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새로 발굴된 고구려의 서산성

 2016.3.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력사유적과 유물은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민족의 재보이며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전해주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김정일전집》 제3권 125페지)

서산성은 평양시 만경대구역 선내동에 위치하고있다.

서산성은 대동강과 보통강이 합쳐지는 서북쪽에 위치하고있다. 동쪽으로는 보통강이 가까이 흐르고 그 앞은 평양성 외성이며 서남쪽으로 대동강이 굽이쳐흐르고 서쪽으로는 높고 낮은 산발들이 펼쳐져있으며 멀리 만경봉이 바라보인다. 성에서 동쪽의 평양성 외성벽까지는 약 800m, 남쪽의 대동강과 보통강의 합수목까지는 약 500m된다.

서산성은 해발 92.6m되는 서산을 주봉으로 하여 쌓았는데 성의 북쪽, 서쪽, 남쪽은 산릉선들로 련결되였고 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져 평지를 이루고있다. 성안은 세개의 작은 골짜기들이 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져 평지를 이루고있어 아늑하다.

성의 생김새는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은 네모에 가까운 장방형이며 세면이 산봉우리와 릉선으로 둘러막혀있고 한면이 평지와 련결된 고구려시기에 성을 많이 쌓은 고로봉식지형에 가깝다.

현재 서산성에서 성벽은 서쪽 산릉선부분들과 북쪽 일부 지역에 흔적을 알아볼수 있을 정도로 남아있고 성안에는 주민지대가 전개되여있어 성의 면모를 잘 알아볼수 없다.

서산성을 옛날에는 적두산성이라고 불렀는데 그에 대한 옛 기록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적두산성은 흙으로 쌓았는데 평양강 서쪽에 있다. 주위가 5 100척, 높이 11척인데 묘청의 란 때 김부식이 쌓았다》고 하였다.

서산성을 발굴한데 의하면 성의 둘레는 약 2 170m이다. 동성벽 약 720m, 서성벽 약 530m, 남성벽 약 350m, 북성벽 약 470m이다.

성벽은 원래의 모습을 알수 없으나 현재는 뚝으로 된 토성으로 보인다.

북문부근의 북성벽을 발굴한데 의하면 돌이 섞인 진흙과 석비레를 엇바꾸어가면서 판축한 흔적이 알려졌다. 산릉선에 쌓은 서성벽은 작은 돌이 섞인 흙으로 쌓았다. 동성벽의 남쪽산릉선에 쌓은 성벽은 밑에 4각추모양의 성돌을 놓고 그 우에 흙으로 쌓은것이 알려졌다. 이곳에서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약 155cm, 밑너비는 약 170cm인데 안쪽부분과 웃부분은 많이 류실되였다. 성벽은 동쪽경사면을 수평으로 깎아내고 첫 성돌을 놓았으며 그 뒤로 흙과 납작한 큰 돌들을 앞성들에 잇대여놓았는데 그 너비는 약 120cm이다. 그 뒤로 약 50cm는 생땅이다. 발굴된 4개의 앞성돌은 모두 4각추모양인데 모두 응회질사암과 분암계통의 돌들이다. 이 돌들은 이곳으로부터 10리 또는 그 이상 떨어져있는 룡악산일대와 칠골, 팔골 등지에서 나온다. 4각추모양의 성돌들은 동성벽남쪽부분의 교란된 성벽층에서도 여러개 발굴되였다.

서산성에서 성벽이 이미 오래전에 류실되였으므로 성벽시설로서는 현재 남아있는것이 없다. 그러나 남성벽과 북성벽에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유리한 곳에 문자리로 볼수 있는 흔적이 남아있으며 장대나 망루와 같은 시설도 남아있는것이 없으나 성의 동남모서리 둔덕진부분에서 고구려시기의 붉은색기와쪼각들이 많이 나오는것으로 보아 장대나 망루와 같은 시설이 있었던것으로 볼수 있다. 그리고 성안과 주변을 잘 살펴볼수 있는 서성벽과 북성벽이 합쳐지는 높은 봉우리와 남성벽과 서성벽이 합쳐지는 봉우리에도 장대가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서산성에서 유물은 성벽과 성안의 여러곳에서 발굴되였다.

발굴된 유물들로서는 주로 고대, 고구려,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질그릇쪼각들과 기와쪼각들이다. 유물에서 주목되는것은 고구려시기 붉은색기와가 많이 나온것이다. 동성벽 남쪽부분 1발굴지점에서 특별히 많이 알려졌고 남성벽과 성안의 여러곳에서도 나왔다.

성에서 발굴된 고구려시기 붉은색기와의 종류는 암기와와 수기와인데 수기와는 크기에 따라 두부류로 갈라볼수 있고 암기와는 무늬에 따라 크게 7가지로 갈라볼수 있다. 암기와무늬를 구체적으로 보면 노끈무늬, 그물무늬(사선격자무늬), 삿자리무늬, 릉형무늬, 불길(꽃)무늬, 전나무잎무늬, 종선무늬 등인데 노끈무늬는 가는 노끈무늬와 굵은 노끈무늬로 갈라볼수 있고 그물무늬(사선격자무늬)는 무늬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5가지로 갈라지며 릉형무늬도 무늬형태에 따라 3가지로 갈라볼수 있다.

서산성에서 발굴된 암기와무늬를 고구려시기 기와가 많이 발굴된 유적들과 대비하여보면 대성산성에서 6종, 청암동토성에서 5종, 정릉사에서 8종, 평양성에서 9종, 장수산성에서 8종, 산성자산성에서 3종, 동대자유적에서 3종 등으로써 비교적 많은 종류의 기와가 나왔다고 말할수 있다.

성안에서는 일부 여러 시기의 질그릇잔편들도 나왔는데 깨여진 잔편들이므로 그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서산성은 자연지리적조건의 리용, 위치, 성벽축조형식, 성돌가공방법, 성에서 나온 붉은색기와 등으로 고구려시기 수도 평양성을 방어하기 위한 보조방어성으로 축조된것으로 보고있다.

서산성에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8(1989)년 2월 23일 안골체육인려관을 외래침략자들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쌓았던 옛성터인 서산성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서산호텔》로 부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이후에도 세차례에 걸쳐 서산을 유원지맛이 나게 잘 꾸릴데 대한 교시를 주시였다.

서산성은 천년강국 고구려의 문화를 밝히는데서 귀중한 자료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