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동녕현성에 남기신 동지적의리의 숭고한 이야기

 2024.4.30.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20세기의 가장 걸출한 수령이시며 절세의 위인이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적의리를 전하는 하많은 이야기들중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 사경에 처한 반일부대 지휘관을 구출하시여 공산주의자들의 진정한 동지적의리란 어떤것인가를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신 이야기도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2(1933)년 9월초 오의성, 사충항, 채세영, 리삼협을 비롯한 반일부대의 지휘관들과 함께 동녕현성전투를 위한 작전계획을 세우시였다.

동녕현성전투는 주체22(1933)년 9월 6일 밤에 시작되여 9월 7일 낮까지 진행되였다. 항일유격대의 주력부대는 적포대를 점령하였으며 일본군수비대병영을 강철그물같은 봉쇄망으로 둘러싸고 적의 필사적인 반돌격시도를 가차없이 좌절시키였다.

적의 맹공격에 겁을 먹은 구국군의 일부 부대들이 점령구역을 내던지고 현성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지만 항일유격대는 결사적인 시가전으로 점령구역을 확대하면서 적들을 현성일각으로 압축하였다. 구국군도 이에 고무되여 병기공장을 점령하고 군수품적치장들을 습격하였다. 시가전은 여러 시간동안이나 계속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련합작전의 목적이 기본적으로 달성되였다고 보시고 아군에 철수명령을 내리시였다. 유격대는 시내에서 주동적으로 철수하여 현성밖으로 빠져나오는 구국군부대들을 화력으로 엄호하였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국군의 사충항려단장이 중상을 당한채 성시안에 쓰러져있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 최춘국동지에게 사충항려단장을 구출할것을 명령하시였다.

최춘국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들고 결사적으로 사충항려단장을 구원하였다. 유격대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구원해낸 사충항려단장을 등에 업고 그를 화력으로 엄호하면서 고지쪽으로 무사히 이동하였다. 유격대원들은 자기 상관을 내버리고 간 사충항의 부하들을 벼락맞을 놈들이라고 욕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녕현성에서부터 라자구까지 연연 수백리를 헤아리는 귀환의 길에서도 항상 사충항려단장의 곁에 계시였다. 구국군대원들은 자기네 상관이 유격대원들의 담가에 실려가는것을 보면서도 감히 그곁에 접근을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충항의 부관이 세번째로 찾아오자 구국군에 사충항이 누워있는 담가를 인계해주라고 명령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도 지각을 가진 인간들인데 이제는 자기네 과실을 뉘우치지 않았겠는가, 저 사람들에게 담가를 들고갈수 있는 권리만이라도 넘겨준다면 그들이 전장에서 저지른 죄를 다문 얼마만이라도 씻게 될수 있을것이라고 대원들에게 말씀하시였다. 유격대원들이 사충항을 넘겨주자 구국군대원들은 황송하여 절까지 하였다.

사충항려단장은 말을 사려면 이발을 보고 사람을 사귀려면 그의 마음을 보라는 말도 있지만 내 김사령과 같은분을 벗으로 사귀게 된걸 하늘이 나에게 준 운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평생토록 귀중하게 간직하겠다고 맹세다지였다.

사충항은 위대한 수령님보다 나이가 열둬서너살 더 먹은 년장자였지만 반일공동전선을 실현해가는 길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피로 맺어진 전우가 되고 동지가 되였다. 동녕현성전투가 있은 후 그는 부대의 주둔지도 마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서북구에 정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충항려단장의 총상자리를 완치시키시기 위해 그에게 약도 많이 가져다주시고 그의 사상을 개변시키기 위하여 공산주의적인 영향도 많이 주시였다. 그런 과정에 그는 공산당에도 입당하였고 조선인민혁명군의 지휘관으로도 성장하였다.

사충항은 주체23(1934)년 6월의 라자구전투에서도 반일련합작전을 위하여 잘 싸웠고 인민혁명군에 편입된 후에는 독립2사 사장으로 적지 않은 무공을 세웠다.

이 이야기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혁명적의리를 보여주는 이야기의 일단에 지나지 않지만 혁명의 한길에서 맺어진 동지들을 위해서라면 국경을 초월하여 온갖 사랑을 다 돌려주시는 수령님의 한없이 숭고한 동지적의리를 잘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