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령도자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며 슬기롭고 재능있고 용감한 민족입니다.》(《
민족고전 《해동역사》는 18세기 말-19세기 초 학자인 한치윤이 고조선으로부터 조선봉건왕조에 이르는 시기까지의 우리 나라 력사를 《세기》(본기), 《지》, 《고》(렬전)로 나누어 편찬한 기전체통사이다.
《해동역사》라는것은 《우리 나라의 력사를 뽑아 엮은 책》이라는 뜻이다.
한치윤(1765-1814년)은 량반출신으로서 일찌기 진사시험에 합격하였지만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학문연구에 일생을 바친 학자였다. 그는 우리 나라의 력사를 정확히 서술하여 후세에 남길 목적으로 10여년동안 600여종이 넘는 국내외문헌들을 탐독한 다음 력사관계자료들을 뽑아 분류, 정리하여 70권으로 된 《해동역사》를 편찬하였으며 그 속편으로서 《지리고》를 저술하기 위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초고를 집필하였으나 그 완결을 보지 못한채 1814년 세상을 떠나고말았다.
그후 이 《지리고》는 그의 조카인 한진서가 삼촌의 유고를 정리하고 거기에 자기가 수집한 자료를 다량 첨부함으로써 《해동역사》편찬이후 9년만인 1823년에 15권으로 완성되였다.
한진서의 리력은 알수 없으나 삼촌의 사후에 인차 《해동역사》의 속편인 《지리고》편찬에 착수한것과 그리고 《지리고》의 편찬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그의 학문적수준이 삼촌보다 못하지 않았다는것을 알수 있다.
실제적으로 한진서는 자기 삼촌인 한치윤과 함께 동시대 학자였던 정다산과도 학문상으로 접촉이 많았고 사료나 연구성과들을 서로 토론하는 과정에 공통된 결론에 도달한것이 많았다. 《해동역사》(지리고)와 정다산의 《아방강역고》사이에 력사지리상의 공통된 결론들이 매우 많은것은 두 사람의 식견이 다 높은 경지에 있었다는것을 말하여준다.
한진서는 《지리고》를 편찬하면서 원편과는 조금 다르게 강목체의 형식으로 서술하였는데 책이름은 따로 붙이지 않고 그저 《해동역사속》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지리고》가 《해동역사》의 한 구성부분으로서 결국 이 두 책이 하나의 완성된 기전체력사책으로 되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해동역사》는 크게 《세기》(1-16), 《지》(17-59), 《고》(60-70), 《해동역사속》(1-15)의 4개 부분으로 구성되여있는데 이것은 다시 여러개의 항목으로 나뉘여져있다.
《세기》는 고조선으로부터 고려말에 이르는 기간의 중요 사료를 왕조별, 년차순에 따라 배렬하고 거기에 저자의 고증결과를 《안설》형식으로 삽입하였다.
저자는 각 왕조의 기원과 그의 강역, 봉건국왕의 교체와 그들의 반인민적정책, 개별적인물들의 활동과 특이한 사건, 대외관계와 우리 인민의 반침략투쟁, 봉건정부의 국방시책에 대한 자료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다. 책에는 해당 내용의 수록과 관련한 사료적보충, 다른 사가들의 사론에 대한 소개, 인명, 지명, 년대에 대한
저자는 여기에서 삼국시기에 관한 부분은 우선 고구려를 제일먼저 세권으로 서술하고 그 다음에 백제, 신라의 순서로 각기 한권으로 서술하였으며 또 그 다음에 발해를 한권으로 서술한 후에 고려로 넘어가는 방법을 취하였다. 이 서술방법은 《삼국사기》의 《본기》가 신라, 고구려, 백제의 순서를 취하고 《지》, 《렬전》을 포함한 책 전체를 거의 신라중심으로 하였으며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일어난 발해에 대하여서는 전혀 언급하지도 않던 서술방법과는 완전히 대치되는것이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의 서술순서 및 그 내용의 분량 등 비중은 다만 《세기》뿐아니라 각 《지》, 《렬전》들에도 일관되여있다.
《지》는 분량에 있어서 이 책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있으며 여기에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외교, 천문, 기상관측 등 여러 분야의 자료들이 수록되여있다.
《성력지》(17권)는 천체관측, 위도측정, 천문현상, 인간사회의 호상관계 등을 서술한것이며 《례지》(18-21권)는 봉건시기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관혼상제, 의복제도, 민간에서 진행하는 각종의식에 대한 자료들을 수록한것이다.
《악지》(22권)는 고조선으로부터 조선봉건왕조시기까지의 우리 나라 음악제도와 악기, 가요, 무용 등에 대한 자료를 서술한것이고 《병지》(23권)는 봉건시기의 군사제도와 무기생산 및 군마사육에 관한 내용을, 《형지》(24권)는 봉건시기 우리 나라의 법률, 형벌제도를 수록한것이다.
《식화지》(25권)는 봉건시기 우리 나라의 경제형편을 서술한것으로서 농업과 잠업의 발전상태, 수탈한 조세의 분할형태, 봉건관리들의 록봉제도, 량곡보관제도, 도량형, 임대관계 그리고 고려시기의 시장과 그 상업적련계, 조선봉건왕조전반기의 대외무역, 화페 및 그 류통상태 등을 반영한것인데 그가운데서도 대외무역에 관한 자료가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물산지》(26-27권)는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나라의 생산물에 대한 자료들을 시기별, 지방별로 소개하고있다. 여기에는 광물, 식물, 포백류, 알곡류, 과일, 남새, 수산물, 동물, 화초, 문방구, 공예품, 동물, 곤충류 등이 올라있는데 이러한 내용은 다른 문헌들에서 찾아보기 드문 자료들이다.
《풍속지》(28권)는 인물, 풍속, 방언자료들을 수록한것인데 여기에는 력대 우리 나라의 례의도덕, 생산활동, 가족, 혼인, 남녀의복제도, 음식, 살림집, 위생, 제사, 장례, 가무, 오락, 년중행사, 방언 및 기타 풍습자료들이 서술되여있다.
《궁실지》(29권)는 《성궐》, 《민거》, 《기용》편으로 구성되여있는데 《성궐》은 해당 시기의 왕궁, 성, 관청, 루각에 대한것이고 《민거》는 사람들의 생활풍습, 《기용》은 가장집물, 술 및 차그릇, 화로, 부채, 선박, 수레 등에 대하여 기록한것이다.
《관씨지》(30-31권)는 봉건시기 우리 나라의 《관제》, 《씨족》의 두 편을 포괄하고있는데 《관제》는 고조선이후 삼한이전,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의 순서로 해당 시기 왕조들의 문무관제, 품계 등을 서술한것이고 《씨족》은 고대이래 해당 시기의 씨족, 성씨 등을 수록한것이다.
《석지》(32권)는 우리 나라의 불교전파과정과 절간 그리고 도교에 관한 자료를 기록한것인데 여기에는 세나라이후 고려시기까지의 불교전파정형과 신라, 고려의 몇개 사원 그리고 세나라와 고려시기의 이름난 중들과 고구려, 고려시기의 도교전파정형에 대하여 반영되여있다.
《교빙지》(33-41권)는 우리 나라와 이웃나라들과의 대외관계, 이웃나라들과 왕래한 해로와 륙로에 대한 자료들을 서술한것이다. 특히 여기에는 일제가 우리 나라에 침입한 해상경로와 북쪽으로 외래침략자들이 침입한 경로가 자세히 기록되여있다.
《예문지》(42-59권)는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쓴 시문, 서예, 비문, 서화 등 각종 문체의 글들을 소개한것인데 여기에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쓴 330수의 시문과 중국사람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이나 혹은 아름다운 우리 나라의 자연경치에 대하여 쓴 58건의 기사와 367수의 시문, 일본사람들이 쓴 7수의 시문과 각종 문체의 글들이 올라있다.
《고》는 《숙신씨고》와 《비어고》, 《인물고》의 3편으로 구성되여있는데 《숙신씨고》(60권)은 우리 나라와 녀진과의 관계를 수록한것으로서 여기서는 력대 중국문헌들에서 옛날에는 식신씨라고 불리우고 그 후로 점차 숙신, 직신, 읍루, 물길, 말갈, 녀진 등으로 이름이 바뀐 뒤날의 만주족에 대하여 기원을 밝히였다.
《비어고》(국가방위)(61-66권)는 조선봉건왕조시기 남으로는 왜나라를 제압하고 북으로는 녀진과 청나라의 침입에 대처하여 나라의 방비를 강화한 력사적기록들을 수록한것인데 《어왜시말》(왜나라의 침입을 막은 경위), 《건주사실》, 《북우시말》의 3편으로 나뉘여져있다.
여기에서 《어왜시말》은 조선봉건왕조이래 왜나라와 접촉한 사실, 《임진왜란》의 시작과 격퇴, 전후 국교를 다시 회복하게 된 경위 등을 밝힌것인데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하여 수록되여있다.
저자는 이 편을 서술하는 목적에 대하여 단순히 과거의 력사를 보여주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봉건통치배들에게 경고를 주고 앞으로 항상 경각성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라고 하였다.
《건주사실》은 청조의 연원을 서술한것이며 《북우시말》은 《건주사실》편의 계속으로서 16세기 말-17세기 초에 건주위 녀진이 급속히 강대해지면서 여러 부조들을 통합하여 청나라(처음 이름은 후금)를 세운 사실과 우리 나라가 《병자호란》을 겪게 된 경위를 밝히것이다.
《인물고》(66-70권)는 세나라, 발해,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인물들과 해당 시기에 다른 나라 황제나 왕들의 황후, 왕비 등으로 된 우리 나라 녀자들, 이름난 녀류(녀자), 중관(환관, 내시) 등으로 구분하여 240여명의 인물을 소개한것이다.
여기에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많이 올라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우리 나라 문헌들에 나오지 않는 인물들이 적지 않다.
이와 같이 《해동역사》는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 문헌들에 실려있는 우리 나라 관계사료들을 다 포괄하였다고는 할수 없으나 적어도 그 대부분을 포괄하고있다고 할수 있으며 기재된 내용이나 분류항목도 매우 정밀하게 되여있다고 할수 있다. 그 기록들은 당시의 력사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연구되여야 할 대상들이였고 오늘에 와서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필요한 자료들이다.
15권으로 된 《해동역사속》(지리고)의 1권은 《고금강역도》, 《고금지분연혁표》인데 여기에서 《고금강역도》는 력대 우리 나라의 력사를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11매의 지도를 그린것이다. 그리고 《고금지분연혁표》는 조선봉건왕조시기 우리 나라를 8도로 나누고 그 연혁을 각 시기별로 표시한것인데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의 령역으로서 8도의 국경밖북쪽에 있던 부분 즉 료동지방 및 녕고탑지방(오늘의 흑룡강성일대)은 따로 계외지분표로 표시하였다.
2권은 조선, 예, 맥, 옥저, 3권은 삼한, 4권은 4군, 5권은 부여, 읍루의 령역에 대하여 서술한것이며 6권은 고구려의 강역과 미상성읍, 7권은 신라의 강역과 북계연혁, 미상성읍, 8권은 백제의 강역과 성읍, 미상성읍에 대하여 수록한것이다.
9권은 발해의 강역과 경부변오(발해의 경과 부에 대한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는다는 뜻), 군현명목, 10-11권은 고려의 강역과 동북계연혁, 서북계연혁, 성읍, 미상성읍, 12권은 조선봉건왕조시기 강역에 대하여 소개한것이다.
13권은 산수1 경내산, 도서, 14권은 산수2 경내수, 15권은 산수3 경외산수로 구성되여있다.
《경내산》은 조선봉건왕조시기 우리 나라 지경안에 있던 산들을, 《도서》는 섬들을, 《경내수》는 조선봉건왕조시기 우리 나라 지경안에 있던 강들을 밝힌것이고 《경외산수》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시기의 산과 강들로서 조선봉건왕조시기 국경밖에 있던것을을 밝힌것이다.
《지리고》에는 우리 나라 력사지리 및 자연경제적지리에 대하여 서술하면서 편찬당시의 우리 나라뿐아니라 옛날 우리 나라 판도에 있던 지역의 산과 강, 해안선과 바다, 섬, 지어는 암초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여있다.
특히 백두산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언어학적반증자료까지 안받침하여 깊있게 론증하였으며 울릉도와 우산도(독도)가 력사적으로 오랜 옛날부터 우리 나라의 섬이였다는데 대하여 구체적인 자료를 들어 고증하였다.
《지리고》를 편찬하면서 저자는 년대순으로 해당 시대, 해당 나라들의 력사지리를 해명해나가는데서 먼저 대강(요강)을 써서 어느 대, 어느 나라의 령역, 지명은 어느 지방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주었으며 다음으로 중국 혹은 일본문헌들의 기록을 렬거한 후 우리 나라 기록이나 다른 나라의 기록들을 호상 대비연구하여 대강에서 제시한 결론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서술하였다. 그것은 이 방법이 당시 력사지리를 연구하는데서 실학자들이 거의나 이러한 고증하는 식의 서술방식을 취하였기때문이였다.
한진서의 《지리고》에는 아직 정확하지 않은것들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그것은 매우 높은 수준의 연구성과로서 새로 정확히 해명한 중요한것들이 많고 그 범위도 대단히 넓다.
《해동역사》와 마찬가지로 《지리고》도 신라, 고구려, 백제의 순위로 서술하던 종전의 문헌들과는 달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순위로 서술하였으며 분량적으로도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에 비하여 3배에 달하는 내용을 주고있다.
또한 지난날 발해를 소략하여 취급하거나 언급조차 하지 않던 그릇된 견해를 극복하고 고구려의 계승국으로서 우리 나라 력사체계안에 넣고 정당하게 평가하였다.
이와 같이 《해동역사》에는 우리 인민의 반침략, 반봉건투쟁자료와 경제생활자료, 우리 민족의 우수한 시가문학유산들과 미풍량속자료, 언어생활자료, 대외관계자료 등 우리 나라 력사연구에 필요한 자료들이 방대한 범위에서 풍부하게 반영되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