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사과풍년>은 사상예술적으로 높은 경지에 오른 잘된 작품입니다.》 (
주체58(1969)년 8월 중순의 어느날이였다.
이날 예술영화촬영소 배우들의 기량훈련장을 찾으신
그런데
이윽하여
무용배우들은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다.
그들도 오늘의 협동농장처녀들의 춤으로 산나물이나 캐는것은 맞지 않는다는것이 느껴졌던것이다.
순간 무용배우들의 얼굴은 일시에 확 밝아지는듯하였다.
사과따는 춤! 무용배우들의 눈앞에 백과주렁진 아름다운 과원과 그속에서 사과를 따는 처녀들의 발랄하고 유쾌한 모습이 안겨왔다
나물캐는 춤과 사과따는 춤,이 두 춤은 시대와 생활감정에서,아름다움과 률동성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그후 며칠이 지난 8월 24일 다시금 예술영화촬영소 배우단의 기량훈련장을 찾으신
이날 무용예술인들이 준비한 춤들을 다 보아주신
그러시면서 무용이 참다운 예술로 되자면 생활을 생동하고 풍부한 춤동작으로 표현하여야 하며 높은 수준에서 조화를 실현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사실 처음으로 만들어진 무용《사과풍년》은 높은 수준에서 조화를 실현하지 못한 결함이 있었다.
창작가들은 로동생활을 가식없이 그린다고 하면서 손동작이나 발동작을 제대로 맞추지 않았을뿐 아니라 가로세로 그어지는 선이나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무용수들의 대형과 같은데서도 조화를 보장하지 못하였다.
사실 무용은 생활을 규칙적인 음악적리듬에 맞추어 담으며 몇분안팎의 시각적인 효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새겨주어야 하는 예술이기때문에 사소한 부조화가 무용작품전체를 망쳐놓을수도 있는것이다.
무용창작가들이 그때까지 조화의 원리를 잘 모르고있은것은 무용극이나 독무에 치중하면서 군무를 홀시해온데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그들은
무용《사과풍년》에서 이처럼 형상의 조화가 실현됨으로써 그 시각적인상이 몇배로 강하여지고 군무의 중심에 선 일욕심이 많은 처녀의 사랑스러운 개성도 두드러지게 살아날수 있었다.
사과따기에 욕심을 내다가 동무들을 잃고 헤덤비는 처녀, 동무들과 함께 다른 밭으로 가다가도 미처 따지 못한 높은 가지의 사과 한알에 마음이 가서 다시 돌아와 그것을 따가지고야 유쾌히 달려가는 처녀, 생활적이며 성격적인 처녀의 그 형상은 전적으로 무용전반의 조화속에서만이 빛을 낼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 나라의 농촌처녀들의 소박한 로동생활을 그린 무용《사과풍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