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재정금융학부 교수 박사 윤영순
2024.1.3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군사복무기간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한 사람들을 영예군인으로 높이 내세워주고 그들의 생활을 국가가 책임지고 따뜻이 돌봐주고있으며 그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도록 세심히 보살펴주고있다.
영예군인들과 그의 가족들은 국가적혜택으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보장받고있으며 사회의 청년들이 불구가 된 영예군인들의 일생의 동반자가 되고 친척도 아닌 사람들이 영예군인들의 생활을 친혈육처럼 돌보아주는 등 영예군인들이 사회적존경의 대상으로 되고있다.
영예군인들이 이렇듯 사회와 집단의 사랑과 존경의 대상으로 되고있는데는 일찌기 영예군인들의 생활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그들을 높이 내세워주시고 그들이 군사복무시절처럼 언제나 락천적으로 생활하고 일하도록 친어버이사랑을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영예군인들이 생활하는데서나 일하는데서 불편한 점이 없도록 모든 방면으로 잘 보살펴주어야 하겠습니다.》 (《김일성전집》 제22권 10페지)
주체47(1958)년 5월 7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주영예군인생산작업소(당시)에 들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음을 지으시고 손을 들어 답례하시며 환호하는 영예군인들에게로 다가가시였다. 그러시고는 고향은 어디이며 부상은 어디서 당하였는가, 장가는 들었는가, 움직이는데서 불편한점은 무엇이며 곤난한 문제들은 무엇인가 등 그들의 생활형편을 다심히 물어주시였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의수를 한 영예군인에게로 다가가시여 글쓰는 동작만이라도 해보라고 만년필을 몸소 그의 의수에 끼워주시기까지 하시였다. 영예군인들은 육친의 정보다 더한 그이의 친어버이사랑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업소의 기업관리운영정형에 대해서도 이모저모 세심히 물어보시였다. 영예군인들이 국가과제를 초과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있다는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예군인들은 일을 알맞춤히 하여야 한다, 우리가 영예군인들을 그냥 놀릴 형편이 되지 못해서 일을 시키는것이 아니며 당과 정부는 동무들을 일을 시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먹여살릴수 있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시여 그러나 사람이 거저 놀면 밥맛도 없고 몸에도 나쁘기때문에 동무들은 일정하게 일을 하여야 하며 그렇다고 하여 절대로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말고 건강을 유지하는데 알맞을 정도로 일하는것이 좋다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예군인들이 학교에 가고싶어하는 소망도 헤아려 국가적으로 해결해주시겠다고 사랑의 약속도 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무엇인가 더해주고싶으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악기는 요구되지 않는가고 또다시 물으시였다.
불구자들이 돼서 악기는 다룰수 없다는 그들의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을 타이르시며 동무들은 장기도 놀고 퉁소도 불며 여러가지 문화오락사업을 하여야 한다, 어떤 동무는 불구자이기때문에 악기를 다를수 없는것처럼 말하는데 그럴수 없다, 동무들에게는 전선에서 화선악기를 다루던 그 솜씨가 있지 않는가, 노력만 한다면 어떤 악기도 능히 다룰수 있다, 동무들은 영예군인들이기때문에 락천적으로 살아야 된다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여러가지 조건으로 영화구경을 자주 하지 못하고있는 사실을 아시고는 영화관람에 필요한 륜전기재와 운전수문제를 비롯하여 필요한 모든 대책들을 취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더 제기할것이 없는가고 물으시고 제기되는 문제가 없다는 대답을 들으시고서야 마음을 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을 떠나시면서 영예군인들이 락천적으로 살며 생활하도록 하시기 위해 구락부를 새로 크게 지어주어 거기서 모임도 가지고 학습도 하고 문화사업도 하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예군인들이 그늘없이 락천적으로 살며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고 친어버이의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