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새로 밝혀진 서산성(적두산성)의 축조시기

 2024.7.2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력사유적과 유물은 민족의 재보이며 대를 이어가며 전해야 할 유산입니다. 민족의 자주의 력사, 창조의 력사는 유적과 유물을 통하여 전해지고있습니다.》

서산성은 우리 선조들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전해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서산성은 보통강이 대동강에 합류되는 합수목에서 북쪽으로 약 800m, 평양성 외성에서 서쪽으로 보통강을 사이에 두고 약 1 000m 떨어진 평양시 만경대구역 선내동의 서산에 위치하고있다.

서산성의 둘레는 약 2 170m이며 현재 남쪽과 동쪽, 북쪽부분에 일부 토성벽이 남아있고 서쪽산릉선부분의 성벽은 비교적 잘 보존되여있지만 성문은 모두 없어졌다.

서산성은 4개의 골짜기와 3개의 산봉우리를 련결하여 쌓은 전형적인 고로봉식산성이다.

서산성
사진 1. 서산성의 성벽

력사적으로 서산성은 고려시기 처음 쌓은것으로 전해져왔다.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그 이후에 나온 《대동지지》, 《증보문헌비고》등 여러 력사기록들에는 고려시기 김부식을 비롯한 봉건통치배들이 군사들을 동원하여 서산성(적두산성)을 쌓은것으로 기록되여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51, 평양부 고적)에는 서산성(적두산성)은 흙으로 축조하였는데 그 위치는 평양강(오늘의 대동강) 서쪽이며 《묘청의 란》때에 김부식이 쌓았다고 기록되여있다. 그 이후시기의 《대동지지》, 《증보문헌비고》, 《평양지》 등 여러 문헌들에서도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그대로 전하고있다.

그러나 주체101(2012)년에 진행된 서산성에 대한 발굴과 연구결과는 이 성이 고려시기가 이니라 이미 고구려시기에 처음 쌓아진 성이라는것이 밝혀지게 되였다.

그것은 우선 서산성 서남쪽 성벽을 발굴하는 과정에 산릉선경사면을 수평으로 깎아내고 밑바닥에 화강석을 4각추모양으로 다듬은 성돌 4개를 놓고 그 뒤로 납작한 돌들을 잇대여 다지는 방법으로 쌓은 성벽이 처음으로 드러나고 성벽주변에서 화강석을 4각추모양으로 다듬은 성돌 7개가 발견된것을 통하여 확증된다.

서산성에서 발굴된 성돌들의 재질, 크기와 4각추모양으로 가공한 방법, 성벽축조방법 등은 고구려시기 평양성의 성돌들, 성벽축조방법과 거의나 같다.

또한 서산성에서 발견된 기와유물들을 통하여 보다 명백히 확증되였다. 조사와 발굴과정에 서산성의 성벽과 성안의 여러곳에서는 고구려시기의 전형적인 붉은색기와들이 수십점이나 발견되였다.

기와
사진 2. 서산성에서 발굴된 기와

붉은색기와들에는 노끈무늬, 사선격자무늬, 삿자리무늬, 물결무늬, 릉형무늬, 전나무잎무늬, 선무늬 등 여러가지 무늬들이 있는데 이러한 무늬들이 새겨진 기와들은 모두 고구려시기의 수도성이였던 평양성에서 알려진것들이다.

이것은 서산성이 고려시기에 처음 쌓은 성이 아니라 고구려시기에 처음 쌓은 성이며 성의 축조년대는 평양성을 쌓던 시기와 대체로 같다는것을 알수 있다.

서산성은 고구려시기에 평양성을 쌓으면서 대동강과 보통강으로 들어오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평양성과 약 1 000m정도 떨어져있고 평양성안을 한눈에 들여다 볼수 있는 이곳에 수도방위성으로 쌓아졌다는것이 새롭게 밝혀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