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어버이사랑이 낳은 기적

 2023.7.5.

세월이 흘러도 우리 인민들속에 뜨겁게 전해지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이 나라의 평범한 한사람한사람을 귀중히 여기시며 손잡아 이끌어 영웅으로 내세워주시고 그들에게 생의 활력을 부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고매한 사랑과 혁명적의리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오랜 기간 혁명을 해오시면서 그가 누구든 일단 동지적관계를 맺으시면 그의 운명과 미래를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해주시였으며 수천수만의 혁명전사들을 한품에 안아 크나큰 믿음을 주시고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주체79(1990)년 2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지방에서 현지지도를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알고계시던 공화국영웅 변익두의 안해가 올린 편지를 받으시였다.

변익두로 말하면 평안북도 태천산골의 가난한 화전민의 가정에서 태여나 8살때부터 3대머슴군으로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오다가 해방이 되여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 안겨 공화국영웅으로까지 자라난 전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2월 7일 송악산전투에서 총탄 13발로 14명의 적병을 잡은것을 비롯하여 여러 전투들에서 위훈을 세운 그를 정규무력창설경축보고대회(당시) 주석단에 앉혀주시고 꼭 영웅이 되라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후 그가 조국해방전쟁시기에 100여차의 전투에 참가하여 7대의 적비행기를 쏴떨구고 200여명의 적병들을 소멸했을 때에는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해주시고 베를린에서 진행되는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조선대표의 한 성원으로 보내주시여 영웅조선의 기상을 남김없이 떨치도록 해주시였다.

그때로부터 어언 수십년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그의 이름은 희미해져갔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제날 전투영웅이였던 변익두를 잊지 않으시고 편지의 구절구절을 주의깊게 보아주시였다.

지방에 살던 남편이 아들집에 나들이를 왔다가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는데 태천산골의 3대머슴을 영웅으로 키워주신 대해같은 은덕에 보답을 못한 그를 그대로 땅에 묻을수가 없어 안해가 죄송함을 무릅쓰고 아뢰여드린다는 내용이였다.

편지를 읽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 한 책임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여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구원해야겠다고, 빨리 손을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영웅전사를 잃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지방에 나가있으므로 환자의 병문안을 하지 못한다고 잘 말해주고 요구되는것이 있으면 다 해결해주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치료방도와 대책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구체적인 과업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자의 차후상태를 자신께 직접 보고하라고 이르시였다.

곧 환자에 대한 구급대책이 세워졌다.

1차적인 구급대책을 취한 의료일군들은 환자가 당장은 움직일수 없는 형편이므로 당분간 집에서 치료하기로 하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잘 치료해주라고, 꼭 살려내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드디여 기적이 일어났다.

죽음도 이기게 하는 어버이사랑속에 생사기로에 놓여있던 영웅이 9일만에 소생하였던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자가 구원되였다니 정말 다행이라고,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고 더없이 기뻐하시며 그의 병을 완쾌시키기 위한 사랑의 조치를 또다시 취해주시였다.

그후 어버이수령님의 세심한 보살피심속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가족들로부터 자신이 받아안은 뜨거운 사랑에 대해 전달받은 변익두영웅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면서 자식들에게 《나같은게 뭐라구 어버이수령님께서 그토록 배려를 돌려주신단 말이냐. 내가 영웅이 된것도 수령님의 덕분이란다.》라고 마음속심정을 터놓았다.

어찌 이것을 변익두 한사람만의 고백이라고 하랴.

그것은 정녕 이 나라 아들딸들을 모두 한품에 안아 영웅으로 내세워주시고 꺼지지 않는 생의 활력을 부어주시는 위대한 어버이에게 드리는 이 나라 천만자식들의 심장에서 분출하는 뜨거운 격정의 웨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