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민족문화유산 《발해글자》

 2021.5.3.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서 7세기말부터 10세기초에 이르는 시기에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김정일전집》 제2권 163페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교시하신바와 같이 발해는 고구려유민들에 의하여 세워진 주권국가로서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발전시켰으며 외적의 거듭되는 침입을 막고 나라와 겨레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발해에서는 기본글자로 한자를 썼으며 고구려시기의 리두도 계승하여 썼다. 또한 한자, 한문과는 다른 고유의 발해글자를 썼으며 다른 나라에 보내는 문서에서까지 리용하였다.

《수당연의》, 《옥진총담》과 같은 중국의 력사책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력사기록들이 올라있다.

…732년에 발해의 대장 장문휴가 나라의 령을 받고 당나라의 동주(산동성 봉래현 남쪽)를 공격하고 당나라에 문서를 보냈는데 당나라에서는 무슨 글인지 해석하지 못하여 안타까와하였다. 마침 이름난 문인인 리태백이만이 그 글을 읽을수 있어서 발해에 회답편지를 보낼수 있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당나라에서는 지금의 대학 비슷한 교육기관이였던 태학관에 발해글자의 과목을 두고 리태백이더러 강의를 하게 하였다.…

이 기록을 통하여 발해에는 한자를 아는 사람들은 전혀 알수 없는 한자와 구별되는 글자가 있었으며 그 글자가 당나라와 같은 다른 나라에 보내는 국가문서에서도 씌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발해글자로 보아온 유물자료들이 적지 않다.

그것들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것이 발해시기의 기와에 새겨진 글자흔적이다. 처음것으로는 1920년대 중국동북지방의 발해동경성기와의 글자흔적이다. 1980년대초까지 발해시기의 기와, 구리솥, 구리대야 등에서 250여종에 이르는 각이한 형태의 한자와는 다른 글자들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학자들은 200여개 넘는 발해글자들을 찾아내게 되였다.

그가운데서 중국의 한 력사학자가 쓴 책 《발해국지장편》(권20)에 소개된 발해글자 몇자를 보면 다음과 같다.

발해글자

이 글자의 형태들을 분석하여보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실을 알수 있다.

첫째로, 이 글자는 전서체나 예서체와 같은 한자의 어떤 글씨체도 아니며 한자와 비슷한 모양의 네모형을 가진 독특한 글자이다.

둘째로, 이 글자의 구조를 보면 몇개의 기본글자를 어울러 쓴것도 있고 기본글자에 일정한 획을 더하여 쓴것도 있다. 그리고 그 수는 뜻글자인 한자처럼 많지 않다. 따라서 한자의 일부 획들을 따거나 줄이면서 서로 다시 결합하기도 하여 만든 소리마디글자일수 있다.

셋째로, 리두의 한 형태인 구결글자를 만드는 원리와 방식에 따라 만든 글자일수 있다.

발해글자의 유물로는 1950년대에 로씨야 연해주지방 우쑤리스끄시 남쪽 쑤이빈지구의 옛 성터에서 발견된 돌판대기의 글자도 있다.

로씨야의 어떤 학자들은 이 글자가 확실히 발해글자이며 당시에 씌였던 이웃나라 글자들과의 련관도 있다고 하였다.

발해글자의 제자원리, 사용방법은 세나라시기의 리두식서사방식에 기초하였다고 볼수 있다.

《해동성국》으로 이름떨친 발해국의 기본주민은 고구려유민이였다. 고구려시기부터 독창적인 리두서사생활을 해온 이 지역의 우리 선조들은 고구려를 계승하여온 발해시기에도 한자와 구별되는 자기식의 글자를 탐구하여나갔던것이다.

그리하여 당시에 널리 알려진 한자를 쓰면서도 한자의 자형을 참고하고 리두식방법을 적용하여 독특한 자기 글자 발해글자를 만들어썼던것이다.

이 발해글자의 만든 원리와 방법 등은 10~12세기경에 거란글자를 비롯한 주변의 소수민족글자들에 영향을 주었다고 학자들은 보고있다.

또 다른 발해시기의 고유글자로는 고고학자들이 주체80(1991)년에 청진시 청암구역 부거리에서 발굴한 발해시기의 질그릇에 반영된 글자들을 들수 있다.

이 글자들은 그 형태가 아주 명백한 9자의 글자들이다.

이 글자들의 모습을 분석하여보면 한자나 그 어떤 다른 나라 옛 글자들과 비슷한데가 전혀 없다. 물론 옛 신지글자들과 통하는 글자들이다.

청진시 청암구역 부거리에서 발굴된 고유글자가 새겨진 발해시기의 젖갈색단지

청진시 청암구역 부거리에서 발굴된 고유글자가 새겨진 발해시기의 젖갈색단지

(왼쪽: 내려다 본 모습, 오른쪽: 옆으로 본 모습, 아래부분이 아구리쪽임)

이 자료들은 발해시기에도 독특한 고유글자들이 모색되고 부분적으로 쓰인적이 있었다는것을 증시해준다.

고대시기부터 신지글자를 비롯한 민족고유글자를 창조하여 서사생활에 리용하여온 우리 선조들은 중세시기에도 리두글자나 발해글자와 같은 고유글자들을 만들어 써왔다.

발해글자는 우리 선조들이 세나라시기에는 물론 발해, 후기신라시기에도 우리 말에 맞으며 민족의 정서와 기호에 맞는 글자를 만들어쓰기 위하여 부단히 탐구하고 모색하여왔다는것을 립증해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