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3.8탁아소에 새겨진 백두산녀장군의 빛나는 자욱

 2019.3.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수령님의 새 민주조선건설로선을 받드시고 수령님과 함께 전국각지의 공장과 농촌, 어촌, 학교에로 쉼없이 발걸음을 옮기시였으며 때로는 수령님께서 현지지도하실 단위들에 먼저 나가시여 그곳 실태를 료해하기도 하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3권 292페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어린이보육기관인 3.8탁아소에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빛나는 자욱이 아로새겨져있다.

주체35(1946)년 6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맹중앙위원회 일군들을 찾으시고 탁아소를 꾸리는 사업의 중요성에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께서 가지고오신 신문을 펼쳐드시며 여기에 실린 사동탄광 녀맹에 대한 소개기사와 사진을 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신문으로 말하면 주체35(1946)년 6월 16일부였는데 2면에 《박토 개간하는 사동녀성동맹》이라는 표제를 단 소개 기사와 함께 갓난아이를 둘쳐업고 밭을 일구는 녀맹원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편집되여있었다.

일군들이 보았다고 말씀드리자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러면 기사와 사진을 본 소감이 어떤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모두들 생각에 잠겨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생각을 더듬고난 녀맹일군들은 제나름의 느낌을 두서없이 말씀드렸다.

어떤 동무는 사동탄광 녀맹에서처럼 모든 녀맹조직들이 녀맹원들을 잘 발동시키면 숱한 땅을 얻을수 있다고 했고 또 누구는 그들이 갓난아이까지 업고 나와 일하는데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다.

일군들이 올리는 말을 주의깊게 듣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께서는 오늘 아침 이 신문을 받아보시고 안색을 몹시 흐리시면서 녀성들이 무더운 여름철에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일하자니 고생인들 오죽하겠는가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하루빨리 탁아소를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일군들을 둘러보시고나서 사실 어린이들을 키우고있는 우리 녀맹일군들자신도 이 사진을 범상히 대하고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이 사진을 보시면서 어린이들을 키우고있는 녀성들의 부담을 놓고 심려하고계신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이어 김정숙동지께서는 탁아소를 빨리 꾸려야 할 필요성과 그 의의에 대하여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그제야 일군들 모두는 탁아소를 조직운영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하는것을 깊이 깨닫게 되였다. 이때부터 탁아소를 꾸리는 사업이 추진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탁아소를 꾸리는 사업을 세심히 이끌어주시였다.

주체36(1947)년 1월 10일 일군들로부터 탁아소를 꾸릴만한 건물을 찾아냈다는 보고를 받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곧 현지에 나가시였다. 당시 중구에 자리잡은 2층벽돌집을 찾으시여 건물을 돌아보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잘 꾸리면 탁아소로 쓸수 있겠다고 하시면서 안으로 들어가시여 1층과 2층의 매 방들을 일일이 돌아보시였다. 그 집은 얼마전까지 음악학교 교사로 쓰던 건물인데 내부가 몹시 어수선하였다. 한 일군이 이 집을 탁아소로 꾸리자면 품이 많이 들겠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탁아소, 유치원을 내올데 대한 과업을 주신지 벌써 몇달이 지났는데 조건이 갖추어질 때 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리의 힘으로 탁아소를 꾸리기 위한 투쟁을 벌리자고 하시며 자신께서도 힘자라는껏 도와주겠으니 한번 잘 꾸려보라고 고무해주시였다.

그날밤 김정숙동지께서는 책상우에 커다란 종이를 펴놓으시고 건물을 돌아보실 때 무엇인가 써넣군 하시던 수첩을 펼쳐보시며 여러가지 색으로 도안을 그리시였다가는 지우시고 지웠다가는 다시 그리시면서 자정이 넘도록 고심하시였다. 그것은 그 2층건물에 어린이들의 잠자는 방과 식당, 젖먹이는 방, 유희실, 의료실, 탈의실, 목욕탕, 취사장, 창고, 사무실과 같은것을 어떻게 배치하며 매방에 어떤 설비를 놓아야 하는가 하는것까지 구체적으로 표시한 탁아소 설계도안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월 12일 그 도안을 가지고 다시 현지에 나가 일군들에게 방배치와 꾸림새에 대하여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고 탁아소에서 일할 사람들을 빨리 선발배치하며 의사가 적은 조건에서 의료실에는 간호원을 두고 병원에 담당의사를 정해놓고 수시로 검진도 하고 치료도 하도록 할데 대해서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탁아소꾸리는 사업이 기본적으로 끝나가던 주체36(1947)년 5월 어느날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직 갖추지 못한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시고 전우들이 선물로 드렸던 천으로 여러채의 이불을 손수 만드시고 재봉기와 취사도구, 축음기까지 마련하여 탁아소에 보내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애기어머니들의 아침출근과 저녁퇴근에 편리하게 탁아소의 일과를 제정해주시였으며 아이들의 옷장 매 문들마다에는 아직 글을 잘 모르는 아이들이 자기 옷장을 쉽게 찾을수 있게 비행기며 자동차, 땅크, 사과, 도마도 등 여러가지 그림을 붙이도록 하시였다.

탁아소가 꾸려져 어린이들을 받아 보육하기 시작한지 얼마후인 그해 7월 어느날 김정숙동지께서는 또다시 탁아소를 찾으시였다.

이날 김정숙동지께서는 탁아소에 아직 간판을 붙이지 못했는데 탁아소의 이름을 지어주시면 좋겠다는 한 일군의 청을 받으시였다. 생각에 잠기시였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성들의 국제적명절인 3.8절을 의미하여 3.8탁아소라고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참다운 인민적인 어린이보육교양의 력사는 이렇게 김정숙동지께서 꾸려주신 3.8탁아소를 본보기로 하여 시작되였다.

오늘 우리 인민들은 김정숙동지에 대한 무한한 경모의 마음을 담아 그날의 3.8탁아소를 김정숙탁아소라고 부르고있다.

주체37(1948)년 9월 어느날 3.8탁아소를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탁아소를 꾸리느라고 수고하였다고 하시면서 탁아소의 일과시간을 잘 제정한데 대해서 치하하시고 옷장에 그려 붙인 그림들을 보시며 어린이들의 지적발전수준에 맞게 생각을 아주 잘했다고, 이렇게 하면 아이들의 정서를 키워주는데도 도움이 될것이라고 만족해하시였다.

기뻐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탁아소를 잘 꾸리기 위하여 바치신 김정숙동지의 로고를 가슴뜨거이 돌이켜보았다.

탁아소를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살나는 아이들이 재롱을 부리며 노는 모습을 보시다가 아이들이 걷다가 넘어지거나 기여다니다가 무릎이라도 상하면 어떻게 하겠는가고 걱정하시며 수행한 일군들에게 당중앙위원회청사에 있는 주단을 가져다 아이들의 방에 펴주어야 하겠다고 교시하시였다.

탁아소를 다 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3.8탁아소를 본보기로 하여 앞으로 전국에 탁아소, 유치원을 더 많이 내오며 그에 대한 관리운영사업과 후방공급사업을 잘할데 대한 교시를 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후에도 이 탁아소를 여러차례 찾으시여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시였다.

주체37(1948)년 2월 15일 평양에서는 우리 나라의 첫 어린이보육기관인 3.8탁아소 개소식이 진행되였다.

그후 전국 각지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수많은 탁아소들이 나오게 되였다.

그리하여 지난날 탁아소라는 말조차 모르고 자기 아들딸들을 뙤약볕아래 논밭머리에 눕혀두거나 땀흐르는 등에 업고 뼈빠지게 키우던 우리 녀성들이 이제는 국가탁아소에 맡기고 마음껏 일할수 있게 되였으며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당과 국가의 보호속에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였다.

해방후 어린이보육교양사업의 강화발전에 쌓으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불멸의 업적은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숭고한 후대관에 떠받들려 이땅우에 펼쳐진 어린이보육교양의 새 력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