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수십년만에 이루어진 부녀상봉

 2023.9.4.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한없이 고결한 풍모를 지니신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인간이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높이 모시고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안아온 조선혁명의 1세들은 오늘도 위대한 어버이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삶을 누리고있다.

대성산주작봉마루에 영생의 모습으로 서있는 투사들가운데는 반일인민유격대 참모장이였던 차광수동지도 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은정에 의하여 조선로동당창건 30돐을 맞으며 혁명렬사릉에 차광수동지의 반신상이 세워지게 되였다.

주체64(1975)년 10월 13일 제막식행사가 끝났어도 차광수동지의 반신상앞에서 한 녀인이 굳어진듯 움직일줄 몰랐다.

그가 바로 차광수동지의 딸 차영아였다.

세상에 나서 한번도 아버지를 본적이 없는 차영아가 영생의 언덕에서 살아숨쉬는 아버지와 만난것이다.

40여년만에 처음으로 되는 부녀상봉, 여기에는 얼마나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

주체57(1968)년 2월 어느날 당시 평안북도 신의주시에서 살고있던 차영아에게 당중앙위원회의 한 일군이 찾아와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를 친히 부르신다고 알려주는것이였다.

너무도 놀라와 당황해하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있는 차영아를 이윽히 지켜보고있던 그 일군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차영아가 항일혁명투사 차광수의 딸이라는것을 확인하시고 그를 만나보시겠다고 기다리고계신다는것을 재차 이야기해주었다.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는 차영아에게 그 일군은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는 감격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혁명의 길에서 싸우다 희생된 혁명전사 한사람한사람을 언제나 잊지 않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차광수동지의 희생을 두고두고 가슴아파하시면서 애석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많은 혁명렬사들이 남기고 간 유자녀들을 찾으시여 그들을 따뜻이 돌보아주실 때마다 다른 혁명렬사들은 후대라도 남기였는데 차광수에게는 후대가 없다고, 그 아까운 동무가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떠나갔다고 하시면서 그의 피줄을 찾으시려 해당 일군들에게 사진이라도 있는지 찾아볼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심려를 덜어드리기 위하여 애쓰던 일군들이 차영아가 소중히 간수하고있던 조그마한 그의 아버지사진을 찾게 되였던것이다.

차영아의 부모가 딸에게 남겨준것이란 아버지의 이름 석자와 돈잎만한 사진 한장이 전부였다.

그는 차광수동지가 희생된 후에 태여났기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을 전혀 모르고있었다.

철없던 소녀시절에 어머니마저 잃게 되자 의지가지할데 없게 된 차영아는 행여 아버지를 찾을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으로 그 사진을 소중히 간수하고있었다.

허나 옷섶에 주머니를 바꾸어해달며 오래동안 건사해오다나니 너무도 색이 날아서 얼굴을 알아보기조차 어렵게 되였다.

본인마저도 아버지를 영영 찾을길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때 당력사연구소의 한 일군이 그 사진을 가져다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였다.

사진에서 옛전사의 모습을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놀랍고 기쁘시여 오래동안 사진을 놓지 못하시다가 차광수의 딸을 빨리 만나봐야 하겠다고 그를 불러주신것이였다.

일군으로부터 차영아의 도착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광수의 딸이 어디에 있는가고 하시며 급히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시였다.

안경을 벗으시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차영아의 얼굴을 한동안 들여다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광수의 딸이 틀림없다고, 그동안 어데 있다가 인제야 왔는가고 하시며 그를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영아의 가슴쓰린 생활경위를 다 들어주시고 그 모진 세월 혼자서 얼마나 고생했겠는가고 하시며 손수건으로 눈굽을 닦으시였다.

이어 차영아에게 참된 혁명가인 아버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들려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를 보니 너의 아버지, 어머니생각이 더욱 간절하다고, 너의 이마쪽은 신통히도 아버지를 닮고 얼굴아래쪽은 어머니를 닮았다고 손수 손으로 가리키시기까지 하시면서 기뻐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네가 아버지사진을 가지고있었기에 40년만에 너의 아버지얼굴을 다시 보게 되였다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며 헤여지기에 앞서 차영아의 두손을 꼭 잡으시고 아버지가 못다한 혁명을 너희들이 하고 너희들이 못다하면 너의 아이들이 계속하게 해야 한다고, 이제부터는 그저 일을 하는것이 아니라 혁명을 해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품속에서 차영아는 당학교를 거쳐 어엿한 일군으로 성장하였다.

차영아는 주작봉마루에 영생의 모습으로 서있는 아버지에게 속삭였다.

아버지는 제가 태여난줄도 모르고 가셨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주셨어요. 다시는 영원히 헤여지지 말라고…》

40여년만에 이루어진 부녀상봉!

정녕 그것은 혁명전사 한사람한사람을 자신의 살붙이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자애로운 어버이품속에서 태여난 또 하나의 전설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