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16세기 우리 나라 기일원론철학자 리경창의 사상

 2017.4.3.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중세기에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동방에서는 유물론과 변증법적사상이 발전하였습니다.》 (김정일전집》 제5권 242페지)

우리 나라 철학사에서 16세기는 유물론철학이 절정을 이른 력사적시기로 특징지어진다. 이 시기 우리 나라에서는 서경덕(호는 화담, 1489-1546)과 같은 이름있는 유물론철학자들이 당시 지배계급의 통치사상이였던 성리학적관념론을 비판하고 유물론적인 기일원론철학사상을 리론적으로 체계화함으로써 인민대중의 운명개척과 세계유물론철학사발전에 긍정적영향을 주었다.

진보적인 철학사상의 발전은 해당 력사적시대의 반동적인 사상을 반대하는 투쟁속에서 그리고 선행시기 사상과의 계승과 혁신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서경덕의 기일원론철학사상을 계승한 철학가들가운데는 리경창도 있다.

리경창(호는 서촌, 1555-1611)은 서경덕이 살던 개경(오늘의 개성)에서 태여나 일생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연구에 전심한 사림계통의 미천한 선비였다. 그는 성장하면서 《멀리로는 렴락(송나라 성리학자들)의 훈시를 따르고 가깝게는 화담의 가르침을 경모하여 속된 선비들처럼 문장을 짓는 일을 하지 않고 성인, 현자들의 옳은 리치를 밝힌 학문을 깊이 연구하며 마음을 도덕에 두고 실지로는 과거급제하는것과 같은 부차적인 일에 힘쓰는것을 단념하였》으며 《반드시 자체로 체득한것을 기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것은 리경창이 사상적지향과 풍모에서 많은 경우 서경덕을 따르려고 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리경창의 철학사상에서 리론적기초로 된것은 기본적으로는 서경덕의 기일원론철학이였으며 그것이 그의 사상에 미친 영향은 자못 크다고 볼수 있다. 그가 남긴 《서촌집》에 들어있는 글들은 《원리기설》,《천인설》,《주천도설》,《자경사》,《훈계서》,《역괘효통례》이며 여기에서 철학사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글은 《원리기설》,《천인설》이다.

리경창은 철학사상의 성격으로 볼 때 서경덕의 기일원론철학을 계승하였다.

리경창은 무엇보다먼저 일기사상과 유물론적인 우주생성론을 그대로 인정하고 계승하였다. 그는 《태허는 맑고 형체가 없으나 오직 일기(하나의 기)일따름》이며 《그것이 이미 갈라져서 가볍고 맑은것은 우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무겁고 흐린것은 아래로 내려와 땅이 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하늘은 실재하기때문에 기를 운행하여 항상 쉬임없이 운동하고 땅은 그 형체를 응취하여 중가운데 항상 정지한다. 기의 성질은 우로 오르는것이고 형체의 질은 아래로 떨어지는것이니 《하늘은 형체에 의거하고 땅은 기(氣)에 붙어있으며 하늘과 땅이 스스로 서로 의지하면서 태허공간 가운데서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고 매달려있으면서 만세에 걸쳐 둥글게 굴면서 존재하는것이다.》라고 하였다.

서경덕은 이미 《태허설》에서 《태허가 허하면서 허하지 않는것은 태허가 곧 기》이기때문이며 기를 《허하다고 하면서 기라고 하는것은 허하고 고요한것이 기의 본체》이기때문이라는 《태허즉기》사상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기의 오르려는 성질과 땅이 떨어지려는 성질이 서로 비등하여 지구는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고 서있는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놓고볼 때 리경창의 사상은 서경덕의 기일원론철학사상을 계승하였으며 그의 철학적세계관의 유물론적성격을 뚜렷이 확증해준다.

리경창은 다음으로 리를 기와 분리된 독립적실체로 보는 성리학적견해를 반대하였다. 이에 대하여 그는《형체가 없는것은 리이며 형체가 있는것은 사물(기)이다.》(《원리기설》), 《리가 있으면 곧 기가 있고 기가 있다는것은 곧 형체가 있다는것이다.》(우와 같은 글), 《리는 기에 붙어서 운동하며 기는 리를 바탕으로 하여 존재한다. 둘은 혼합하여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천인설》)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리와 기의 불가분리성을 강조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리경창은 또한 운동능력은 기에 있으며 기로 이루어진 천지만물은 운동변화하고 무한하며 불멸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서경덕은 《원리기》에서 《문득 약동하고 문득 열리니 누가 그렇게 시키는것인가. 스스로 능히 그러한것이다.(자능이) 또 스스로 그렇게 안할래야 안할수 없으니 이것을 리지시라고 한다. 운동하고 정지하지 않을수 없고 닫히고 열리지 않을수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기틀이 스스로 그렇게 하는것이다.(기자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서경덕이 제기한 기의 자기운동에 관한 사상과 운동의 원인과 동력에 관한 사상으로서 그의 기일원론철학사상의 중요한 내용의 하나이다.

또한 그는 《태허즉기》사상을 통하여 기로 이루어진 물질세계가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시간적으로 영원하다는 기불멸론, 물질불멸에 관한 사상을 내놓았다.

리경창은 서경덕의 사상을 계승하여 《기는 운동능력이 있는것으로 하여》 천차만별한 사물현상이 발생하는데(《원리기설》) 그것이 운동변화하는 과정에 《조화가 류행되여 추운것이 가면 더운것이 오고 해가 가면 달이 와서 그윽하고 밝으며 낮과 밤이 가고 오는것, 굽히고 펴는것의 변화가 끝이 없다. 이것이 후천이다. 정지가 극에 이르면 운동하고 운동이 극에 이르면 멎어있게 되니 일동일정은 서로 근원한다. 이것이 이른바 음양이 서로 작용》(《천인설》)하기때문이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사물현상의 운동변화는 운동능력을 가진 기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그것은 한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에로의 변화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소박한 변증법적사상이 반영되여있다.

또한 그는 기로 이루어진 천지만물은 《큰것은 무외(끝이 없는것)하고 그 작은것은 무내(안이 없는것)》(《원리기설》)하며 그것의 《앞을 추적해보면 그 시작을 알수 없고 그 끝을 보아도 종말이 보이지 않는다.》(《천인설》)고 하면서 전체로서의 우주자연은 시작도 종말도 없는 존재, 영원불멸한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리경창의 이와 같은 견해는 서경덕이 내놓은 리기호상관계문제에서의 기일원론적립장과 기의 자기 원인에 의한 운동변화, 기불멸설을 진리로 인정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물론 리경창의 철학사상은 중세기의 조건에서 제기되였던 관계로 전반적으로 경험과 추측에 의거하였으며 하층량반의 기분과 지향을 반영한 제한성을 나타내고있다.

그러나 중세기 유럽에서는 말그대로 교회의 권위가 모든것을 지배한 암흑의 시기였다. 이 시기 종교교리는 법과 같은것으로 되여있었으며 거기에 어긋나는 사소한 요소도 탄압의 대상으로 되였다. 따라서 중세기 유럽에서는 종교가 전사회를 지배하였던 관계로 유물론이 하나의 철학사상조류로서 존재할수 없었다.

이에 비해볼 때 서경덕과 마찬가지로 리경창의 기일원론철학은 중세기 유럽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유물론철학사상이였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총체적으로 리경창의 사상은 김시습-서경덕으로 이어지는 유물론철학의 진영에 속하며 그는 16세기 후반기-17세기 초 서경덕의 기일원론철학사상을 옹호고수한 대표적인 유물론철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