내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그러는 그를 바라보시며 준비를 잘하라고 당부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마도 아버지도 기뻐하실거라고, 주저하지 말고 잘 차려서 아버지를 잘 위로해드리도록 하자고, 환갑날 올수 있는 동무들은 다 오게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그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내각사무국의 일군들이 직접 그의 생일을 잘 준비하도록 할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였으며 전시환경에서 구하기 힘든 귀한 식료품들과 물자들도 몸소 보내주시였다. 이렇듯 어버이수령님의 세심한 보살피심과 크나큰 은정에 의하여 허헌선생의 생일연은 손색없이 준비되였다.

그런데 그때 전선형편이 너무도 긴장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최고사령부를 떠날수 없으시였다.

허헌선생의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을 부르시고 나서 동무가 나를 대신하여 편지와 선물을 가지고가서 허헌선생의 생일을 축하하고 와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렇게 되여 그 일군은 위대한 수령님의 축하편지와 선물을 가지고 생일연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추어 연회장으로 갔다. 연회가 진행되였던 민주선전실안은 허헌선생을 축하하러 온 당과 국가의 많은 일군들과 인민군장병들로 붐비였는데 그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준엄한 전쟁시기에 허헌선생을 위해 그렇듯 성대한 연회를 마련해주신데 대해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 일군은 허헌선생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친서와 선물을 정중히 전하고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하여 댁에서 만찬회를 한번 조직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고 말하였다.

나라를 위해 별로 큰일도 한것이 없는 자기를 그렇듯 높이 신임하시며 전쟁시기에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주신것만도 분에 넘치는 일인데 자신께서 참가하지 못하여 섭섭해할세라 마음쓰시며 또다시 베풀어주시는 크나큰 은정에 허헌선생의 감격은 이루 헤아릴수 없이 컸다.

그날밤 허헌선생은 축하의 인사를 보내는 사람들의 손을 뜨겁게 잡으며 장군님께서 이렇게 차려주신것이라고, 황송할뿐이라고 말하였다.

연회에 참가하였던 모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버이수령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정에 감동을 금치 못하였으며 생일연은 뜻깊게 진행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최고사령부에서 또다시 허헌선생의 생일을 축하하여 만찬회를 조직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허헌선생에게 몸소 축배잔을 부어주시면서 그의 생일을 축하하여 대를 두고 전해갈 뜨거운 말씀도 해주시였다.

그날 허헌선생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자기를 위해 또다시 만찬회를 마련해주신데 대해 감격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늙은 몸이지만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 맡은 일을 더 잘해나갈 불타는 결의를 다지였다.

그후 허헌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드는 길에 언제나 한몸 서슴없이 내대였으며 김일성종합대학 새 학년도 개교식에 참가하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가던 도중 대령강을 건느다가 뜻밖의 사고로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를 잃으신것이 너무도 가슴아프시여 그의 시신을 꼭 찾도록 거듭되는 국가적비상조치를 취하시였으며 수많은 인민군장병들을 동원시켜주시였다. 그리고 그의 시신을 찾았을 때에는 장례를 잘 치르도록 해주시였으며 여러차례에 걸쳐 허헌선생의 공적을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동지에 대한 한없는 믿음, 자신보다도 동지들을 더 뜨겁게 사랑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의 인민군용사들은 고지마다에서 원쑤격멸의 뢰성을 높이 울리며 원쑤를 쳐부실수 있었으며 바로 그 사랑과 믿음의 나날들이 위대한 전승의 력사로 빛나고있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