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로동당시대에도 문패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며

 2019.5.25.

우리 나라 그 어디를 가나 인민들이 사는 모든 살림집들에는 집주인의 이름과 주소를 쓴 문패가 달려있다.

해당 집주소와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친근한 안내자로 되고있는 문패에도 우리 인민들이 살림집을 리용하는데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풍습을 시대적요구에 맞게 잘 살려나가도록 이끄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뜨겁게 어려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살림집들에 문패를 써붙이는것이 좋겠습니다. 표준설계를 가지고 꼭같이 지어놓은 살림집들에 문패가 없으면 어느 집이 누구네 집인지 인차 가려보기 힘듭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1권 15페지)

우리 인민들이 집집마다 문패를 달기 시작한것은 조선봉건왕조 중기부터였다.

조선봉건왕조 중엽에 이르러 도시에 살림집들이 많이 늘어나고 사람들사이의 래왕과 접촉이 활발해짐에 따라 도시주민들속에서는 점차 생활상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자기 집의 대문가에 이름과 주소를 적은 나무패쪽을 달아놓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점차 사회적으로 일반화되였으며 마침내 조선봉건왕조말기에는 집집마다 주인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문패를 달데 대한것이 법적으로까지 규제되게 되였다. 따라서 이때부터 집주인의 이름과 주소가 씌여진 문패가 공식적으로 살림집대문가에 나붙게 되였다. 지배계급들은 문패를 가문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여기면서 거기에 자기 가문의 래력과 《업적》, 관직 등을 장황하게 적어 내붙이였다. 그러나 인민들은 문패의 본래 사명에 맞게 주소와 이름을 쓴 소박한 문패를 사용하였으며 그것은 어느덧 풍습으로 고착되게 되였다.

문패를 다는 풍습은 해방후에도 그대로 남아있다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 희박해지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예로부터 문패를 달아오던 풍습을 시대적요구에 맞게 잘 살려 인민들의 생활상편의를 보장하도록 따뜻이 이끌어주시였다.

주체90(2001)년 7월 11일 위대한 장군님께서 황해북도 서흥군 범안리를 현지지도하실 때였다.

새로 건설된 범안리의 양어장과 범안발전소를 돌아보시면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어 양지바른 산기슭에 아담하게 지은 살림집들과 문화후생시설들도 돌아보시였다.

한 제대군인부부가 사는 살림집을 찾으시여 그들의 생활을 세심히 보살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현대적인 농촌살림집들을 바라보시며 꼭같은 집들이 줄지어 서있으니 어느것이 제집인지 찾기 힘들겠다고 하시며 일군들에게 왜 집집마다 누구의 집이라는 문패가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사실 새집을 지으면서도 일군들은 그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두지 못했고 또 새집에 이사한 집주인들까지도 간혹 자기 집을 헛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으면서도 문패에 대하여서는 별로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표준설계를 가지고 꼭같이 지어놓은 살림집들에 문패가 없으면 어느 집이 누구네 집인지 인차 가려보기 힘들다고 하시면서 살림집들에 문패를 써붙이도록 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그로부터 닷새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며칠전 범안리에 가시였을 때 지적하신 문패문제를 상기시키시면서 로동당시대에도 문패가 있어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이때부터 새집들이하는 가정들은 물론 온 나라 모든 가정들의 출입문에는 문패가 걸려지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5(2006)년 12월초 황해북도 사리원시 미곡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문패와 관련하여 또다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날 새로 지은 농장의 어느 한 살림집의 내부를 돌아보시고 밖으로 나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문패를 보시고 왜 문패에 이름만 있는가고, 미곡리 몇반 누구라고 쓰면 좋지 않은가고 하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집들에 걸려있는 문패에는 집주인의 이름 석자만 적혀있어 문패만 보고서는 집주소를 정확히 알수 없게 되여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이 편지를 보낼 때 봉투에 받을 사람의 주소를 정확히 써야 그 편지가 제대로 갈수 있고 리정표를 보고 자기가 찾아갈 곳을 찾아가는것처럼 문패를 잘 만들어 달아야 보는 사람들이 섞갈리지 않고 자기가 찾는 집을 인차 찾을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듯 문패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도 몇인민반 누구의 집인가 하는것을 인차 알수 있게 써붙여야 한다고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이때로부터 모든 가정들의 출입문에는 누구나 보고 집주소와 주인을 인차 알수 있는 새로운 문패가 걸려지게 되였다.

이와 같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살림집에 문패를 다는 풍습이 로동당시대에 다시 장려되게 되였다.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령도자도 많지만 인민들의 생활에 사소한 불편이 있을세라 문패에까지 관심을 돌리시며 따뜻이 보살펴주신 위대한 장군님과 같은 자애로운 어버이, 인민의 령도자는 이 세상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