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박사 부교수 리병간
2020.8.24.
전승 60돐을 얼마 앞둔 주체102(2013)년 6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크나큰 은정으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종군작가로 활동한 김사량선생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할데 대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발표되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은 수령의 믿음과 사랑을 받아안는것이다. 종군작가 김사량은 절세위인들의 사랑과 믿음속에 죽어서도 영생하는 참다운 삶을 누릴수 있었다.
사실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북행길에 올랐던 종군작가 김사량선생은 심장병이 도져 더는 걸을수 없게 되여 대렬책임자에게 당원증과 종군수첩, 신분증을 주며 당중앙위원회에 전해달라는 부탁을 한 다음 지리산빨찌산에 남아 투쟁을 벌리게 되였는데 그 이후로는 그에 대한 아무러한 소식도 없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김사량을 끝까지 믿어주시며 그의 정치적생명과 가족들의 안전까지 변함없이 지켜주고 보살펴주시였다.
주체43(1954)년 5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제17차 전원회의를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이 끝난 때로부터 거의 1년이 되여오도록 그 행적을 알수 없는 김사량에 대하여 못내 걱정하시며 휴식시간에 한 일군을 불러 아직 그의 소식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여러 통로를 통해 작가의 행처를 알아보고있다는것과 그에 대한 이러저러한 억측이 돌고있다는데 대한 그 일군의 이야기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는 정의감이 강하고 량심적이며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고, 신념이 있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결연한 어조로 자신께서는 그가 생명의 최후순간까지 견결히 싸웠으리라고 믿는다는 최상최대의 믿음, 절대불변의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일부 편협한 사람들이 김사량의 남다르게 복잡한 생활경로를 문제시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히려 그것으로 하여 더욱더 김사량을 확고히 믿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소설가 김사량은 참군을 결심하고 만주광야를 헤매다가 우리 부대를 종시 찾아내지 못하고 연안에 가서 장편기행문 <노마만리>를 썼다.》 (《김일성전집》 제99권 53페지)
해방전 우리 나라에 진보적문인들이 적지 않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에 적극 공감하여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할것을 결심하고 시도한 작가이라는데 김사량의 남다른 사상정신적특질이 있다.
김사량으로 말하면 일제식민지통치시기 개인의 안락만을 생각했다면 부유한 가정에서 얼마든지 잘살수 있는 처지였지만 인민의 편, 민족의 편으로 넘어온 정의감이 강한 인간이였다.
그는 일제식민지통치의 아성인 《총독부》에서 높은 자리까지 차지하고있던 철저한 친일분자인 형과 혈육의 정을 완전히 끊고 참군을 결심하였으며 만주광야를 헤매이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과정에 체험한 사실에서 창작적충동을 받아서 쓴 기행문 《노마만리》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유격대를 《태양부대》라고 격조높이 찬양하였다.
김사량의 심장속깊이 간직된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매혹과 흠모의 마음은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가르치심을 받으며 문필활동을 벌리던 그 시절에 불변의 신념으로 더욱 굳어졌다.
김사량은 주체34(1945)년 11월 2일 해방후 우리 작가들가운데서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였고 그후에도 여러차례나 수령님을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았으며 거듭거듭 베풀어지는 대해같은 사랑과 은정을 받아안았다.
더우기 죽어서도 잊을수 없는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와 어리신 자제분과 함께 몸소 김사량가족을 위해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마련해주신것이였다.
꿈에도 생각할수 없었던 사랑과 믿음을 김사량은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그이의 참된 전사, 제자로서 받아안았다.
김사량은 실천활동에서 자기 사상과 신념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속에서 희곡 《뢰성》을 창작하여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형상을 무대에 올린것은 그 하나의 실례에 불과하다.
하기에 그는 전쟁이 일어나자 그 다음날로 종군의 길에 나섰으며 《바다가 보인다》를 비롯하여 9편의 종군기를 집필하여 조국해방전쟁승리에 적극 기여할수 있었다.
종군작가 김사량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은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그대로 이어졌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사량의 최후에 대해 밝혀내는 문제는 단순히 한 인간의 생사여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어버이수령님께서 아끼고 믿어주시던 지식인의 정치적생명을 빛내여주기 위한 중요한 문제이라고 하시면서 연고자들과 여러 출판물을 통하여 알아보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김사량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들의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에 의하여 그가 지리산빨찌산에서 투쟁하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는것이 해명되게 되였다.
전승 60돐을 얼마 앞둔 어느날 새벽 2시 새로 개건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공화국영웅홀에 들어서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김사량의 투쟁자료앞에서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시였다.
이윽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김사량은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고 종군작가로 적극 활동하였으며 자폭으로 최후를 마치는 마지막순간까지 용감하게 싸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그에 대하여 자주 회고하시였다, 당에서는 김사량이 전사한지 60여년의 세월이 흘러왔지만 그의 위훈을 높이 평가하여 지난 6월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종군작가 김사량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속에서 참다운 인생을 되찾고 정치적생명을 빛내이게 되였으며 전승의 축포가 오른 때로부터 60여년이 흐른 오늘에는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과 믿음을 그대로 이어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계시여 종군작가 김사량은 금별과 더불어 영생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