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고학계에 파문을 일으킨 청파대동굴유적

 2019.3.4.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가치있는 력사유적유물들을 더 많이 발굴하여 민족문화유산의 보물고를 풍부히 해나가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나라에서의 인류진화발전사문제를 다시 검토하여 보며 조선사람의 기원문제를 주체적립장에서 옳바로 해명할데 대하여 주신 유훈을 높이 받들고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인류진화발전사연구집단은 청파대동굴유적을 발굴고증하였다.

학술연구집단은 30여년동안 전국각지의 수많은 자연동굴에 대한 유적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 주체86(1997)년 5월 황주군 읍 청파대마을 뒤산중턱에서 자연동굴을 발견하고 주체88(1999)년 5월부터 주체93(2004)년 10월까지 발굴을 진행하였다.

옛날에 이 일대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었는데 그 샘물을 리용하여 큰 못을 파놓고 련꽃을 키웠으며 못가에 정각을 지어놓았다고 하여 《푸를청》, 《물결파》, 《집대》자를 써서 청파대마을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여 오늘까지 불리워오고있다.

조사당시 이 자연동굴은 이미 동굴천정과 벽면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여 없어진 상태였지만 퇴적층의 대부분은 그대로 남아있었고 동굴내부가 상당히 넓어 주변에서 사는 사람들이 동굴에 들어가 휴식하거나 아이들이 노는 장소로 리용되고있었다.

앞에는 황주천이 흐르고 넓은 벌이 펼쳐져있으며 고구려의 옛성인 황주산성을 마주하고 높지 않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쌓여있는 이 일대는 인간이 생의 터전을 잡기에는 안성맞춤한 곳이였다.

사람이 살아갈수 있는 자연지리적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진 청파대동굴은 길이 32m, 너비 6m, 퇴적층의 두께 10m정도 되였다.

발굴과정에 인류화석 7점, 불자리 13개, 석기 2 038점, 포유동물화석 10 772점, 포분화석 1 572개를 수집하였는데 세계적으로 한 장소에서 이렇게 많은 유물들이 발견된것은 매우 드물다.

1문화층(1층-7층)은 구석기시대중기문화층이고 2문화층(8층-14층)은 구석기시대후기문화층이다. 2문화층에서 발견된 신인단계의 인류화석을 황주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1문화층과 2문화층에서는 불자리와 찍개, 주먹도끼와 같은 수많은 로동도구들과 큰쌍코뿔이, 큰뿔사슴 등 포유동물화석, 포분화석들도 발견되였다.

이 동굴을 발굴하는데만도 6년, 발굴된 유물들에 대한 연구사업을 진행하는데 5년이 걸렸으며 발굴에 연 6 784명이 동원되여 8 675m3의 퇴적층을 처리한것만 보아도 청파대동굴의 규모가 얼마나 방대하였는가를 짐작할수 있다.

외세에 의하여 외곡되고 부정되였던 아득한 원시시대의 력사까지도 우리 시대에 다 바로잡아 후세에 정확히 전해지게 해야 한다고 하시며 력사연구의 강령적지침과 구체적인 방도까지도 하나하나 밝혀주시고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청파대동굴유적은 로동당시대에 비로소 자기의 옛모습을 드러내고 이 땅우에 빛을 뿌릴수 있게 되였다.

하기에 주체98(2009)년 10월 29일 청파대동굴유적에 대한 TV보도가 나가자 세계출판보도계와 고고학계에서는 세계적으로도 보기드문 대발굴이라고 파문을 일으키며 앞을 다투어 보도하였다.

우리 인민이 대를 이어 살아온 이 땅, 우리 조국땅에서 흘러간 유구한 력사의 한 시대가 응축된 청파대동굴유적은 오늘 자기의 가치를 되찾고 절세의 위인들의 존함과 더불어 력사의 한페지에 당당히 기록되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