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삼석마을의 수도화에 깃든 위인의 로고

 2021.4.2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벌방지대 농민들이 겪고있던 먹는물고생을 없애며 농촌녀성들을 물동이를 이는 일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농촌에 수도화를 실현할데 대한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김일성전집》 제67권 485페지)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러다니는것은 오랜 세월 우리 농촌 녀성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부담으로 되여있었다.

무더운 여름날에 하루종일 논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점심참이면 찬물을 길어와야 하고 저녁이면 또 물 한독을 다 채워놓아야 하며 첫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지워야 하는것이 농촌녀성들이였다.

일찌기 녀성들이 힘들게 물동이를 이고 다니는데 대하여 그토록 가슴아파하시며 농촌수도화의 구상을 무르익혀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공업화가 완성되여가던 시기에 수도화의 본보기를 마련해주시려고 끊임없는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8(1969)년 봄 어느날 삼석마을을 찾으시여 작업반의 모내기를 돌봐주시다가 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언덕길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시였다.

아담한 문화주택마을의 전경을 바라보시며 몹시 만족해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5호동부락의 맨 웃쪽에서 사는 녀성농장원이 도로아래의 우물에서 물동이에 물을 길어가지고 가는것을 보시고 안색을 흐리시며 아주머니들이 하루종일 논판에서 힘들게 일하고도 저녁이면 또 저렇게 물동이를 이고 다녀야 하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고 그토록 가슴아파하시면서 남자들이란 해주는 밥을 먹으니까 잘 모르는데 녀성들은 남자들과 꼭 같이 일하고도 물을 길어다 밥을 짓고 빨래도 해야 하니 그들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올해농사를 다 지은 다음 꼭 수도를 놓아주자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수십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이나 그 일을 직접 맡아하는 녀성들까지도 그런 일은 녀자들이 응당 해야 하는 일로, 녀성의 본분으로 여겨왔다.

하기에 그 일이 힘들겠다고 걱정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또 그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 한번 입밖에 내는 녀성도 없었으며 더우기 그 수고를 헤아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녀성들의 남모르는 그 수고를 속속들이 헤아려보시며 수도를 놓아주자고 하시였던것이다.

주체58(1969)년 10월 어느날 또다시 마을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도를 놓을 준비사업에 대하여 료해하시고 작업반장에게 서둘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작업반적으로 하루에 필요한 물량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작업반장으로부터 필요한 물량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량으로는 안된다고, 남새도 씻고 빨래도 하고 목욕하는것도 함께 타산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수원지자리는 어디에 잡았는가고 물으시였다.

지난날 우물자리도 찾지 못하여 오랜 세월 물고생을 하여온 이 고장에서 한개의 작업반이 물을 마음대로 쓸수 있는 수원지자리를 잡는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이 고장에 태를 묻고 80년나마 살아오면서 이곳 산발과 골짜기, 밭들의 래력을 손금보듯 알고있는 로인들과 마을사람들은 행여나 물을 얻을가 하여 제손으로 수많은 우물을 파보았지만 물이 나오지 않아 종내 도랑물을 먹으며 살아왔다.

수원지자리를 잡기 위하여 마을의 로인들과 여러번 의논도 해보았지만 그때까지 신통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있었다.

아직 수원지자리를 잡지 못했다는것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왔던김에 수원지자리를 잡자고 하시면서 이전에 양수장물주머니를 만들 때 보아두셨던 샘구멍이 있는 양수장으로 가시였다.

한동안 그 샘구멍을 유심히 살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에서 나오는 물을 가지고는 아무래도 모자라겠다고 하시면서 저수지를 지나 양우리앞 탑골어구에 이르시여 걸음을 멈추시고 주변의 지형지물들을 쭉 둘러보시다가 그전에 여기에 자그마한 샘줄기가 하나 있었다고 하시며 뚫을 위치를 잡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삼석마을 농민들에게 흰쌀밥을 먹이시기 위하여 이 고장의 지질상태를 연구하시고 저수지와 양수장물주머니를 만들어주신것은 주체46(1957)년 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양수장물주머니의 샘구멍과 탑골어구의 샘줄기를 봐두신것과 이 골짜기밑으로 흐르는 물이 세 골짜기가운데서 제일 많다는것을 아신것도 바로 12년전에 있은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2년전에 연구하신 이 고장의 지질상태를 잊지 않으시고 여러곳을 몸소 밟으시며 수원지자리를 잡아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작업반을 떠나시면서 옛말에 잘 나오던 샘구멍도 잘못 다치면 물이 적어진다고 하였는데 기술자들과 의논하여 한번 잘 뚫어보고 물이 나오는 량을 보면서 구체적인 전투계획을 세우라고 가르쳐주시였으며 이 부문의 유능한 기술자들까지 보내주시였다.

마을사람들은 기술자들과 힘을 합쳐 위대한 수령님께서 잡아주신 위치에서 물량이 대단히 많은 샘줄기를 찾아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로부터 며칠이 지나서 또다시 마을에 나오시여 수원지에 가득 고인 수정같이 맑은 샘물을 보시고 몹시 기뻐하시며 하루에 나오는 물의 량과 이미 계산하여 적어두셨던 작업반에서 필요한 물의 량을 대비해보시고 그 량이면 충분하다고 하시며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이어 수질검사를 해보았는가고 작업반장에게 물어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문가들이 수질검사를 하였는데 물이 좋아서 그대로 먹을수 있다는 대답을 들으시고 그렇다면 수도를 더 간단한 방법으로 더 빨리 놓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수도를 놓기 위한 실무적방도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수지를 20호동부락 뒤산에 만들것을 예견하고있는 작업반장에게 25호동 부락웃쪽에 기둥 4개를 세우고 그우에 저수탕크를 올려놓으면 3개 부락이 다 물을 먹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도시에서는 많은 물을 저장해야 하고 또 넓은 지역에 물을 보내자니 저수지를 높은 산꼭대기에 만들어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그 리치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였다. 그리고 친히 땅바닥에 그림까지 그려가시면서 새로운 형태의 저수탕크를 만드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도화를 처음으로 해보는 농장일군들은 물론 공사를 도와주러 나온 기술자들도 저수지는 의례히 높은 산꼭대기에 만드는것으로 알고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업반의 구체적실정을 깊이 연구하신데 기초하시여 로력과 자재를 적게 들이면서도 공사기일을 훨씬 앞당길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주시였던것이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철관이 몇m면 되겠는가, 전동기는 몇kW짜리면 되겠는가 하는것도 현지에서 구체적으로 타산해보시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까지 세워주시고서야 작업반을 떠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자주 공사현장에 나오시여 걸린 문제들을 현지에서 풀어주시였으며 수도꼭지는 몇집에 하나씩 달아주고 빨래터는 어떻게 만들며 목욕탕은 어디에 짓겠는가 하는것도 일일이 의논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와 극진한 배려에 의하여 삼석마을에서는 주체59(1970)년 2월초에 수도화공사를 끝내게 되였다.

수도화공사를 끝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도를 놓느라고 수고했다고 하시며 시간을 내여 마을에 꼭 들리시겠다고 약속하시였으며 그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주체59(1970)년 3월 26일 아침 친히 삼석마을을 찾으시였다.

25호동부락 복판에 있는 수도가에서 걸음을 멈추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도물이 잘 나오니 됐다고 하시면서 뽀얀 물안개를 일구며 쏟아지는 물줄기를 한참동안 바라보시다가 농장일군들이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하고있는 점들을 하나하나 일깨워주시고나서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고 마을을 빙 둘러보시며 얼마나 좋은가고, 집집마다 양도 있고 닭도 있고 과실나무도 있고 이제는 수도까지 나오니 도시보다 더 살기 좋다고 말씀하시며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계시였다.

정녕 이민위천을 한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우리 인민을 세상에서 제일 잘살게 해주시려고 그토록 마음써오시며 헌신의 로고를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오랜 세월 물이 부족하여 사람 못살 동네로 불리워지던 삼석마을이 오늘은 관개수가 넘쳐흐르고 농촌수도화가 실현된 사회주의문화농촌으로 전변되였으며 사계절 물동이와 함께 가정일의 부담속에 살아온 삼석마을녀성들은 물동이에서 영원히 해방되게 되였다.

혁명의 중하를 한몸에 안으시고 나라의 크고작은 일들을 돌보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녀성들을 물동이에서 해방시켜주시려 몸소 지질학연구사가 되시여 마을수도화에 필요한 물량까지 계산해가시며 샘줄기를 찾아주시고 합리적인 수도화방법을 가르쳐주시였으며 필요한 설비를 마련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의 로고에 의하여 삼석마을은 농촌수도화의 본보기로 훌륭하게 꾸려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