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그 어디를 가나 인민들이 사는 모든 살림집들에는 집주인의 이름과 주소를 쓴 문패가 달려있다.
해당 집주소와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친근한 안내자로 되고있는 문패에도 우리 인민들이 살림집을 리용하는데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풍습을 시대적요구에 맞게 잘 살려나가도록 이끄신
《살림집들에 문패를 써붙이는것이 좋겠습니다. 표준설계를 가지고 꼭같이 지어놓은 살림집들에 문패가 없으면 어느 집이 누구네 집인지 인차 가려보기 힘듭니다.》 (
우리 인민들이 집집마다 문패를 달기 시작한것은 조선봉건왕조 중기부터였다.
조선봉건왕조 중엽에 이르러 도시에 살림집들이 많이 늘어나고 사람들사이의 래왕과 접촉이 활발해짐에 따라 도시주민들속에서는 점차 생활상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자기 집의 대문가에 이름과 주소를 적은 나무패쪽을 달아놓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점차 사회적으로 일반화되였으며 마침내 조선봉건왕조말기에는 집집마다 주인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문패를 달데 대한것이 법적으로까지 규제되게 되였다. 따라서 이때부터 집주인의 이름과 주소가 씌여진 문패가 공식적으로 살림집대문가에 나붙게 되였다. 지배계급들은 문패를 가문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여기면서 거기에 자기 가문의 래력과 《업적》, 관직 등을 장황하게 적어 내붙이였다. 그러나 인민들은 문패의 본래 사명에 맞게 주소와 이름을 쓴 소박한 문패를 사용하였으며 그것은 어느덧 풍습으로 고착되게 되였다.
문패를 다는 풍습은 해방후에도 그대로 남아있다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 희박해지게 되였다.
주체90(2001)년 7월 11일
새로 건설된 범안리의 양어장과 범안발전소를 돌아보시면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한 제대군인부부가 사는 살림집을 찾으시여 그들의 생활을 세심히 보살펴주신
사실 새집을 지으면서도 일군들은 그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두지 못했고 또 새집에 이사한 집주인들까지도 간혹 자기 집을 헛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으면서도 문패에 대하여서는 별로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로부터 닷새후
이때부터 새집들이하는 가정들은 물론 온 나라 모든 가정들의 출입문에는 문패가 걸려지게 되였다.
이날 새로 지은 농장의 어느 한 살림집의 내부를 돌아보시고 밖으로 나오신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집들에 걸려있는 문패에는 집주인의 이름 석자만 적혀있어 문패만 보고서는 집주소를 정확히 알수 없게 되여있었다.
이때로부터 모든 가정들의 출입문에는 누구나 보고 집주소와 주인을 인차 알수 있는 새로운 문패가 걸려지게 되였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령도자도 많지만 인민들의 생활에 사소한 불편이 있을세라 문패에까지 관심을 돌리시며 따뜻이 보살펴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